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나 파리의 ‘에펠탑’은 현장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두 조형물이 어떻게 조성되었는지는 잘 몰라도 그것이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을 기념하는 조형물이라는 사실쯤은 익히 알고 있다. 두 작품은 세계 10대 걸작 조형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기념 조형물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선뜻 대답이 쉽지 않다.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상’이나 ‘세종대왕상’일까? 아니면 워싱턴에 세워져 있는 한국전쟁 참전기념 조형물이 될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역사적 인물을 영웅으로 기억하기 위한 동상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도시에 세워져 있다.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조형물은 혁명이나 건국을 기념하거나 전쟁의 고통을 기억하기 위한 작품으로부터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기억하기 위한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로 여러 곳에 세워지고 있다.
국내에도 임진왜란으로부터 독립운동이나 근현대사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조형물은 곳곳에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왜 우리에겐 세계적인 작품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형편에서 최근 정읍과 고창에 각각 세워진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는 조형물은 우리가 주목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2022년 정읍 황토현에 세워진 ‘불멸-바람길’이라 이름한 작품과 금년 초에 고창군청 앞에 세워진 ‘의(義)의 깃발 아래’라는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두 작품은 모두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한 조형물이다. 아울러 두 작품은 정읍시와 고창군이 비슷한 시기에 시, 군민의 성금과 각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들여 세운 공공미술 작품이다.
‘불멸-바람길’은 임영선 작가가 동학농민군의 1, 2차봉기의 행렬도를 전봉준을 중심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리고 ‘의(義)의 깃발 아래’는 국경오, 강관욱 작가의 협업작품으로 무장기포에 나서는 농민군의 분노와 두려움, 결기와 용기를 표현한 작품으로 역시 전봉준을 앞세웠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전국의 공공미술 작품은 2만 3600여 점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한 작품이다. 각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지역 이미지 형상화나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1년에 1천여 점의 조형물이 세워진다고 한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오히려 최근 많은 지자체에서는 몇억 이상을 들여 세운 조형물이 흉물로 전락하여 철거 논란을 겪고 있거나 작가를 고발하는 등의 사례가 빈번하다고 한다.
우리의 공공미술이 세계적인 수준의 작품은 아니라 할지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조형물이 철거되어야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 일차적인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의 공공미술 조성과 관련된 법률에 있다. 이 법은 공공미술 작품을 기업이 생산하여 납품하는 공산품처럼 간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를 기업의 하청업자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훌륭한 작품을 기대할 수는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치단체와 지역주민과 관계 전문가와의 소통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고창군과 정읍시는 이 문제를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극복하였고 그 결과는 수준 높은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이들 작품을 본 대중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아직 평가가 이르기는 하지만, 이 두 작품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역사기념 조형물로 평가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신순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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