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리모컨을 돌리다 멈췄다. 유명 연예인이 자신의 엄마와 차를 타고 여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엄마의 굽은 등을 딸의 가슴으로 지그시 누르는데 딸의 표정은 웃음과 울음의 경계다. 엄마는 뒤에서 푸근히 밀어주는 딸에 행복하기만 하다. 하지만 딸과 엄마는 다르고 같다.
“바닷가에 가자.”
“바닷가에 다 왔어.”
“저기 쑥 봐라.”
“엄마, 내 친구네가 제주도 여행가서 바다는 안 보고 쑥만 뜯었데.”
“저기 낚시한다.”
모녀의 대화는 자꾸 어긋났다. 딸은 웃었다가 빗나가는 엄마를 이해 못해 난감해 하다 이해돼 웃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딸의 나이를, 딸은 엄마의 나이를 체험하는 여행이었다. 같이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서로의 나이테를 읽으며 이해해갔다.
공감되는 장면을 보다 『우리는 서로의 나이테를 그려주고 있다』가 떠올라 펼쳤다. 색연필로 그린 꽃과 사물, 독학으로 그린 그녀의 마당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잘 익은 노오란 모과의 윗부분에 눈이 쌓이면 마치 모과나무가 등불을 들고 환하게 빛나고, 모과가 눈에 쌓여 떨어지는 풍경, 콜드블루 커피 내리는 느릿느릿한 여유를 배운다. 비 오는 날 장화를 신고 우산을 받치고 깨끗해지는 마당을 거니는 마음이 싱그럽다.
‘12월과 1월, 쉼의 시간을 지나면 2월부터는 벌써 땅을 뚫고 새싹이 올라오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의 꽃눈도 발갛게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꽃을 보여줄 태세다. 마당은 이렇게 같은 자리에서 돌고 돈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다.’(본문 중에)
내 마당에 핀 꽃을 한 삽 퍼서 이웃과 꽃 한 삽을 교환해 두 가지로 늘어나 피었다. 꽃씨 나눔으로 마당을 채우니 2개월의 쉼을 지나면 새싹이 얼굴을 내민다. 해마다 새로 내미는 얼굴이 반가울 따름이다.
전원생활을 꿈꾸다 제 코 다친 사람이 있다. 바로 나다. ‘나무가 이리로 넘어오니 잘라라. 분리수거 잘 해라. 쓰레기봉투 여기다 버리지 마라라.’ 사사건건 관여에 못 이겨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색소폰 소리가 소음으로 들린 동네가 있다니 동병상련을 느껴서일까 전원생활을 즐기는 것보다 위안을 받는다. 아니, 전원생활에 적응하는 시인이 부럽기 그지없다. 사람이 뜸한 시골마을에 인기척이 반가울 만한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동네를 돌아다니던 노인들은 하나 둘 사라지는 고즈넉한 마을에 사람을 배척하는 심보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크기가 작아도 하늘이 보이고 자연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땅이면 다 마당이다. 마당은 집 안에 있는 사람을 바깥으로 불러내는 곳이며, 우울할 때 기대거나 붙잡고 일어서기에도 좋은 곳이다. 세상 밖으로 나가기 전 심호흡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완충지대이다.’ (본문 중에서)
나혜경 시인의 마당 예찬론을 읽은 후 마당을 보니 수레국화, 금국, 마가렛이 바람에 흔들리는 마당의 여유로움을 새삼 느껴본다. 낮에 우거졌던 마당의 풀을 베어냈다. 풀냄새가 가득하다. 하늘에는 별이 하나 둘 고개를 내밀고 고요 속에 와글와글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까지 어우러진다.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됐으며, 같은 해 동양일보 동화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저서로는 장편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 청소년 소설 <가족이 되다>, 2023년 수필 오디오북 <구멍 난 영주 씨의 알바 보고서>, <너의 여름이 되어줄게>, 5人앤솔러지 청소년소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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