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축제의 스케치 영상과 사진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켠이 저리다. 수많은 아티스트와 관객, 스태프들의 표정에서 우리가 이때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을 나누고 있었는지 절절해진다.
스태프들이 ‘고난의 행군’을 할수록 축제는 섬세해진다. 그런데도 축제 속에 있고, 축제가 좋다. 고난보다 큰 보람과 환희, 카타르시스를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축제의 보람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좀 더 벅찬 ‘우리’라는 공유와 공감의 전이에 있음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코로나 19에 대한 소리축제의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개별공연과 사업을 위한 협의와 결론의 과정, 그 이후 계약에 대한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고심이 깊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해외 교류, 소통과 협업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럴수록 축제가 걸어온 소중한 교류사업의 성과들이 알알이 빛나 가슴에 박힌다. ‘우리’라는 공유와 공감이 퍼져가던 뜨거웠던 그 순간들…. 다시, 지성의 연대와 이종(異種)의 조화를 생각하며, 소리축제의 아주 특별했던 ‘LINK(이음)‘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 2014~2017 폴란드와 소리축제, 소팽과 아리랑의 낭만적 만남
존재 자체로 폴란드의 상징인 위대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쇼팽, 한국인의 정서가 몇 소절의 음절로 압축된 ‘아리랑’. 두 나라의 음악적 상징을 앞세운 한-폴 프로젝트 ‘쇼팽&아리랑’. 폴란드 유명 뮤직 페스티벌 바르샤바 크로스컬쳐 페스티벌 예술감독이자 전통음악과 고음악에 심취한 마리아가 두 나라 간 협업을 제안했을 당시만 해도, 이 사업이 이렇게 긴 시간과 여운으로 이어질 줄은 예상치 못했었다.
장장 4년 동안 지역 예술가와 폴란드 예술가가 한국-폴란드 양국을 오가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생산해냈다. 아리랑을 바탕으로 한 한국인의 정서, 그리고 쇼팽의 음악을 폴란드 고악기로 재현하는 등 특별한 음악실험을 하는 폴란드 고악기 연주자들과의 만남은 고요하면서도 격정적인 두 나라 간 음악적 교집합을 발견하며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이 팀은 이듬해 폴란드 크라쿠프 크로스로드 페스티벌 무대에 초청받아 폴란드 관객들에게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이후 2년 동안은 폴란드와 한국을 오가며 양국의 궁중무용 팀의 협업이 진행됐고,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도 서로의 음악과 춤이 교차하며 특별한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상시적인 예술 인프라를 보유하지 못한 축제 조직에서 4년 간 해외기관과 교류를 추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생산해냈던 것은 전국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양 기관의 열정과 신뢰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일이다. 폴란드의 쇼팽과 우리의 아리랑, 이 위대하고도 낭만적인 만남이 다시 한 번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 2015 한-캐 프로젝트 이종(異種)의 미학, ‘레이첼 트렘블레이&김보라’
훤칠한 메조 소프라노 레이첼과 아담한 소리꾼 김보라의 캐미도 잊을 수 없다. 레이첼 트렘블레이는 2014년 세계적인 성악대회인 캐나다 몬트리올 ‘세계 성악가대회’에서 최초로 ‘소리축제상(Sori Choice Artist)’을 수상한 음악가이다. 소리축제와 세계성악가대회가 협업을 맺고 이듬해 소리축제 무대에서 주목받는 젊은 소리꾼 김보라와 콜라보 무대를 선사했다. 당초 오송제 편백나무숲에 계획되었던 무대는 쉴새 없이 쏟아지는 비로 급히 명인홀로 옮겨졌다. 그때만큼 비가 야속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상쇄라도 하듯, 명인홀은 두 사람의 호흡 속에서 꽉 찬 아우라와 감동으로 가득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관통하는 듯, 김보라의 단단하게 다져진 깊이있는 소리와 레이첼의 무게감 있고 미려한 목소리가 어느 순간 균형을 맞추었다. “아름답다”는 말이 터져 나오던 잊지 못할 무대였다.
△ 대만과의 길고도 끈끈한 협업…젊은 전통 음악가들의 고민을 담다
대만과의 협업은 매우 끈끈하고 우정 어린 시간들을 이어왔다. 소리축제와 대만의 국립가오슝아트센터가 지난 2018년 협약을 맺으며 양국 아티스트들의 활발한 교류가 시작됐다. 물론 대만과는 지난 2015년부터 대만 국립전통예술중심과 꾸준히 교류사업을 이어왔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대규모 예술극장인 가오슝아트센터와도 연을 맺었다. 소리축제의 대표적인 경쟁 프로그램인 ‘소리 프론티어’의 수상자들이 한국전통의 ‘뉴 웨이브’를 선보이며 대만의 젊은 아티스트들과 만났다. 대만의 실험적인 젊은 전통 음악가들이 소리축제를 찾아 파격적이고 새로운 음악적 조류를 선보이며 갈채를 받았다. 이 두 나라의 교류가 유난히 벅차고 아름다웠던 것은, 양국 젊은 전통음악가들이 비슷한 고민과 새로운 도전 앞에 흥분과 설렘, 기대와 비전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음악적 완성도와 성취보다 더 값진 발견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수교 30주년 사업, 외교적 성과로 연결
올해는 러시아와 한국이 수교를 맺은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올해 소리축제 해외 프로그램은‘러시아 포커스’가 가장 비중 있게 준비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소재한 ‘페테르부르크 콘체르트’라는 예술기관 관계자들이 소리축제를 방문해 MOU를 맺고 올해부터 양국을 오가는 다양한 예술인 교류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특히 올해는 한-러수교 30주년을 맞는 해로 소리축제를 찾는 러시아 팀들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러시아 민속음악이 중심이 됐다. 지난해 10월 주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주관하는 ‘코리아 페스티벌’에 소리축제 최근 화제작인 ‘판소리-플라멩코 프로젝트’가 초청 받아 무대에 서면서 한-러 수교 교류사업은 페테르부르크 콘체르트와 총영사관 양 축을 파트너로 삼아 사업의 윤곽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소리축제의 예술적 교류사업이 외교적으로도 확장되며 양국 우호협력의 끈끈한 촉매로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소리축제는 작게는 올해 축제 교류를 위한 러시아팀 초청업무부터 페테르부르크 콘체르트 교류사업, 외교부 교류업무까지 다양한 사업들이 잇따르면서 많은 가시적 성과들을 기대하고 있다. 한-러 수교 사업으로 소리축제의 국제적 위상, 국내외 신뢰도, 예술인들을 위한 공익적 기여 등에서 한 발짝 진일보한 국면을 맞게 되리라 내다보고 있다.
아직 좌절이나 절망을 논하기 이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인내와 희망의 메시지로 서로를 독려해야 하는 시간임은 확실해 보인다. 우리는 다시 이어질 것이다. 소리축제에서 배운 아주 귀한 교훈 하나가 있다면, 음악을 통한 평등이라는 가치다. 동서고금, 남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음악을 마주하는 이의 토양과 배경, 마음의 결로 ‘음악의 通’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통하였느나, 하지 못하였느냐는 오로지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마음이 가 닿는 곳에, 다름과 거리가 대수이겠는가.
오늘 다시 이 귀한 이종의 조화, 연결의 미덕을 예술을 통해 잊지 않는, 되새기는 하루가 되었으며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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