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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 ‘단풍’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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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니리/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이맘때 산책로나 숲길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첫 구절이 떠오르는 시(詩), 1930년대 김영랑 시인의 ‘오매 단풍 들것네’다. 시는 언뜻 붉게 물든 단풍을 기다리는 낭만적인 감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시절 단풍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다가올 추위에 대한 자연의 예고였다. 감잎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찬바람이 잦아지면 겨울나기 걱정에 탄식이 나왔을 게다. 붉게 물들어가는 감나무 잎사귀를 보며 무의식중에 쏟아낸 탄식이 ‘오매, 단풍 들것네’인 것이다. 단풍은 나무가 메마른 겨울을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옛 사람들은 나무처럼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또 걱정했던 모양이다. 시인은 당시 고단했던 서민 삶의 애환을 민중의 언어로 노래했다. 지금 우리가 첫 구절에서 느끼는 감성과는 차이가 많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단풍철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11월, 진작 ‘울긋불긋’ 물들었어야 할 가을 산이 여지껏 푸르다. 기후변화 시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가을이 지각하더니 단풍도 많이 늦어진다. 계속되는 이상기온이 단풍시계를 자꾸만 뒤로 돌려놓고 있다. 산림청이 지난 9월 말 발표한 올 단풍시기 예측도 한참이나 빗나갔다. 게다가 몇 해 전부터는 색깔도 곱지 않다. ‘예년만 못하다’는 평이 해마다 반복된다. 절정을 한참 지나 끝물이어야 할 내장산 단풍도 아직 절반 이상이 녹색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지난 주말 이 산을 찾은 수많은 단풍객들에게 실망과 아쉬움을 남겼다. 단풍객들이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자꾸만 짧아지고 있다.

계절이 수상하다. 그래서 걱정이다. 단풍철, 옛 사람들의 겨울나기 걱정은 진작 사라졌지만, 봄부터 내내 이어지는 이상기후로 인해 더 큰 걱정이 생겼다. 모경종 국회의원이 최근 환경단체와 함께 분석해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13∼2023년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으로 국내에서 발생한 경제적 피해는 15조9177억원, 인명피해는 341명에 달했다.

울긋불긋 가을의 정취에 빠져들고 싶다면 지금 나서야 한다. 앞으로 형형색색 그 아름다운 오색 빛깔을 제대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가을철 이상고온이 지속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 단풍잎이 제 색을 찾지도 못한 채 바로 낙엽이 돼 땅바닥에 뒹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상기후가 지속되면 단풍 시기가 계속해서 늦어지고, 또 짧아지면서 한국의 오색 단풍 풍경이 추억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잠시 한눈을 팔면 이 ‘틈새 계절’의 짧은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다. ‘올 가을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지금 당장 가을 산길을 걸어보면 어떨까.

/ 김종표 논설위원

 

 

 

김종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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