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게도 필자는 지난해 12월부터 문화와 예술의 고장인 전주에 자리잡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기쁘면서도 관장으로 발령받아 과연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부담을 한가득 안고 전주로 내려오던 기억이 선명하다. 연고도 없고 근무했던 경험도 없었던 곳이라 모든 것이 낯설었고 정신없이 연말연시를 보냈다. 빨리 박물관과 지역의 현황과 정서 등을 파악하고 싶은 욕심이 컸지만,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는 않았고 3개월 정도가 지나서야 겨우 상황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고 당장 닥친 급한 사업이 올해 상반기 특별전시였다. 특히 이번 특별전시는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기념해 개최하는 만큼 지역과도 밀접하게 연계된 것이었다. 전시 담당자로부터 기획 의도와 대략의 내용을 들었지만, 머릿속에서 잘 정리가 되질 않았다. 특별전의 주제는 ‘금산사’였다.
담당자들은 새롭게 출범하는 전북특별자치도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역사 속에서 찾아 제시하고, 또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등 여러 가지 겹쳐진 악재로 깊이 상처받은 지역민을 위로할 수 있는 주제를 고민한 결과, 여기에 부합하는 주제가 ‘금산사’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전시를 준비하기 위한 학술대회에 참석하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주제를 참 잘 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전북특별자치도가 이어가야 할 금산사가 지닌 가치가 무엇일까? 박물관에서는 이를 ‘생명에 대한 존엄과 평등사상, 새로운 것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혁신성, 현실에 바탕한 강력한 실천력’ 세 가지로 이해했다. 이러한 특징은 역사적으로 점찰법, 방등계단, 임진왜란 때의 의승군 활동, 현재 미륵전에 모셔진 미륵불입상의 조성 과정 등에서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부처님의 진리가 세간에 있다(佛法在世間)’는 가르침을 바탕으로 산중에서의 수행에만 집착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와 시민들과 함께하며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에서도 잘 찾아볼 수 있다. 금산사가 추구해온 이러한 핵심 가치들이 결국 지역민이 힘들 때마다 의지하며 마음을 위로받는, 또 위기를 극복하는 바탕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의욕적으로 출범한 전북특별자치도가 마주한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해결해야 할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풀어내지 못할 일도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는 유연한 자세로 모두가 함께하며 시련을 훌륭하게 극복했던 경험과 저력이 흐르고 있다. 금산사가 추구해온 가치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우리 지역이 가진 장점을 살려 전북특별자치도가 당면한 어려움을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기를 응원하고 또 기대한다.
우리시대의 큰 스승이셨던 태공당 월주스님께서는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누가 해주는 것을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먼저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북특별자치도의 도정 슬로건이 ‘함께 혁신, 함께 성공, 새로운 전북’이다. 도민들도 전북특별자치도의 노력을 지지하고 성원하며 함께 해야 새로운 전북을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 빠르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도민들의 저력을 믿기에 전북특별자치도와 함께 그려갈 새로운 전북이 기대되고, 또 거기에 우리 국립전주박물관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과 설렘이 함께 한다.
/박경도 국립전주박물관 관장
△박경도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국립중앙박물관 미래전략담당관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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