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전직 기자 몇 명이 만난 적이 있다.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서로가 공통점을 발견하고선 적잖이 놀랐다. 뉴스를 안 본다는 것이었다. 누구 입에서 어떤 경위로 이 말이 처음 나왔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부분 비슷했다. 묘한 동질감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꼈다. 평생을 뉴스와 함께 뒹굴며 뉴스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뉴스를 안 본다는 것은 분명 ‘뉴스거리’이다.
뉴스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는 “핸드폰에서 제목을 확인하지만, 클릭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잖은 뉴스에 굳이 힘을 실어주지 않겠다는 소심한 소신이 바닥에 깔려 있다.
대부분 ‘뉴스거리’가 문제라는데 공감했다. 조국 전 장관 딸의 표창장이 1년 동안이나 온 나라를 그렇게 뒤흔들 만큼 중요한 이슈였단 말인가? 추미애 장관 아들의 군 휴가 문제가 21대 첫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을 온통 지배해야 핳만한 사안이었던가?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이전, 많은 언론들이 추미애 장관의 아들 휴가문제, 북한에 의한 공무원 피살사건, 강경화 장관 남편의 미국방문 등이 국정감사의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주문)했다. 과연 이들 사안이 코로나 방역과 경제문제,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 사법개혁, 기후위기, 국제외교 등을 뒷전으로 밀어낼 만큼 의미 있는 이슈란 말인가? 북한에 의한 공무원 피살만 중요하고 인천 라면형제의 비극에는 적당히 눈감아도 된단 말인가?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언론 본연의 책무이다. 공직자와 그 가족의 법적, 도덕적 문제에 대한 검증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구석구석 쑤시고 바닥까지 닥닥 긁어서 사소한 것들까지 경쟁적으로 들춰내고 막장 드라마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흥신소 직원조차도 관심 갖지 않을 정도로 시시콜콜한 일들을 대단한 것인 양 떠벌리고 공격의 빌미로 삼는 것은 언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할 짓이 아니다. 오죽하면 ‘김정은이 준 풍산개 새끼, 연평도서 사람 물어’(조선일보) 같은 뉴스가 나올까?(내용을 보면, 북한에서 보내온 풍산개 자견(子犬)이 산책 중에 다른 개와 싸움이 붙었고, 이를 뜯어말리는 과정에서 담당자의 손에 약간의 상처가 나서 보건소에서 치료받았다는 것이 전부이다)
뉴스거리 못지않게 뉴스를 다루는 방법도 역겹다. 팩트를 바탕으로 한 뉴스는 찾기 힘들고 의혹이나 가정법, 인용법, 심지어는 궁예의 관심법을 동원한 뉴스가 천지에 널려있다. ‘~아닐까?’하는 의혹제기는 근거 없이 과도한 의심을 바탕으로 노골적인 증오와 적의를 드러낸다. ‘~이라면’ 식의 가정법은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해 엉뚱한 방향으로 시선을 유도한다. ‘~카더라’는 인용문은 대부분 상식과 통념을 크게 벗어난 특이한 일부 사람들의 페이스북 내용만을 과도하게 옮기거나, 진위확인이 불가능한 SNS에 출처를 두고 있다.(한 시민, 한 회사원, 한 주부 등 우리나라에 한씨 성이 너무 만다는 지적도 있다) ‘~로 풀이 된다’는 궁예의 관심법은 엉뚱한 흰소리로 팩트를 덮어 버린다.
언론의 정파성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비판하고 공격하더라고 정책과 이슈를 놓고 제대로 싸워야 한다. 그래야 관심을 모으고 관객(독자)이 끌린다. 찌질하고 시답잖은 내용과 방법을 동원한 유치한 논쟁은 가뜩이나 땅에 떨어진 언론의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고 독자들을 멀어지게 할 뿐이다. 언론이 개인(1인) 미디어와 경쟁하는(개인 미디어에 앞서지도 못하는) 시대에 우리는 뉴스를 잃었다. 우리에게 뉴스를 돌려달라. 제발 우리도 뉴스 좀 보면서 살자.
/이성원 전 TBN 전북교통방송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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