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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 경종호 '탈무드 동시 컬러링북'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 비 오듯 쏟아지는 은행잎을 맞으며 아이들이 깔깔거린다. 그들 머리며 등허리, 책가방이 온통 노랑으로 물들어 있다. 어린 시절 내 감각이 되살아나 가을 햇살과 아이들 웃음소리에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쫙 펴진다. 문득 천진한 아이들, 저 아름다운 밑그림에 알록달록 채색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한편 겨울이 오면 어쩌나, 세상은 이미 북풍이 불고 살얼음 끼고 무차별 폭력이 난무하고 있지 않은가! 지혜를 모아 싸움을 멈추고 평화를 모색해야 할 이때 서재 귀퉁이에 있던 경종호 시인의 『탈무드 동시 컬러링북』을 꺼내 읽는다. 황금빛 은행이파리가 살랑살랑 날아와 내 가슴팍을 물들인다. 경종호 시인 덕분이다. 요즘 문학이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다각적으로 보인다. 디카시가 그렇고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 컬러링북도 마찬가지다. 한편 기성 시인의 동시로의 유입은 동심 회귀와 함께 아동문학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경시인 또한 시로 등단, 현재 아동문학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새싹 하나가 나기까지는」을 읽다 보면 경종호 선생의 성품과 문학적 결을 느낄 수 있다. 새싹 하나가 나기에도 수많은 인연이 있어야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은 무심결에 새싹을 짓밟지 않고 사람인 “네가 ‘팔딱’ 뛰었던 것” 즉 생명 탄생 비화에는 사랑과 우정, 생명 존중 사상이 관통하는 것이다. 이번 컬러링북도 일관된 경향으로 탈무드 경전經典의 무거움을 해소하는 위트와 유머가 더해져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동료 교사와 작가들의 평을 빌자면 “동시 종합 놀이터를 방불케 하는 즐거움이 있고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생각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며 탈무드에 기반한 이야기에 자신의 경험을 입혀 색칠하면 ‘교실은 즐겁고 행복한 놀이공간”이 될 것이다. ‘즐거운 생각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밝게 한다. 생각을 조금만 바꾼다면 이렇게 재밌는 상상이 된다’라는 탈무드의 말을 “지금까지 상어가 하늘에서 죽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없어!/그러니까 상어가 하늘에 산다면 그래! 영원히 살 수 있을지도 몰라”-「말의 차이」 경시인의 탈무드 동시 버전을 두고 이안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탈무드는 동시와 가까운 사이가 되고 동시는 탈무드의 지혜에 가닿게 된다” 동시와 탈무드는 많이 닮았다. 억지로 누군가를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 이번 컬러링북 27편은 시와 그림의 접목을 통해 관습과 종교적 편향을 초월 삶의 지혜를 스스로 찾게 한다. 다소 상투성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경전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현장에서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교사로서 눈매는 역시 날카롭다. 오랜 기간 교육현장에서 밴 현실감 넘치는 창의적 표현들이 그것이다. 바라건대 독자들이 동시에 응축돼있는 감동의 파문, 출렁이는 빛살을 색칠하면서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말은 본디 추상적이어서 세상을 완벽하게 그려낼 수 없다. 그런데 컬러링북은 상상력으로 말의 빈 공간을 채우고 그림으로 구체화하니 언어의 약점을 보완한 셈이다. 산다는 것은 꽤 쓸쓸한 일,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부디 여백을 채우듯 테마가 있는 동시(풍경)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기를 바란다. 독자가 만날 탈무드 컬러링북은 아날로그적 놀이 형태로 집중력과 안정감을 줄 것이다.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터득하고 응축된 언어의 확장력을 손수 실현해 보인다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시간이 쓸쓸하지만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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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7 18:5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동화작가-김근혜'베프 떼어 내기 프로젝트'

중학교 다닐 때 나는 사랑에 빠졌다. 학교 가는 게 설렜고 내 눈엔 그 애만 보였다. 수업이 끝나면 한 시간 동안 걸어서 그 애 집까지 바래다주곤 했다. 집에 오면 어두워질 때도 있어서 늦게 다닌다고 혼났지만, 그 애와 함께하는 시간은 마냥 행복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애를 좋아하는 게 나만이 아니라는 거였다. 깔끔한 외모에 중성적인 그 애의 걸크러쉬 매력에 매료된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내 곁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아이를 보며 한동안 심한 속앓이를 했다. 『베프 떼어내기 프로젝트』의 재현이도 그렇다. 하늘이 껌딱지인 재현이는 하늘이와 놀고 싶다. 그런데 하늘이는 온갖 핑계를 대며 재현이를 밀어낸다. 친구와의 갈등은 아이들에게 심각한 일이다. 문제가 크고 작고를 떠나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혼자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 문제를 더 키우기도 한다. 재현이가 속상해하는 걸 본 지원이가 최악의 친구 하늘이 떼어내기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세 번의 작전은 모두 실패였지만 재현이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하늘이와의 관계도 회복해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고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된다. 아이들은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자신과 다른 성향의 친구에게 매료되기도 하고 선을 넘고 무례하게 구는 친구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민하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 나와 맞는 친구를 찾는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발견한다. 좋은 친구는 봄날 햇볕처럼 따뜻하다.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불끈 솟는다. 하지만 그런 친구를 갖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 그걸 뭘 굳이 말하냐? 친구끼리.” 하늘이가 멋쩍어했어. “친구라고 해도 말은 해야지. 그래야 알지.” “맞다. 친할수록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필요해.” 하늘이와 재현이가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속내를 털어놓으며 나누는 대화이다. 우리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다 알 것으로 생각해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친구를 오해하고 서운해한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갈등이 해결될 것이다.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좋은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주인공 재현이는 베프였던 하늘이를 떼어내려는 엉뚱한 방법을 썼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하늘이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어떻게 베프가 되었는지 깨달았다. 좋은 친구를 갖고 싶고 친구와의 갈등에 힘들어하는 어린이에게 『베프 떼어내기 프로젝트』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과 이다 생명문화 출판 콘텐츠 공모전(공동수상), 전북아동문학상, 불꽃문학상을 수상했고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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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0 18:4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창영 작가-김민철 '문학 속에 핀 꽃들'

이제 곧 눈이 내리면 세상에는 눈에 파묻힌 동백꽃 사진이 넘쳐날 것이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도 동백나무가 나온다. 이 소설에 나오는 동백나무는 우리가 아는 붉은 동백이 아니라 강원도에서 ‘생강나무’를 부르는 이름이다.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는 중부 이북 지방에서는 생강나무 열매로 머릿기름을 만들어 사용했기에 ‘동백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나 역시 식물공부를 하기 전에는 생강나무와 산수유가 헷갈렸다. 멀리서 보면 두 식물이 거의 비슷하여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강나무 잎을 비비거나 자르면 생강 냄새가 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가장 큰 차이는 생강나무는 산에서 자생하고 산수유는 마을이나 공원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나뭇잎 모양도 다르다. 『문학 속에 핀 꽃들』은 저자가 야생화에 빠져 산과 들을 다니며 생겼던 궁금증을 공부한 결과물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식물을 다루고 있는 책은 이미 많다. 사전 형태의 책들은 식물을 구별하는 데 유용하지만 내용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소설 속 장면을 기반으로 식물을 설명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식물에 관한 소소한 지식이나 사진을 보는 또 다른 즐거움도 있다. 이 책에서는 33개의 소설과 100개의 꽃을 다룬다. 독자들에게 익숙한 소설이 많아 더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특히 이 책은 꽃을 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자연스럽게 꽃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돕는다. 나의 경우, 생소한 꽃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책 내용이 더 궁금해졌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소설과 꽃의 주변 이야기를 함께 소개함으로써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자신이 읽은 소설에 이런 식물이 등장하는지 모르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도 있지만 보기 힘든 식물도 다루고 있다. 그만큼 이 책에는 다양한 식물이 나온다. 이미 아는 독자라면 식물과의 추억이 자연스레 떠오를 수 있다. 만약 낯선 식물이라면 다음에 만날 기회를 미리 약속하는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소소한 상식 얻는 것도 쏠쏠하다. 예를 들면, 백합과 나리가 같은 꽃이라는 사실이나 평소 헷갈리는 갈대나 억새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혜도 얻는다. 이런 잔잔한 재미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별개의 즐거움이다. 만약 식물에 대한 관심이 없는 이라면 이 책에 눈길을 주어도 좋다. 아마 책을 덮고 나면 책 속의 식물들을 직접 보고 싶어질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책과 친해져 보는 것은 어떨까? 내년에 자연에서 만날 꽃이 더 기다려지지 않을까 싶다. 장창영 작가는 전주 출신으로 200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불교신문·서울신문 신춘문예에도 당선돼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동백, 몸이 열릴 때> 와 문학이론서 <디지털문화와 문학교육>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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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3 18:1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아동문학가-'벨루가의 바다, 전은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제주도에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곳곳을 찾아다니며 육지와는 다른 풍경과 먹거리를 접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중에서 아이들이 가장 환호성을 지르며 제주도를 떠나 집으로 돌아와서도 이야기한 건, 단연 돌고래쇼였다. 조련사의 신호에 따라 공중에 떠 있는 링으로 수십 번씩 넘나들고, 조련사와 입을 맞추기도 하고, 공중제비를 열심히 도는 모습에 관중들이 열광하며 박수를 보냈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도 돌고래쇼에 넋을 잃고 공연이 끝나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돌고래쇼를 보고 나오자 수조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떠다니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돌고래쇼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더 신비한 세계를 접한 것처럼 수조 앞 유리에 매달려 오랫동안 서 있었다. 수조 안에는 잠수복을 입은 조련사가 열대어들 사이를 유영하며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브이자를 보였다. 또 다른 수조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좁은 수조 내부가 불만이듯 몸부림치는 상어도 있었다. 그때는 아이들과 함께 물속의 생물들을 신기해하며 바닷속에서 하나가 된 듯 감탄만 했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지만 문제라는 의식을 갖지 못했다. 최근 위와 같은 생태계를 거스르는 일들에 대해 서슴없이 지적하는 책이 나왔다. 바로 《벨루가의 바다》이다. 벨루가는 태생적으로 쉽게 눈에 띄는 운명을 지녔다. 다른 고래와는 달리 온몸이 하얀색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얀 색깔 때문에 인간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벨루가는 생명이라는 존재를 넘어서서 상업적 도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결국 인간은 벨루가를 무차별적으로 잡아서 수조에 가둬 두기도 하고, 은밀하게 거래되기도 하고, 고래 쇼를 하기 위한 훈련의 도구가 되었다. 인간은 같은 동종이 아닌 생명에 대해 타자화시키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그들의 생명에 대해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일찍이 모든 생명에 대해 감각적으로 느끼고 타자성을 주체화시킨 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나마 지금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벨루가의 바다》의 작가처럼 상처받은 생명체들의 감각을 그대로 받아들여 세상을 향해 외치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를 주체화하자고. 《벨루가의 바다》에서 주인공 벨루가 ‘루하’는 인간의 손에 잡혀 온다. 영문도 모른 채 고래의 감옥인 수조 속에 갇혀 친구들의 죽음을 보기도 하고, 고래 쇼를 위해 훈련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래 고래가 머물러야 하는 바다를 그리워하고, 결국 바다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과연 벨루가 ‘루하’는 인간을 벗어나 먼바다를 향한 그리움과 좌절과 아픔을 넘어서 인간의 욕망을 건너갈 수 있을지는 독자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도 그것을 원했을 것이다.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책을 읽으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스스로 사유해야 한다고. 생명에 대해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순간이 아쉬운 시절이다. 이경옥 아동문학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으며, 2024년 안데르센상 창작동화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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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6 18:3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지호 소설가-'초승달과 밤배, 정채봉'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람, 사건, 책이 있습니다. 대학생 때 세를 살았던 서완산동 언덕집은 오가는 골목길이 퍽 좁았습니다. 새마을 사업 때 길을 낸, 리어카 한 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실골목이었으나 제법 많은 행인이 오갔습니다. 효자동과 중화산동을 연결하는 지름길인지라 이른 새벽에는 막노동하시는 분들이, 다음에는 학생들이, 밤중에는 막걸리에 취한 행인들이 흥얼거리며 왕래했었습니다. 한번은 그 골목길에 할머니 한 분이 쓰러져 계셨습니다. 쓰러진 사람을 뛰어넘어 등교할 수는 없고 곁에 앉아 이유를 물으니 ‘너무 어지러워 걷지를 못하겠다’는 겁니다. 언덕 너머에 있는 인력사무소를 통해 조적‘메지’일을 다니시는데 오늘은 갈 수가 없겠다고 하십니다. 당신 인생 같은 좁은 골목길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고 서러운 말씀을 하십니다. 사시는 곳은 삼천동. 소주병과 담배꽁초가 너저분한 자취방에 모실 수 없어 부축해 큰길로 나왔습니다. 주머니를 뒤지니 학생 식당 식권 몇 장과 현금 4.000원이 전부였습니다. 택시 잡아 뒷자리에 모시고 기사님께 현금 전부를 드리며 댁까지 모셔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유가 있으시면 들어가시는 모습을 지켜달라 말씀드렸습니다. 기사님이 염려 말라고 그러겠노라고 눈을, 고개를, 곰처럼 끄덕였습니다. 출발하기 직전 할머니께서 창문 너머의 저를 지긋이 바라보셨습니다. 그 찰나에 참 많은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압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고기반찬을 먹고, 자가용을 타고, 두 아이를 키우고, 따뜻한 방에 누워 시집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때의 그 공덕 때문임을 압니다. 할머니의 눈빛, 그 간절한 축원으로 저와 우리 식구들이 살아올 수 있었음을 압니다. 「초승달과 밤배」란 책도 그랬습니다. 예민한 사람으로 태어나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술주정을 겪는 사춘기 소년을 위로해 준 책. 자칫 더 그르칠 뻔했던 심성과 인생을 바로잡아 준 책이 초승달과 밤배입니다. 저를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책 한 권을 고르라면 저는 또「초승달과 밤배」를 고르겠습니다. 훗날, 아내가 ‘이제 마지막 책을 써야지’라고 권하면 저는 그때야 비로소「초승달과 밤배」를 쓰겠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삼신할매인지도 모를 그 할머니의 시간을 초월한, 미리 준 선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통해 정채봉 선생님을 알았고 그래서 읽었던‘숨 쉬는 돌’, ‘오세암’ 등은 제 안에 글을 쓰게 하는 슬픔 같은 것, 그리움 같은 것을 심어주었습니다. 나머지 서평은 그 정채봉 선생님의 서문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사춘기) 떡잎을 제치고 나타난 본잎에는 악성이 깃드는 것일까. 부단한 외부와 내면의 충동은 자신을 혼란케 한다. 작은 것을 원하던 꿈이 거대한 것으로 바뀌기도 하고, 목적지 없는 방황에 흐르기도 하며, 심지어 까닭 없는 분노에 시달리기도 하는 것이 이때이다. 난나의 방황과 반항은 청춘의 영원한 명세서이기도 하다. 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인생 여정을 다스려 나갈 힘을 얻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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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30 18:5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작가-이정환, ‘이정환 문학전집’

뜻한 대로 되는 일은 드물고, 일을 그르치는 때는 숱하다. 그러나 실패는 얼룩진 삶의 실제 무늬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오늘의 명백한 실패와 좌절이 새로운 시도와 내일의 성공에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도 있다. 전주 출신 소설가 이정환(1930∼1984)의 삶과 문학이 그렇다. 1976년 단편집 『까치방』으로 작가의 입지를 굳히고, 1978년 『창작과 비평』에 장편소설 「샛강」을 연재하며 인기 작가가 된 이정환은 이문구(1941∼2003)에 의해 실명(實名) 소설이 쓰일 정도로 문단 안팎의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당뇨로 인한 실명과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독자들에게 잊혔다. 그러나 작가정신이 무엇인가를 묻는 말에 그의 굴곡진 삶과 문학은 통째로 답을 들려준다. 이정환은 평생 책더미에서 살며 책 읽기와 소설 습작에 몰두했다. 부친이 전주에서 서점을 했고, 자신도 1959년 전주남부시장에 <덕원서점>을 열어 9년 동안 운영하다 전동으로 옮겨 1년 동안 <르네상스서점>을 했다. 1970년 서울로 옮긴 그는 『신동아』 논픽션 공모 당선 상금으로 가판서점을 냈고, 4년 뒤 <대영서점>을 열었다.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해 군대에서도 호주머니 빽빽하게 책을 넣고 다녔는데, 한국전쟁 당시 어느 전투에서 따발총 총알이 책이 든 호주머니를 맞혀 목숨을 구한 일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그의 20대는 1년의 군 생활과 7년의 수감생활로 가탈이 많았다. 전주농업학교 재학 중에 터진 한국전쟁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학도병으로 참가해 포로가 되었으나 탈출했고, 육군에 입대했다가 휴가 중 모친의 숙환으로 귀대날짜를 넘겨 탈영병이 되었다.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몇 차례 감형으로 7년 만에 석방됐다. 이정환은 1970년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안인진 탈출」이 당선돼 문단에 나온 뒤 도시 빈민과 수감자들의 삶을 사회 구조적 시각으로 고발하는 7편의 장편과 67편의 단편을 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그러나 10년 넘게 고생하던 병마는 1980년 그의 눈을 뺏고 만다. 그래도 창작 열정은 여전해 자를 대고 써내는 원고를 아내가 해독했고, 손가락이 부어 볼펜을 제대로 쥘 수 없을 때는 아내와 딸이 그의 구술을 받아 적었다. 가난도, 병마도 막을 수 없는 글쓰기. 소설은 곧 그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정환은 수인 생활과 빈곤으로 굴곡 많은 삶을 살았지만, 이때의 삶이 훗날 소설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바탕이 되었다. 자신이 겪은 사형수와 무기수라는 극한의 상황과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과 상처를 소설로 치유한 것이다. 오랫동안 잊혔던 그의 작품도 여러 사람의 힘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열권으로 묶인 『이정환 문학전집』(국학자료원·2020)이다. 전집에는 전북일보에 연재한 「부부」를 비롯한 소설들과 미발표 유작들, 전집 준비 과정에서 발견된 유고 시(詩), 육필 원고 등 그의 모든 자료를 담았다. 책을 펼치면 곡절을 알고, 책을 덮으면 곡절이 풀린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4.10.23 18:4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정숙인 작가-전희식,김정임 '똥꽃'

인류는 이런저런 이유로, 지구 곳곳에서 다른 목소리와 생태로 살며 갈등과 경쟁을 하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고, 의지하고, 돌본다. 혼자이든 둘이든 여럿이든, 사회 공동체라는 스펙트럼에 고였다 사라진다. 『똥꽃』은 원시적인 모자간의 이야기이고 둘의 이야기이다. 그 모자(母子)의 일상을 따스한 시선으로 쫓을 때 독자는 그들의 삶이 아닌 내 삶의 사다리를 조금은 더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똥꽃』 의 저자 전희식은 ‘가족을 돌보고, 요양원을 지키고, 누군가를 챙기느라 수고하는 분들께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15년의 시간차를 두고 개정판’을 냈다 한다. 초판에서 개정판으로 재구성되기까지의 십몇 년의 시간 사이에는 전희식, 김정임 두 저자의 생(生)과 사(死)가 있다. 멀찌감치 파도가 밀려간 해변을 걷다, 이미 사라진 물결의 각인을 발견했을 때의 가슴 아린 그리움처럼 어머니와 아들의 시간이 부려놓는 삶의 깊이에 저절로 숙연해지고 만다. 어머니와 2년 가까운 날의 일상을 초판으로 읽었던 독자라면 어머니와 함께한 6년여의 세월 이후 추모의 시간까지, 숨은 그림처럼 덧붙여진 이야기를 찾는 재미도 있다. 어머니를 돌보던 아들의 깨달음은 수없이 많은 아포리즘으로 완성되어 마치 소설 같기도 한, 두 저자의 이야기는 독자의 가슴에 생생하게 부딪혀온다. 전 권에 흐르는 모자의 에피소드는 큰형님 집에 사시는 어머니를 찾아뵌 어느 날로부터 시작된다. 어머니의 환각 증상을 접했을 때의 충격은 아들의 말을 거둘 만큼 컸다. 당신 삶의 여정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무시당한다고 느꼈을 어머니의 좌절감을 생각해 본다. 치매란 가족 모두에게 있어 당황스럽고 난처한 일임은 분명하다. 어머니가 그린 똥꽃을 생각하면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고통이나 아픈 감정으로 바로 연결 지어 돌봄이 힘들다는 것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신중해야 할 일이다. 아들은 어머니의 치매를 ‘포기한 삶의 틈새로 끼어든 이물질들’이라고 결론 냄으로써 진정, 어머니의 망각을 ‘잠재된 고의’였다고 이해한다. 필자는 이런 생각이 든다. 노쇠한 몸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기에 느끼는 참담함에 이어 자신을 수용하는 대신 자신의 기억을 거세시킴으로써 일탈에 성공하는 것이 치매가 아닌가 하고.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온 당신의 존엄을 침해당하지 않기 위한 거스를 수 없는 손실, 꼬리 밟힌 도마뱀이 몸의 일부분을 포기하듯 무의식적 자아가 자신의 기억을 내치는 건 아닐까 하고. 우리가 즐겨하는 ‘알아서’의 코드를 작동시켜, 통제되지 않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세포들이라서 그랬을 거라고. 인간의 육체에 담긴 가늠할 수 없는 수의 우주의 작업 방식이라고. 모자의 관계는 선택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무엇보다 자신의 존엄을 위해서 식물적 삶을 산다고. 두 저자인, 어머니와 아들의 일상을 보면 현재를 재조합하는 설계자가 되는 어머니와 그 세계의 파동으로 같이 순항해 가는 아들의 극적인 돌봄의 경지에서 독자도 덩달아 환희를 경험하게 된다. 치매를 겪는 어머니의 세계를 아들이 사는 평행 세계 어디쯤이라고 상상한다면 놀랍게도, 분명 우리가 유레카라고 할 수 있는 존엄의 키워드를 찾아낼 수 있다. 독자는 어머니 자신과 어머니가 아닌 그 누구의 세계로 각기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진다. 정숙인 작가는 201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백팩'으로 등단했다. 작품으로는 몇 편의 단편소설과 채록집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라는, 개복동에서>(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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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16 18: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근혜 작가-이정주 '카카오톡이 공짜가 아니라고?'

아침에 눈을 뜨며 곧장 카카오톡부터 확인한다. 자는 사이 왔을 카톡과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언제부턴가 버릇이 됐다. 일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도 습관적으로 카카오톡을 본다. 하루에 적게는 서너 개, 많게는 수백 개의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고, 실시간 뉴스와 쇼핑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송금까지 되니 만물백화점이 따로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제 카카오톡은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일부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대체 카카오톡에는 어떤 영업비밀이 있기에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왜 다른 플랫폼은 카카오톡만큼의 영향력이 없을까? 카카오톡이 나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다들 한 번쯤 생각했으리라. 이런 의문에 답을 주는 책 한 권을 최근 알게 됐다. 작가는 이정주. 출판사는 개암나무. 작가는 중앙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20년간 대기업 홍보실에서 일한 경험을 녹여 어린이를 위한 경제 서적을 출간했다. 이름하여 『카카오톡이 공짜가 아니라고?』(이정주/개암나무)이다. 작가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경제의 흐름을 알면 선택이 필요한 상황에서 훨씬 유리하리란 생각에 이 글을 썼다고 밝혔다. 내가 여태 그걸 몰라서 불리한 경제 활동을 했던 걸까? 더불어 어린이들이 생활 속에서 경제를 파악하는 눈을 지니고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얻기를 바라면 좋겠다는 출간의 뜻을 밝혔다. 분명 어린이의 경제 관념을 키워주기 위해 쓴 책일 텐데 마치 경제에 미숙한 어른이인 나를 위해 쓴 것 같아 마음이 쏠린다. 서둘러 목차를 보았다. 유튜브부터 무인 점포까지 어린이들이 가장 관심 있고 좋아하는 소재로 구성되었다. 질문 형식의 제목들은 책을 읽기 전에 어린이 스스로가 이런저런 답을 생각해 보게 했다. 내용은 두말해서 무엇하리. 20년 동안 대기업에서 듣고 묻고 실천했을 경제 논리를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친절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모든 주제의 출발은 짧은 동화다. 딱딱하고 지루한 경제 상식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포문을 열어 정보글로 수월하게 진입하도록 돕는다. 동화를 읽고 나면 <생각해 봅시다>라는 코너가 나오는데 앞선 이야기에서 토론 거리를 가져와 주제를 심도 있게 살피게 한다. 다음 장에서는 관련 정보를 세분화하여 읽는데 지루함이 없도록 했다. 등골브레이커라는 신조어가 있다.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지우는 사람이나 제품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데 한 벌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유행템을 사달라는 아이의 요구로 부모의 등골이 휘어진다는 웃지 못할 사회 현상이 씁쓸하기만 하다. 무분별한 묻지마식 소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올바른 경제 개념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하지 않을까? 그 시작이 독서면 어떨까? 백 마디 말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경제 서적을 읽으면서 대화하고 계획을 세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경제를 이해하고 올바른 소비 습관을 키울 것이라 믿는다. 그 작고도 큰 습관은 어른이 되었을 때 거대기업의 상술에 휘둘리는 호구가 아닌 현명하고 주체적인 소비자로 이어질 것이다. 김근혜 작가는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동화 『다짜고짜 맹탐정』과 『봉주르 요리 교실 실종 사건』, 『유령이 된 소년』, 『나는 나야!』, 『제롬랜드의 비밀』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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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9 16:2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김자연'거짓말을 팝니다'

일을 끝내고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는데, 우체통에 봉투 하나가 꽂아 있다. 반갑게 받아든 김자연 작가의 신작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신작을 받아든 속마음은 늘 같다. ‘와우, 대단하다. 글을 쉬지 않고 쓰고 있었구나.’ 감탄을 한 후 테이핑 한 부분을 서둘러 떼고, 앉은 자리에서 몇 페이지를 읽는다. 그러다 쌓이는 책이 있는가하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곤 한다. 『거짓말을 팝니다』라는 제목을 읽는 순간 한달음에 읽었다. 아니, 뭘 팔 게 없어 거짓말을 파나 싶은 생각에서부터였다. 다 읽고 난 후 뒤표지를 보니 이리 쓰여 있었다. 이런 spoiler가 또 있을까 ‘아이쿠’ 싶었다. 김자연 작가는 늘 자신감 넘치는 보스같다. 열 일하는 여장부 같은 이미지가 확 들어온다. 하지만 그녀의 긴 속눈썹을 보면 천생여자다. ‘핸드폰 요금 100만 원! 다 너 때문이잖아? 절친이라고 믿었던 수연이가 핸드폰 요금 폭탄을 내게 뒤집어쓰웠다. 뻥수연,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자꾸만 자라나는 거짓말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수연이는 반에서 ‘뻥수연’으로 통하는 거짓말쟁이다. 이인이는 수연이 자기 친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느닷없는 수연이 엄마의 전화에 모두 한꺼번에 무너졌다. ‘100만원’ 이란 큰돈이 아인이 때문에 수연이가 핸드폰 요금 폭탄을 맞았다고 하면서다. 아인이가 위기를 풀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거짓말을 한 수연이가 운동장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서만큼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다. “느티나무 할머니, 제 거짓말 좀 다 사 주세요.” 아인이는 원망스러운 수연이와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진실을 말할 수 있게 징검다리 역할을 아인이가 하게 된다. 운동장 외진 곳에 있는 느티나무, 그 안에 거짓말을 사주는 할머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의 비밀을 대나무 숲에 말하는 이발사와 역발상처럼 재미를 더 한다. 누구나 거짓말 한 번씩은 해본 경험은 있을 것이다. 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다. 거짓말은 그렇다. 동화 속 수연이는 엄마를 실망 시키거나 기대에 못 미칠까봐 점점 거짓말이 쌓여만 갔다. 느티나무가 없었더라면 수연이는 엉망이 되었을 텐데 좋은 방어기제가 되어주었다. 교육적으로 좋은 소재이며 내용이다. 거짓말을 한 수연이 마음에 공감하는 아이들이 많을 테니까……. 핸드폰 때문에, 친구들 간에 문제, 성적, 무시 받기 싫어서 등등 이유가 많다. 그래서 이 책은 어른도 읽어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볼 기회를 준다. 아직도 후회되는 기억이 있다. 큰애가 영어점수를 속여 혼을 낸 적이 있었다. 거짓말 했다는 이유로 어지간히 혼냈었다. 지금도 후회된다. 터무니없이 낮은 점수를 속인 것은 점수를 알면 뻔히 나올 엄마의 화가 무서웠던 거다.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나는 어릴 적 기억이 많은데, 그때 겪은 오류는 천연덕스럽게 잊고 부모행세를 했다. 『거짓말을 팝니다』는 전개에서 감도는 긴장감이 돋보인다. 이인이의 행동이 자연스러우면서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는 역할이 주는 의미가 크다.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됐으며, 같은 해 동양일보 동화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저서로는 장편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 청소년 소설 <가족이 되다>, 2023년 수필 오디오북 <구멍 난 영주 씨의 알바 보고서>, <너의 여름이 되어줄게>, 5人앤솔러지 청소년소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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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25 17:3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헌수 작가- 이경재'시가 내 인생에 들어왔다'

시를 쓰고 아동문학가, 시조시인으로 활동하는 이경재 전주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몇 해 전 인문학 강의에서 만난 그는 굉장히 유쾌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공감백배를 누르고픈 강의와 많은 것을 안겨주는 사랑의 마음이 무던하게 묻어난다. 웃음소리가 넘치게 흐르고 편안하고 익숙하게 강의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가 시 에세이집 ‘시가 내 인생에 들어왔다“를 발간했다. 그는 시를 경영, 경제, 보험, 치유, 행복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해 연구하고 강의한다. 그는 “전 국민의 시인화 즉 초등학생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시를 쓰고 시와 함께 치유와 행복을 누리는 세상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 책을 출간했다”고 말한다. 이어 “많은 사람이 시를 어렵고 딱딱하다고 생각해 시에 흥미를 잃거나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시 쓰기가 만만해질 것” 이라고 말했다. 시작 노트와 함께 시작법을 곁들인 시를 통해 창의력을 증진하거나 시를 써보고 싶은 분들께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며 시를 감상하며 혹은 시작노트를 엿보며 자연스럽게 시를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는 게 괴롭고 힘들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창의성이 간절하게 필요하다면,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당신에게 시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시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딱딱하고 어려운 전공과목을 더 쉽고 재미있게 강의 하고 싶은 마음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기발하고 통찰력 넘치는 시를 동원해 강의를 하자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시를 읽고 쓰며 시인이 되었다. 51편의 다양한 시편들이 실려 있는데 재미도 있고 때론 뭉클함을 전해준다. ‘400만 원짜리 시조’ ‘항복하면 행복해요’ ‘땡땡이 넝쿨장미’ ‘넘어져도 괜찮아’ ‘찰밥 한입’ 등. ‘휴대전화’라는 시에는 내가 너를 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네가 나를 쥐고 있구나 처럼 무릎을 탁 치게 만들거나 머리를 한 방 얻어맞게 해주는 시들이 많다. ‘항복하면 행복해요’라는 작품은 미소를 짓게 한다. 친구 단체 대화방에 새해 인사를 남겼다. 새해엔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라고, 아뿔싸 보내놓고 보니 오타가 있었다. 얼른 항복 말고 행복이요. ㅎ라며 다시 카톡을 보냈다. 시는 새해 인사를 나누는 단체 대화방에서 나눈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인생에 시가 들어오면서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성장하는 어른의 모습을 만난다. 시를 쓰면서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나를 성찰하며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훈련도 하게 된다. 자신의 품이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짐을 그는 말한다.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난 뒤 삶은 그것을 보기 전과 후로 나뉜다. 영화 ‘인생 후르츠’를 보는 내내 부드러움 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맴돌았다는 그. 부드러운 삶을 산다는 것은 누군가와 각을 세우지 않는 것이고 각을 세우지 않으려면 빨리 져 줄줄 알아야한다고 말한다. 오래 익을수록 인생은 맛있다. 천천히 차근차근 부드럽게 인생을 살아보면 어떨까? 시를 쓰면서 내 인생이 맛있게 영글어 가는 것처럼, 시가 그의 인생에 창조적인 일상을 보듬는 열매로 오래 머물기를 바래본다. 김헌수 작가는 20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삼례터미널'로 등단해 시집으로는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 <조금씩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이 있고, 시화집으로는 <오래 만난 사람처럼>, <마음의 서랍>이 있다. 오디오북으로는 <저녁 바다에서 우리는>이 있다. 작가는 전북작가회의 작품상을 받았으며 글과 그림을 짓고 그리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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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8 16:0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문상붕, 이정관, 장진규, 형은수 ‘너 어디 있느냐’

비가 옵니다. 멧비둘기 한 마리가 은행나무에 앉아 사색에 빠졌습니다. 생명은 힘. 스스로 움직이거나,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죠. 생명과 평화와 통일을 온몸으로 실천했던 문규현 신부님. “사람들은 그를 몸이 먼저 움직이는 행동파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쓴 저서들과 감옥에서 쓴 항소이유서 등을 보면 그는 학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가 행동으로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면 그것은 치열한 고민과 사제로서 순명에 따른 결과입니다”(275쪽). 〈너 어디 있느냐〉가 하늘에서 비둘기를 내려다보는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문 신부는 삼보일배를 하면서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생명의 것이라는 사실을”(203쪽)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약자들의 눈물에 즉각 반응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활동하고 실천합니다”(237쪽). 생명의 팔을 걸고 푸른 들을 가는 영성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평화란 전쟁이 없는 것, 서로 따지며 다투지 않는 것, 안팎의 갈등이 없는 것이죠.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137쪽) 데려오면 평화도 따라오겠죠. “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한 7·7선언은 남북 동포의 상호 교류 및 해외 동포의 남북 자유 왕래 개방, 이산가족 생사 확인 적극 추진, 남북 교역 문호 개방, 비군사 물자에 대한 우방국의 북한 무역 용인, 남북 간의 대결 외교 종결, 북한의 대미·일 관계 개선 협조 등을 포함하고”(90쪽) 있으니 곰곰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통일에는 “다양한 부분을 제시하면서 하나로도 파악되는 관계”라는 의미도 있죠. 비둘기는 308종이라고 합니다. 널리 볼 수 있는 것은 집비둘기와 멧비둘기죠. 분홍 가슴 비둘기도 있어요. 그러나 비둘기는 비둘기. 한민족은 한민족. 문 신부와 임수경은 하나를 하나라 말하고 싶었겠죠. 1989년 8월 15일 14시 20분, 5cm 분단의 벽을 넘은 이유입니다. “그 뒤 소 떼가 넘어갔어요. 이산가족들과 개성 공단 사람들과 금강산 관광객들이 오고 갔고요”(140쪽). “‘지배계급이 인민을 억압 착취하는 도구로 혁명 의식을 마비시키는 아편’이라고 규정되어 있었던 북한의 종교는 ‘초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 신이나 하느님과 같은 거룩한 존재를 믿고 따르며 내세의 영원한 행복을 믿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143쪽). “기도는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것이고 미래를 향한 것입니다. 기도는 나를 변화시켜 길을 찾게 하고 갈등을 줄이며 불화와 집착을 버리게 합니다”(233쪽). “낮은 데로 눈이 향하면 소외된 것들이 보입니다. 보이면 중요하지 않은 게 없고 차별이 사라집니다. 거기에서 연대가 싹트고 사랑이 생깁니다”(251쪽). ‘그래도 희망입니다’에 제 시에서 꺾은 ‘코끝이 빨간 희망’ 한 송이를 드립니다. 비둘기가 약속이 있다는 듯 날아갑니다. 가지를 박차고 힘 있게 갑니다. 그에게 분단된 하늘이 있을까요? 커피를 홀짝이며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부리 위로 온전한 하늘이 내리겠지요. 이영종 시인은 2012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어 2023년에 첫 시집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였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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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1 17:3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이보현 '오늘 또 미가옥'

아, 이 마음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정확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사랑인 것이 분명하다. 난데없이 사랑 고백을 하는 대상은 콩나물이다. 나는 콩나물이 정말 좋다. 콩나물과 관련된 이야기도 좋아하고, 수없이 많은 콩나물을 이용한 레시피도 즐겨 따라 했다. 너무나 좋아해서 나와 콩나물을 다룬 이야기를 101가지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중에서도 상당수는 콩나물국밥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다. 해산물을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면 전주를 방문하는 모든 손님에게 콩나물국밥을 선보였다. 누구 하나 실망하게 한 적 없이 늘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고, 콩나물국밥 가게에서라면 얼마든지 콩나물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어 즐거웠다. 이런 이야기만 대충 세더라도 50가지는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주 사람이라면 저마다 가슴에 품은 콩나물국밥 한 그릇은 가지고 있기 마련 아닌가. 그래서 막연하게 누군가는 콩나물을 지독하게 사랑한 이야기를 쓴 것이 있지 않을까 언제나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이보현의 『오늘 또 미가옥』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콩나물국밥을 사랑하며 쓴 기록의 모음이다. 콩나물국밥에 대한 사랑은 나도 넘치게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 반, 기세등등한 마음 반을 가지고 책을 폈다. “미가옥의 콩나물국밥을 사랑한다. 너무 사랑해서 맨날 맨날 가고 싶다. 너무 사랑해서 매일 매일 먹고 싶다. 너무 사랑해서 계속 계속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 또 미가옥』 中) 책의 서문부터 저자의 두서없는 사랑 고백이 시작된다. 가장 사랑했던 가게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것은 저자의 추억 속 공간이다. 그래서 그는 책 속에서 그곳을 미가옥 사랑점이라고 부른다. 엄청난 기세의 사랑 고백에 나는 초장부터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콩나물국밥을 사랑한다고 말해왔지만, 나의 사랑은 이 정도로 절절한 고백은 아니었던 것 같다. 비단 콩나물국밥을 향한 사랑 고백과 찬가로만 가득 찬 글은 아니다. 콩나물국밥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되고 확장된다. 엄마가 해주던 어릴 적 떡국 이야기, 사랑점의 사장님과 종업원 간의 미묘한 관계, 콩나물국밥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와의 일, 전주의 수많은 콩나물국밥 가게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콩나물국밥을 먹어보겠다는 포부까지. 저자의 말을 따라 콩나물국밥을 떠올리며 침을 삼키다 보면 어느새 그의 주변을 빼곡하게 둘러보게 된다. 사랑하는 일을 이렇게나 꼼꼼하고 치열하게 기록해 본 적 있는가 하면 쉽사리 대답하기 어렵다. ‘좋다’ ‘굉장하다’ 말만 늘어놓았을 뿐, 그것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주변을 둘러본 적은 없었다. “계속 콩나물국밥을 생각하고, 먹고, 이야기할 테니 ‘오늘은 어디에서 콩나물국밥을 먹을까’를 언젠가 쓰겠다고 다짐한다. 그때까지 세상의 콩나물국밥을 마음껏 사랑하겠다.” (『오늘 또 미가옥』 中) 나의 콩나물국밥 세계는 한없이 좁고 보수적이었다. 나만의 사랑점을 두고 다른 가게로 눈을 돌려볼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나의 세계를 넓혀볼 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콩나물국밥을 먹기 위해서! 최아현 소설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아침대화>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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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4 17:2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진숙 수필가-김중미'느티나무 수호대'

경북 예천에는 천연기념물 제400호로 지정된 팽나무가 있다. 5월에 누런 꽃을 피운다고 해서 ‘황 씨’ 성을, 근본이 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목근’이라는 이름을 받은 이 나무는 재산세까지 낼 정도로 존재감이 있다. 김중미 작가는 이 나무의 이야기를 씨앗으로 품어 청소년 소설,『느티나무 수호대』를 발간했다. 이 책은 ‘2024 전주 올해의 책, 청소년 부문’으로 선정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대포읍’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서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느티나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닌,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눈 존재로 묘사된다. 느티나무 안에는 '느티 샘'이라는 정령이 살고 있으며, 이 정령은 아이들을 나무 안의 세계로 초대해 그들을 돌봐준다. 이 판타지적 설정은 돌봄이 절실히 필요한 현실을 반영하며, 독자들에게 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주인공 도훈이는 베트남에서 온 엄마와 살 때도 언어와 문화의 벽을 느끼며 소통하지 못해 외로워하는 중학생이었다. 부모님의 이혼 후 더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고립되지만, 우연히 느티 샘을 만나면서 친구들을 사귀고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친구들과 결성한 댄스 동아리 ‘레인보우 크루’ 활동을 통해 더욱 소속감과 자존감이 생기고 느티 언덕을 지키기 위한 연대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 느티 샘은 갈 곳 없는 아이들을 환대하며, 아침을 굶는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제공하고, 친구가 없는 아이들에게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너희의 권리와 행복을 지키려면 알아야 할 것이 많아. 그 앎이 너희의 힘이 되어줄 거야."라며 책 읽기를 권장하고, 때론 친구이자 엄마로서 또 선생님이 되어 앎과 지혜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지역과 연대하여 지역을 살리는 활동을 하고 있는 김중미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느티 샘이 만들어 준 공간을 찾는 아이들은 저마다 돌봄이 필요한 처지이다. 다문화 배경을 가진 청소년들이 서로를 통해 성장하고, 마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돌봄과 연대의 필요를 절감하게 된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는 나무가 된다. 무너지고 나약해져 포기하려는 친구를 향해 “뛰어갈 수 없으면 걸어, 걸어갈 수 없으면 기어. 너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같이하는 거야. 무릎 꿇지 마, 무너지지 마.”라며 방탄소년단의 노래로 친구를 격려하고 세워주며 공동체의 주역이 된다. 이처럼 느티나무와 느티 샘은 아이들이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요한 배경이며 자연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체득하는 현장이 되어준다. “희망은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슬픔과 절망을 거름 삼아 싹을 틔운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모든 외로운 마음들이 다시 연결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가치들을 일깨우며, 깊은 감동과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소설이다. 이진숙 수필가는 전직 국어교사 출신으로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됐다. 이후 최명희문학관에서 “혼불” 완독 프로그램 진행하며, <우리, 이제 다시 피어날 시간> 오디오북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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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28 15:5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이소애 <몽돌이라 했다>

사계절이 시인들에게는 춘궁기다. 영상매체로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대형서점에 가도 시집 코너는 구석에 있어 찾기 어렵다. 시장만 탓하기엔 개운치 않은 것이 시인과 독자 간극이 크다. 치열한 자기 세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시는 어려워지고 독자는 갈피를 못 잡고 소외된다. 게다가 비평가의 취향과 기호에 따른 해설은 독자 자신의 문해력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접근성을 떨어뜨린다. 누군가는 안이한 독서 태도를 비판하며 독자에게 수준 높은 이해와 몰입을 요구한다. 다행히 시에 대한 낭만적 관념과 치기라는 접점이 있어 멸절되지 않고 세계의 작동방식으로써 기인한다. 이소애 선생의 시 에세이 『몽돌이라 했다』는 시 84편에 감상과 해설을 덧붙인, 시의 근원적 가치가 무엇인지, 시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다. 지면상 몇 작품만 소개해 본다. 복효근 시인의 “몽돌해변은 돌의 수도원 통성기도가 적막으로 수렴되는 곳”(「꿈꾸는 돌」)에서 “몽돌은 처절한 고독과 아픔을 곱디고운 참회로 마음을 다듬었”다고 본다. “꽃밭에 꽃 꽃 꽃 가득 피었다 / 꽃밭에 한번 엎어져 보자던 그, 사람 오지 않고 / 꽃밭에 꽃 꽃꽃 시든다” 김용옥 시인의 「그리운 사람」. 이 짧고 담담한 시 한 편은 어째서 이리 쓸쓸하고 가슴을 아리게 하는가! 인간 보편정서 사랑과 ‘욕망’을 꽃이라는 관능적인 사물로 내면화하는 걸 두고 선생은 “그리움은 몸이 기억한다. 몸에 스며든 감정은 매일매일 꽃처럼 피어난다”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걸맞은 표현이다. 강연호 시인의 「감옥」도 반갑다. 물리적으로 갇혀있는 아내는 노상 즐겁고 열린 공간에서 자유로운 그는 오히려 출구를 찾지 못하고 세상에 갇혀 운다. 세상과의 전복과 대치 속에서 생활인 그는 한없이 외롭다. 인간이면 누구나 앓고 있는 ‘존재론적 고독’에 대해 선생의 “내부에 파도치는 격랑이 아닐까. 안식처를 잊고 바람처럼 방황하고 싶을 때가 있다. 갇혀있다고 스스로 생각할 때가 있다. 마음이 묶인 감옥에서 울어 본 사람은 안다.”라는 감상은 누구라도 공감할밖에. 문신 시인의 “이발소 의자에 앉아 빗소리 들었다 일흔의 이발사도 같이 듣는지 가위질 소리가 못내 예전만 못하였다 몸 낮춘 빗방울들이 일흔 살의 느린 선율 같아 때때로 사무쳤다(중략) 이발소 거울 속에서 한 생이 우기처럼 종일 흘러가고 있었다 아, 한 마리 초식동물이어라 조만간 이 우기를 혁명처럼 건너가겠구나”(「단골」) 다 읽은 뒤 필자는 한참을 ‘몸 낮춘 빗방울’이 된다. 게다가 이소애 선생의 풀이말은 또 얼마나 곡진하고 사무치는지! 독자들이여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이 외에도 안성덕, 배귀선, 유은희, 도혜숙 시인 등의 작품들과 시 해설도 좋다. 이들 공통점은 자의식과잉에 빠진 작품이 아니어서 난공불락의 해석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시는 슬픔을 더 슬픔답게, 파괴를 파괴답게 하는 장르다. 시는 견디는 작업이다.”라는 김해순 시인의 말이 유아독존, 자기 고립을 천명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내면에서 충돌하는 소리, 그 치열함에 대한 고뇌의 다른 표현인 것. 선생의 발자국을 따라 연결된 84개의 세계로 다녀왔다. 고립을 풀고 연민과 돌봄의 자세, 치유의 표상이자 연대가 가능함을 본 것이다. 선생은 우리가 취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삶의 균열을 미화하지 않는다. 다만 그곳에서 독자가 몽돌처럼 “처절한 고독과 아픔을 곱디고운 참회로 다듬”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명숙 작가는 전남 목포 출신이며,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 밖의 안부를 묻다>가 있다. 현재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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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21 17:5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동화작가-최연숙 '경성 기억 극장'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기억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도 그래. 어제 일도 기억이 안 난다니까.” 라고 말하곤 한다. 의기소침한 친구에게 용기를 주려고 한 말이지만 사실이다. 어제 내가 한 일을 떠올려보면 순간 백지가 된 것처럼 아무 기억이 안 난다. 결국 핸드폰을 꺼내 카드 결제 명세를 보며 ‘맞아’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수십 년 전의 어떤 일은 마치 방금 일어난 일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 속에는 잊고 싶지 않은 애틋하고 소중한 기억도 있지만, 절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추억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붙박이처럼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기억을 우리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최연숙 작가의 동화 『경성 기억 극장』에는 기억을 없애주는 장치가 나온다. 주인공 덕구는 자신을 돌봐주는 수현이 아저씨를 밀고했다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떨쳐버리려고 기억을 지운다. 덕구는 자신이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조선 학생에게 전쟁을 도우라고 연설한 여선생님과 필리핀에서 민간인을 폭격한 공군 비행사가 기억을 지우고 편안하게 돌아가는 걸 본다. 덕구는 고문당해 악몽을 꾸는 수현이 아저씨에게 기억을 지우라고 권하지만, 아저씨는 기억이 길잡이라며 거절한다. 나중에 자신이 했던 일을 알게 된 덕구는 다시 기억을 지우라는 말에 ‘기억을 지운다고 내가 한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며 고민한다. 기억을 지우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을 깨달은 덕구는 수현이 아저씨에게 사과하고 아저씨의 독립운동을 돕는다. 기억이 길잡이라는 말은 기억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찾는다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 그 기준이 되는 것은, 그동안 내가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것들, 또는 그것에 대한 기억이라는 말이다. 만약 그런 기억이 사라진다면 잣대를 잃은 우리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기억은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하고 부족함을 채워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상의 소중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 떠가는 뭉게구름처럼, 소소한 발견과 작은 기쁨으로 채워가는 순간순간을 기억하는 방법은 없을까? 힘들거나 외로울 때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팍팍한 삶을 여유로 바꿀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기억을 기록으로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먼지 쌓인 일기장을 꺼내 몇 년 전 날짜가 적힌 종이를 넘긴 뒤 오늘 발견한 사소한 즐거움을 적어보자. 먼 훗날 오늘의 기억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도록.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과 이다 생명문화 출판 콘텐츠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공동수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다.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열 살 사기열전을 만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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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07 18: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창영 작가-심정은 '환경수업도 업사이클링이 필요해'

핸드폰 요금을 정액제로 바꾸고 나니 늘 데이터가 부족하다. 월말이면 간당간당한 데이터 때문에 마음 졸인다. 그러다가도 아내가 자신의 여유분을 보내줄 때면 횡재한 느낌이 들었다. 월말까지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데이터이기 때문에 다 사용하지 못하는 달이면 손해 보는 기분까지 들기도 한다. 예전에 무제한 요금제를 쓸 때는 데이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부담이 없다 보니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데이터를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으나 어느 순간부터 무디어져서 쓰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어차피 무제한인데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런 달이면 피곤함이 일찍 찾아왔고 한편으로는 무력감까지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핸드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이 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도 비슷했다. 회의 중간에도 휴식 시간에도 사람들의 손에는 핸드폰이 어김없이 들려 있었다. 편리했지만 내심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오늘날 우리가 위기라고 이야기하는 환경 문제도 이러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우리는 환경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 봄이면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불편하고 힘들어도 당연하게 여겼다. 날씨가 역대급으로 덥다는 올해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사람들도 폭염이나 열대야, 그리고 동남아에서나 경험하는 스콜과 같은 빗줄기가 쏟아져도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지금까지 환경이라는 무제한 데이터를 마음껏 쓰다가 갑자기 절약해야 한다고 하니 불편해한다. 기후 위기나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자원의 무분별한 사용과 오남용에서 비롯된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어떻게 될까? 과학자들은 지구 온도가 1도 높아졌다고 세상의 위기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적으로 체감하기는 어렵다. 과연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런 의문이 들던 중에 책 한 권을 만났다. 현직교사이자 환경학자이기도 한 심정은 작가의 『환경수업도 업사이클링이 필요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아이들과 함께 학교 현장과 사는 마을을 개선하고자 했던 교사의 현실적인 노력을 촘촘히 다루고 있다. 사례가 풍부한 만큼 글이 주는 신뢰감도 상당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단순하다.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 출발은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일이다. 내가 즐겁고 행복해야 세상의 변화도 가능하다. 우리가 친환경이라고 착각했던 에코백 이야기를 읽다 보면 뜨끔하다. 친환경이라는 단어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무수히 많은 기념품은 ‘환경’이라는 그럴싸함으로 포장한 쓰레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저자의 바람처럼 10년 후 어느 날, 수업시간에 자신들이 환경을 고민하며 만든 에코백을 들고 만나는 아이들을 상상해 본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기다리는 행복은 그냥 오지 않는다. 변화에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전환은 “그냥 지나치던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그런 선생님과 함께 자란 아이들이 있는 한 우리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 교육 현장에 계신 선생님만이 아니라 학부모,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주제가 책에 가득하다. 무더운 여름, 휴가지에서 이 책을 벗 삼아 떠나는 건 어떨까? 돌아오는 길에는 세상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장창영 작가는 전주 출신으로 200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불교신문·서울신문 신춘문예에도 당선돼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동백, 몸이 열릴 때> 와 문학이론서 <디지털문화와 문학교육>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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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31 16:5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아동문학가-이현지'한성이 서울에게'

역사는 다양한 예술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소설뿐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 게임에서도 다각적으로 활용된다. 예전에는 직접 역사적 공간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역사적 인물을 현대로 데려오는 판타지와 현대와 과거를 넘나드는 이야기가 혼재하기도 한다. 아무튼 역사적 사건과 공간은 독자들에게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주요한 소재로써 작용한다. <한성이 서울에게>라는 판타지 역사 동화는 현대를 사는 인물에게 백제 때 천연두로 죽었던 귀신이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현대에 사는 ‘서울’이라는 여자아이는 백제 때 쌓아 올린 풍납토성 부근에 살고 있다. 나이 차이가 나는 대학생 오빠가 바닷가에 놀러 갔다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익사하는 사고를 당한 뒤 집안은 무기력증에 빠져있는 상태다. ‘서울’이는 오빠처럼 남을 위한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한성’이라는 백제 귀신은 자신의 독무덤이 있는 ‘서울’이네 집 마당이 자기 집이라며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서울’이네 집 주변은 아파트 재개발에 한창 열을 올리고, 주변 사람들은 다 떠났지만 ‘서울’이네 집과 이웃 할머니 집만 남아 있다. 서울이네는 삼 대째 살아오던 집이기 때문에 이사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물론 경제적 여력도 되지 않는다. 백제 귀신은 서울이네 집 앞마당에 자신의 시신이 묻혀 있는 독무덤이 세상에 나와 박물관으로 가야만이 길잡이를 만나서 이승을 떠날 수 있다고 말한다. 풍납토성 인근은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되면 공사가 멈추기 때문에 설령 공사 중에 유물이 발견되더라도 몰래 없애거나 신고조차 하지 않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밤이면 도굴꾼들은 풍납토성 인근을 샅샅이 뒤지고 다닌다. 그러다 도굴꾼 3인방은 서울이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고 어머니가 간호하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에 배관공으로 위장하고 들어온다. 서울이네 집 앞마당에 유물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결국 도굴꾼들이 찾아낸 유물은 한성이의 독무덤이었다. 백제 양식의 ‘굴 돌방무덤’이었지만 도굴꾼들은 오직 돈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결코 남을 돕지 않겠다던 서울이와 한성이가 독무덤을 지켜내며 유적이나 유물은 돈이 아니라 지켜야 할 가치라고 말한다. “이천 년이 지났다고 사랑했던 마음까지 다 흙먼지가 된 줄 아세요? 저건 돈이 아니에요. 남겨진 사람이 떠난 사람을 사랑했던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아무도 훔쳐 갈 수 없다고요.” 도굴꾼에게는 유물이 단순히 돈의 가치로만 여겨졌지만 서울이는 세상을 떠난 오빠의 유품을 치우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백제 귀신인 한성이도 자신을 묻을 때 엄마의 귀걸이 한쪽을 껴묻거리로 넣어준 것을 생각하며 유물은 남은 자들의 사랑이었다고 여긴다. 우리 사회가 많은 것을 물질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세상에 살다 보니 자칫 소중한 가치를 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유물을 단순히 돈으로 환산하는 사회적 현상이 만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두 아이는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며 세상을 향해 외친다. 물질적인 것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유물은 단순한 흙덩이나 돈이 아니라는 사실과 사랑의 흔적이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그것은 유물이 단순한 부장품이 아니라 누군가 사용했던 물건일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남겨진 유물은 누군가의 사랑하는 마음을 기억할 때 가치가 살아나기 때문일 것이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역사이기도 하다. 역사는 기억이다. 시간을 견디는 기억이 역사인 것이다. 이경옥 아동문학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었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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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24 16:2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극작가-표성흠 '교룡'

담락당 하립(1769∼1830)과 김삼의당(1769∼1823)은 조선 시대 대표적인 문학인 부부다. 두 사람은 남원시 향교동 유천마을에서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났다. 18세(1786년)에 혼례를 치렀으며, 33세(1801년)에 선영을 지키기 위해 진안군 마령면 방화마을로 옮겨 살았다. 두 사람의 고향인 유천마을에 첫날밤 부부가 나눈 시를 새긴 시비와 벽화가, 교룡산국민관광지에 삼의당의 시 「화만지」를 새긴 시비가 있다. 진안군 마이산 들머리에는 부부의 영정을 모신 명려각과 시비가, 백운면 원덕마을에 부부의 무덤이 나란히 있다. 부부는 쇠락한 양반 가문의 후손이라는 내력과 글재주도 비슷했다. 담락당은 평생 책을 벗 삼았지만, 벼슬에 나서지는 못했다. 문집 『담락당집』을 남겼고, 2000년 진안문화원에서 시 209수를 엮어 『담락당 시집』을 냈다. 이름 없이 남편이 지어준 당호로만 알려진 김삼의당은 조선의 여성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 입신양명을 위해 먼 곳에서 공부하는 남편을 향한 애정과 기대, 육아와 시집살이, 가난한 살림을 꾸리는 여인의 일상 속 크고 작은 일과 자연의 멋을 소재로 쓴 시 111편 253수와 산문 26편이다. 『김삼의당 시문집』(제일사·1982)이 있으며, 『삼의당 김부인 유고』(신아출판사·2004)로 번역·출간됐다. 두 사람의 지난한 시절은 표성흠의 장편소설 『교룡』(산지니·2022)에서 더욱 애절하게 그려진다. 작가는 ‘삼의당·담락당의 운명적 만남’을 부제로, 두 사람을 남녀평등을 실천하고 순수학문을 탐구하며 이상적인 삶을 추구한 인물로 묘사한다. “발은 땅에 딛고서도 머리는 하늘 높이 두고 사는 ‘꿈꾸는 사람들’, 그것도 혼자가 아닌 부부가 똑같이 꿈을 먹고 살던” 천상배필이다. 작가의 상상은 시대와 지역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스며 있다. 소설 속 담락당은 조선 후기 과거제도의 폐단에 회의를 느끼고, 김시습·박지원을 본보기 삼아 실학을 강조하고 문체의 혁신에 동참한다. ‘삼례’라는 이름을 얻은 삼의당은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노동의 숭고함과 남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시에 옮기며 삶을 감내하고, 낭만을 놓지 않는다. 이야기에 맞춰 소개하는 담락당과 삼의당의 작품들도 작가의 치열한 탐색의 결과다. 담락당과 삼의당의 삶과 작품에 관한 존중은 지금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으로 이어진다. “서로 색깔이 다른 두 객체가 만나 하나가 되자면 각자가 가진 포부를 굽힐 줄 알아야 한다. 길을 하나로 바로잡아야 옳게 갈 수 있다. 강물이 산언덕을 의지 삼아 그 안으로만 흐르듯 서로의 굽어짐 속으로 흘러가야 한다.”라는 부부의 길이다. 굽어든다고 체면 깎이는 일이 아니다. 전북의 유서 깊은 장소와 여러 설화를 풍성하게 소개한 것도 작가가 선사한 미덕 중 하나다. 남원시의 광한루·교룡산성·덕밀암·만복사저포기·요천·유천마을·인월, 무주군의 최북, 임실군의 ‘오수의 개’, 장수군의 타루비, 진안군의 마이산·마이탑·만취정 등 『교룡』 속 전북 곳곳을 둘러보면 담락당과 삼의당이 일깨운 부부의 도가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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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17 17:2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지호 소설가-한그루'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 시집'

약 270년 전, 무주군 부남면 대소마을에 돌림병이 발병했다. 나룻배를 건져 올려 수로를 막고, 대문바위를 닫아걸어 육로를 폐쇄한 뒤 치료에 전념했으나 소용없었다. 다들, 이제, 사람의 힘으로는 역병을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웃 마을에서 디딜방아를 몰래 가져와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예로부터 디딜방아는 형상과 기능, 의미와 상징이 주술적으로 해석되어 액을 방어하는 주력(呪力)의 신물로 여겨져 왔다. 정월 보름밤 디딜방아를 제물 삼아 일명 ‘방앗거리제’를 지냈다. 제주는 남자가 아닌 여자, 당골네였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고사요’를 부른다. 산 자와 죽은 자, 살리려 했던 자와 살아나지 못한 자의 슬픔을 위로하는 노래. 그 한(恨)을 달래주는 노래를 시(詩)로 여길 수는 없을까. 제주 4·3을 다룬 흑백영화 「지슬」. 지슬은 지실(地實)에서 온 말로 감자를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다. ‘實’은 ‘열매’라는 뜻도 있지만 ‘사실’이라는 뜻도 있다. 1948년 11월 말부터 이듬해 1월까지 감자 줄기 같은 동굴에 숨어 지슬로 연명하다 끝내 희생당한 안덕면 무등이왓 주민들의 ‘사실’을 담고 있다. 영화는 ‘신위·신묘·음복·소지’ 네 꼭지로 전개된다. 희생당한 영혼을 위로하는 제의이자 굿판임을 알게 하는 표지다. 카메라가 굿판을 열기 전 내담자의 아픈 사연을 느끼는 무당처럼 사람과 사건, 4·3의 제주를 관찰한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고사요 같은 노래 ‘이어도사나’를 죽은 자들이 부른다. “아방에 아방에 아방덜, 어멍에 어멍에 어멍덜, 이어도 가젠 살고나 지고, 제주 사름덜 살앙 죽엉, 가고저 허는게 이어도우다” 이 노래와 영화를 4·3을 위로하는 시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백석 시인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위 옆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갈매나무’가 하얀 무명옷을 입은 무녀처럼 느껴진다. 신령한 산, 정령과 다름없는 바위 옆에서, 추위와 외로움을 인내하며 ‘쌀랑쌀랑’ 방울을 흔드는, 그리하여 고통과 슬픔에 사무친 산 아래 사람들을 위로하는 가녀린 무녀. 이 시를 그 무녀가 백석의 목소리를 빌려 부른, 무가(巫歌)로 받아들이면 안 될까. 문정희 시인의 시 「곡비」의 마지막 두 연은 다음과 같다 “그네의 울음은 언제나 그칠 것인가/ 엉겅퀴 같은 옥례야, 우리 시인의 딸아/ 너도 어서 전문적으로 우는 법 깨쳐야 하리// 이 세상 사람들의 울음/ 까무러치게 대신 우는 법/ 알아야 하리” 「4·3 시집」에 담긴 77편의 시를 디딜방아로, 지슬로, 영험한 방울 소리로, 까무러치는 울음으로, 사십구재 씻김 소리로 생각하면 안 될까. 시인들을 늙은 당골네로, 엉겅퀴로 같은 곡비로, 하이얀 무녀로, 무등이왓 바라보는 서러운 박수무당으로 여길 수는 없을까. 황지호 소설가는 202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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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10 17:16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정경 시인-임주아'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

물결을 닮은 사람이 있다. 한자리에 멈춰 있지 않으며 다른 존재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투영해 낸다. 끊임없이 존재의 기슭을 어루만지는 사람. 임주아 시인이 그런 사람이다. 그가 운영하는 서점 ‘물결서사’의 이름처럼. 그이는 수년 동안 전주 선미촌에서 ‘물결서사’를 지키며 책을 팔고,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그 오지 아닌 오지(?)로 초청해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문학 행사들을 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심 ‘쓰는 자’의 정체성을 고심했으리라. 마침내 그이가 보낸 물결이 한 권의 시집으로 우리에게 도착했다. 임주아 시인의 첫 시집 『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걷는 사람)은 로맨틱하다. 사랑의 상승과 하강, 타인과 시적 주체와의 간극, 그로 인해 생겨나는 불안과 갈등, 헤어짐과 남겨짐의 정서가 “살아난 사람”과 “죽은 사람” 같은 힘이 센 시어들로 직조된다. 시인이 물결 위에 적어 보낸 시를 읽으면 여흔이 “물결무늬”처럼 남는다. 산문시 「백행」에서 시인은 “물속은 꿈결 꿈속은 물결 사랑하는 것과 망가진 것 무너진 것과 돌아선 것 튤립처럼 팔 모으고 똑똑 물방울을 받”아내듯 “등 푸른 잎사귀에 대고 속삭이면서 비밀 많은 부족처럼 씨앗을 귀하게 여기기 잠깐 바람결에 사랑을 두기”를 스스로에게 주문한다. “매일 한 폭씩 넓혀가는 마음으로”(같은 시), “산책할까”(「무성인」) 하고 우리에게 묻는다. 사랑의 대상을 굳이 연인으로 한정 짓지 않는 것이 시의 풍미를 더 살리는 길이 되겠다. 다른 존재와의 조우, 그들을 혹은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의 숱한 감정적 일렁임이 임주아 시의 서사를 만들고 서정을 일깨운다. 그렇기에 그이는 “세상이 너무 커다란 구멍 속으로 사라져”도(「홀」), “나는 살아남아 사랑을 돌보았다”(「폐업」)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이 느낀 단 한 번의 즐거움을 쪼개고 쪼개 나빠지려하는 마음에 이어 붙이면 조금 아물 수도 있을까. 오늘이 좋대도 내일은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알 수 없지만. 다짐도 싫고 각오도 싫고 계획도 싫지만. 다만 덜 절망적이고 덜 미워하며 살고 싶다. (중략) 나는 매일 달라서 오랜만에 크게 웃고 떠들며 갑갑한 껍질을 벗고 한 달에 한 번 신중하게 울며 살아난 사람이 될 수도 있다.”(산문시 「울며 살아난」)라고 했으므로 나는 그에게 “이상한 믿음”이 생긴다. 임주아 시인에게서 시작된 시의 물결이 덜 절망적이고 덜 미워하며 사는 세상으로 인도해 줄 것이라고. 무릇 시인이란 존재는 자신만의 언어로 슬픈 세상을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글 쓰고 책 파는 임주아 시인이 총괄기획자로 활동하는 ‘전주책쾌’가 7월 6일부터 이틀간 전주 남부시장 ‘문화공판장 작당’에서 열린다. 독립출판물을 소개하는 이 북페어를 위해 지금쯤 그는 머리를 질끈 묶고 눈을 빛내며 종횡무진하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외롭게, 용감하게 자기 영토를 만들어온 독립출판인들과 작가들이 미지의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 부디 글을 쓰는 사람도, 책을 만드는 사람도, 책을 파는 사람도, 그 책을 읽는 사람도 글 너머의 다른 존재들의 사랑을 느끼게 되기를. 그 행위가 물결처럼 멈추지 않기를. 그리고 그 힘으로 임주아 시인이 다음 시를 써내게 되기를.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김정경 시인은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검은 줄’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골목의 날씨>가 있다. 자칭 ‘산책중독자’. 오래된 골목을 유람하며 채집한 이야기로 시도 쓰고, 산문도 쓰며 살고 있다. 현재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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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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