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인류가 미증유의 위기 속에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실존할 것인지, 아니 과연 실존할 수는 있을지, 거대한 변화와 두려움 앞에 서 있다.
급작스레 들이닥친 이 위기에 대한 해석은 인류의 숫자만큼 다양한 개인차를 그리고 있다. 다소 불편하긴 하나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낙관주의와 브레이크 없는 발전의 속도전을 펼쳐온 인류의 생존방식 자체에 대한 회의주의 사이에 무수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듯 보인다. 낙관주의는 자칫 교훈과 성찰이 부족해보이고, 회의주의는 무기력이 내재해 있어 불안하다.
다행히 우리가 이 위기를 넘어 생존한다면, 그때부터가 인류의 거대한 자성과 집단지성이 필요할 것이다. 기왕지사, 코로나19는 어떻게 실존할지를 매섭게 일깨우는 죽비였으면 한다.
세계적 추이, 온라인으로 눈 돌리는 공연들
코로나19로 인해 생존을 위한 변화들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예술계 역시 전대미문의 시련을 맞았다. IMF나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안하고 충격적이다. 각종 공연과 축제, 예술제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하반기로 연기됐다. 가장 불안하고 답답한 것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 정상화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그로 인해 그 어떤 계획도 대비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통과 공유, 감성의 확산을 생명으로 하는 현장예술은 할 수 없이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실재하기에 어떻게든 실존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전 국가적이다. 우리지역도 아직까지 전국적인 상황에 비춰볼 땐 미미하나, 전시나 공연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중계하기 위해 조금씩 기지개를 키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소리축제 주제 ‘잇다(Link)’…국제행사로서 슬로우 버튼
전주세계소리축제(이하 소리축제)를 비롯한 축제조직들의 고충도 커져가고 있다. 특히 세계 여러 아티스트들을 모으고 이들과 사전 준비를 통해 다양한 협업작품을 선보여 왔던 소리축제는 국내외 상황을 동시에 살펴야 하기 때문에 더욱더 이 시국이 하 수상하기만 하다.
전 세계 다양한 월드뮤직 평론가들로 구성된 TWMC(트랜스클로벌 월드뮤직차트)가 2년 연속 소리축제에‘베스트 페스티벌 세계 1위’의 타이틀을 안겨줬다. 이것은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고, 바람직한 축제의 전형으로 삼을 만 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년엔 소리축제 20주년이 온다. 그래서 올해는 올해가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것들, 올해가 지나면 의미가 없는 프로그램들이 있기에 기약 없는 나날들이 더욱더 야속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소리축제의 주제는 ‘__잇다(link)‘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뒤엎을 거라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는 올해 주제를 ‘잇다’라고 정했다. 줄로 연주하는 현악기를 모티브로 하는 만큼, 소리축제가 세계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협업을 가장 잘하는 만큼, link로 또 한번 거대한 감동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에서다. 그 외에도 ‘찾아가는 소리축제’를 강화해 전라북도 14개 시군 주민들을 잇고,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배려하는 프로그램도 준비해 모두의 마음도 이어보고자 했다. 한-러수교 30주년 기념으로 올해부터 내년까지 양 국가를 오가며 아티스트를 교류하고 함께 다양한 공연도 만들어보자고 했다. 지금은 서로 상황을 지켜보며 그저 무사히 이 환난을 넘어가기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8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에든버러 페스티벌’이 얼마 전 전격 취소 결정을 내리면서 우리는 조금 더 불안해지고 있다.
국내 축제나 행사들이 여름을 지나 하반기에 화려하게 재기할 날을 꿈꾸고 있지만, 해외와의 접점이 있는 국제행사들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북반구와 남반구를 순환하며 코로나 19가 1년을 훌쩍 넘겨 유행할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올해 소리축제는 9월 16일~20일 개최 예정으로 뜻하지 않게 코로나19의 위기 속에 슬로우 버튼을 누르고 날을 세워 정세를 살피고 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 난 것은 없다. 다만, 너무도 당연하게 해왔던 일들의 소중함과 ‘연결’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코로나19의 역설…연결과 링크의 소중함 더 굳건해지길
코로나19는 우리가, 전 세계가 얼마나 긴밀하고 촘촘하게 이어져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올해 ‘잇다’라는 이 주제가 새삼스러울 만큼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었고, 서로에게 링크되어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문화예술을 동경하고 존중하며 배우고 격려할 수 있었다. 공연예술제인 소리축제는 현장예술의 감동과 영감의 교류에 가장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 최후의 상황에서는 15개 나라 정도를 모아 온라인 공연을 해볼까도 고려하고 있다. 고육지책으로 최후의 보루 삼아 고민하고 있는 방법이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그 뜨거운 감동의 물결, 피부에 와 닿는 충만한 감성의 공유는 조금 차원이 다른 얘기라고 설명하고 싶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하루빨리 국내외 상황이 개선되고 안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년 20주년을 향해 건실한 마침점을 찍고 의미 있는 감동의 시간들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다.
실재하고 있는 우리는 좀 더 주체적으로 실존하길 원한다. 문화예술은 실재하고 있는 우리에게 실존의 기쁨을 주고 서로 다르게 존재하는 것들끼리 서로를 들여다보고 동경하고 견주게 해준다. 문화는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숙명처럼 안고 사는 우리에게 때로 삶을 ‘어떠한 것’으로 규정하게 해주고 용기를 갖게 해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문화예술은 그렇게 존재하며 가치를 발현해 왔다고 믿는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전 세계가 경제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문화예술을 소홀히 하거나 뒤로 미뤄두지 않기를 바란다. 소리축제가, 문화예술이, 전 세계 예술인들이, 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 모두가 안녕하시길, 그리하여 현장에서 다시 뜨겁게 연결되길, 간절히 바란다.
/김회경 전주세계소리축제 대외협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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