소방관이 주취자를 구호하는 과정에서 상해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이 소방관은 지난해 9월 정읍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주취자 구조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는 취객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발목 골절 등 6주 상해를 입혀 지난 24일 법원으로부터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정당방위 여부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배심원들이 유죄 평결을 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번 소방관의 유죄 판결을 놓고 과잉 대응에 따른 합당한 판결이라는 반응도 있다. 그렇지만 구호 활동에 나서는 소방관들에게 주취자 폭력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소방 공무원의 구조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해 4월 익산에서 술에 만취한 구급 환자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고 강연희 소방관이 주취자로부터 심각한 폭언과 폭행을 당해 한 달 넘게 병원 치료를 받다가 순직했었다.
사실 응급 구조 소방관에 대한 주취자의 폭행과 폭언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 구급대원 폭행 사고는 전국적으로 215건에 달했다. 지난 2014년에는 148건이었지만 해마다 폭행 피해를 당하는 소방관이 늘어나면서 지난 5년간 1000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소방관 폭행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소방관 폭행사건의 76% 이상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았고 폭행 피의자가 구속된 경우는 5.5%에 불과했다.
고 강연희 소방관 순직사고 이후 소방 구급대원의 안전 보장을 위한 법안이 9건이나 발의됐지만 단 한 건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구급대원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도구 사용 논의도 있었지만 국민정서를 이유로 보류됐다. 이러다 보니 주취자 구조활동시 소방관 개개인이 알아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성 구급대원의 경우 남성 취객의 폭행이나 폭언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고 남성 구급대원들도 이번 유죄 판결에서 보듯이 자칫 대응 과정에서 상해 발생시 범법자로 전락할 수 있다. 우선 소방관의 안전과 권익을 위해서라도 주취자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서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주취자 폭력행위에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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