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북도립미술관(관장 이흥재)은 흡사 잔칫상을 엎을 뻔 했다. '2012 전북 방문의 해'에 맞춰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밀레에서 피카소까지'란 이름으로 기획된 세계미술거장전이 대여비가 초과돼 무산된 것. 유럽에서 남미로 눈을 돌려 가까스로 성사된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는 정권 교체기와 맞물려 불안정한 베네수엘라 정부와 도립미술관의 팽팽한 힘겨루기 끝에 타진됐다.
국·공립미술관이 여는 대형해외전이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 필요하긴 하나 미술관의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상업적 규모화를 어느 선까지 바라봐야 하느냐의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난해 10월 19일 개막해 올해 2월24일까지 연장 전에 들어간 세계미술거장전은 지역 미술계에 크고 작은 화제를 남기면서 전국의 수많은 관람객들을 집결시키는데 성공했다. '문화, 경제로 읽다'에서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의 경제적 효과를 살펴본다.
지나친 기우(杞憂)였을까. 걱정과 달리 지난해 10월 개막한 전북도립미술관의 세계미술거장전'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는 전국에서 '구름 관중'들이 몰려왔다. 교과서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피카소·샤갈·마네·로트레크·앤디 워홀 등 거장들의 작품 130여 점을 통해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어서다. 전북도립미술관이 지난 19일 밝힌 세계미술거장전 관람객은 15만5000여 명. 24일까지 전시가 이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16만여 명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2년 전 대전일보·대전MBC·조선일보·대전시립미술관이 주최해 5월25일부터 8월28일까지 연 '모네에서 워홀까지'에 13만 명이 찾았던 것과 비교해봐도 세계미술거장전은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대전에 비해 완주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비수기에 해당되는 기간에 전시를 연 것이라 도립미술관은 관람객이 적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도립미술관이 당초 예상했던 관람객 규모는 5만여 명, 관람료 수익은 2억 정도에 그쳤다.
그렇다면 세계미술거장전의 경제효과는 얼마나 될까. 도립미술관에 따르면 추경 예산까지 편성 돼 총 9억4400만원이 투입됐다고 밝혔다. 세 차례에 걸쳐 항공편으로 안전하게 운송하기 위해 동승한 '꾸리어'(courie r 운반원) 비용까지 포함한 운송료 2억6000만원, 전시장 시설 보완과 공간 연출비 1억6000만원, 작품 보험료와 홍보비가 각각 1억4000만원 등이 차지했으며, 거의 무료로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임차료는 1400만원 밖에 들지 않았다. 1000억대로 추정되는 작품 총액 중 1/100도 안되는 가격으로 해결한 것.
결국 도립미술관은 관람객 15만5000여 명의 방문으로 입장료 수익만 8억5000만원(오디오 가이드 대여비 5000만원)을 챙겼고, 제주도립미술관의 순회전까지 이어지면서 작품들을 베네수엘라로 보내는 운송비 중 5500만 원을 절감되는 효과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모네부터 미국 팝아트 거장인 앤디 워홀까지 아우른 대전의'모네에서 워홀까지'展은 얼마나 들었을까. 프랑스 생테티엔 미술관의 소장작 가운데 엄선한 명작들을 내놓은 전시를 두고 대전시립미술관은 총 10억이 들었다고 밝혔다. 여기서 대전시립미술관 3억5000만원, 조선일보 3억, 대전 MBC 2억5000만원, 대전일보 1억을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선일보 문화사업국이 주관한 예산 세부 내역은 '쉬쉬'했다.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영업 비밀이라 어느 곳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9월10일부터 12월10일까지로 이어진 '모네에서 워홀까지 부산전(展)'을 연 부산시립미술관·조선일보사·KNN 등도 전시 예산 세부 내역에 관해선 입을 닫았다.
이 같은 대형 해외거장전을 기획할 수 있는 곳은 국내에서 10곳 안팎에 불과하다. 가급적 이윤을 더 많이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획사들은 대개 예산 총액만 밝힐 뿐 세부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도립미술관이 초반 예산 집행 내역을 밝히는 것을 꺼렸던 이유도 세계미술거장전을 기획한 반디트라소문화교류연구소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다.
도립미술관의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많은 관람객들을 동원해 양적 성장을 이룬 세계미술거장전을 두고 질적 성장까지 이어지진 못했다는 엇갈린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라는 타이틀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샤갈의 유화는 한 점도 없었고, 피카소의 유화는 단 한 점에 불과해 전시 제목에 "낚였다"는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차라리 '세계미술거장의 판화전'으로 했다면 비난 받을 소지가 줄어들 수 있었고, 400억 대로 추산되는 피카소의 '앉아있는 남자와 누드'를 만나는 의외의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었다는 것. 때문에 이런 대형전이 미술의 대중화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대개 기획사의 배만 불려주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국공립미술관의 자체 기획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지난해 취임한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이 "더 이상 해외미술 대여전을 갖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유도 일맥상통한다.
'모네에서 워홀까지'展을 열었던 부산시립미술관 임창섭 학예연구실장은 "우리의 경우 전시와 관련된 모든 기획은 조선일보가 주도했고, 실상 부산시립미술관은 대관만 했다. 그러나 전북도립미술관은 상황이 달랐다. 기획사 도움을 빌리긴 했어도 전시 기획을 총괄했던 것으로 안다. 그런 점에서 미술관의 고충과 노고는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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