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주 대승한지마을 주민들이 한지를 만들 닥나무를 손질하고 있다. | ||
'한지'에 관해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상식 하나. '한지'는 전주만의 특산품일까? 정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는 한지의 본고장으로 전주를 알고 있지만 사실 한지의 고장 전주는 지금의 전주가 아니다. 과거 전주와 완주가 하나였던 시절의 '전주'였다.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전주·완주지역은 마한백제시대까지는 완산주로 불렸다가 신라경덕왕 16년에 전주로 개칭됐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 한지'의 이름은 전주와 완주가 공유할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북도 블로그단이 운영하는 블로그 '전북의 재발견(blog.jb.go.kr)이 소개하는 곳은 한지의 또 다른 본산지 완주 대승한지마을이다.
△ 전주, 1000년 전 종이로 세계를 사로잡다
종이는 중국에서 먼저 발생해 발전했지만 일찍이 우리 조상들은 중국의 종이제작 기법에 매달리지 않고 우리 땅에서 나는 산물로서 독창적인 종이를 개발했다. 닥나무를 주 원료로 사용했기에 닥종이로도 불린 한지(韓紙)가 바로 그것이다. 한지는 제작기법도 중국의 걸러 뜨는 방식과 달리 외발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뜨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더 희고 광택이 나며 질기다. 이렇게 생산된 한지는 주변 국가에서도 그 품질을 인정받았기에 오래전부터 한국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으로 따진다면 반도체에 버금가는 '명품 수출품'으로 인기를 누렸던 것이다.
한지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전주다. 지금도 '종이' 하면 전주한지를 떠올릴 정도니까. 한지는 닥나무 생산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고려시대부터는 국가에서 닥나무 밭을 가꾸도록 제도화할 정도였다. 한데 전주 지방은 오래전부터 닥나무가 많이 생산됐다. 여기에 깨끗한 수질, 제조기술면에서 오랜 역사와 숙련된 기술도 겸비하고 있어 1000년 가까이 전주가 한지 제조의 메카라 자리잡은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한지 수요가 많이 줄었기에 전주의 한지산업 역시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지금도 한지의 명맥을 잇고 있는 곳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전통적인 전주 한지의 생산 과정을 볼 수 있는 곳이 완주군 대승한지마을이다.
▲ 완주 대승한지마을에서 생산된 한지로 만든 다양한 공예품들. |
△ 전주 한지 명맥을 잇는 완주 대승한지마을
전주를 순수한 한글이름으로 일컫자면 온고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온전하고 완전한 고을'이라는 의미다. 문자적 해석에서 보자면 전주(全州)나 전주를 둘러싼 완주(完州)는 일맥상통한다. 지명에서 느껴지는 동질감처럼 전주와 완주는 1935년 이전까지만 해도 다른 고을이 아니라 하나의 지역으로 엮어져 있었다. 지금도 이 두 지역의 생활권은 하나로 엮여있다. 그러니 전통적인 전주 한지의 매력을 가장 만끽할 수 있는 장소를 언급함에 있어서 전주가 아닌 완주군의 '대승한지마을'을 손꼽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완주는 그야말로 한지마을이었다. 1980년대만 해도 1000년 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온 고려지(紙)의 원산지로서 완주군 소양면 일대만 해도 15곳의 한지업체가 상주했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한지 전성기를 이어온 대승한지마을에는 지금도 한지공장이 있었던 유적만 해도 9곳, 장인 수준의 한지생산기술 보유자(전문 초지공) 10여 명이 거주하며 전주 한지의 맥을 잇고 있다.
대승한지마을, 화려하진 않아도 '온고을'의 의미를 지닌 완산이란 이름에 부족함이 없는 지세와 1000년을 이어온 한지의 명맥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에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곳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한지 위에 붓글씨를 쓰던 세대는 아니더라도 흰 백지 위에 심혈을 기울여 한 획을 긋던 할아버지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마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본질적인 이유는 펄프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종이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섬세함과 아름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종이 생산의 역사가 깊었던 만큼 우리 조상들은 한지를 쓰고 기록하는 용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예품에도 이용했다. 지화공예, 오색전지공예, 지호공예, 지승공예, 지화공예, 지장공예 등이 바로 우리 한지를 이용한 대표적인 공예기법이다.
상대적으로 한지보다 질이 낮게 여겨졌던 일본의 화지는 적극적인 홍보에 의해 현재 세계에서 가장 고급 종이로 대접받고 있다. 지속적으로 홍보만 된다면 1000년 전부터 그 품질을 인정받아 왔고 다양한 공예로 발전해 온 우리 한지 역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 시작은 우리 한지에 대한 이해부터다. 그래서 대승한지마을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 신영철 전북도 블로그 기자단 |
※ 신영철씨는 현재 여행작가로 활동 중인 네이버 파워블로거. 3년 연속 네이버 파워블로그로 선정됐으며 각종 신문·잡지·웹진 등에도 활발하게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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