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915m, 동서길이 50㎞, 남북길이 32㎞, 둘레 320㎞, 총면적 483㎢에 4994종의 동식물군, 3개도 5개 시·군을 품고 있는 지리산.
지리산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될 정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수천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천혜자원의 보고다. 오랜 세월 보통 사람들의 생활문화 터전이자 많은 역사 유적과 종교 그리고 빼어난 생활경관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백두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으로 불리며 신성한 '어머니산'으로 통했다.
특히 한국의 산 중 지리산만큼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산', '인문의 산', '역사의 산'으로서 의미와 정체성을 갖는 산은 없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산중에서도 자연과 생태, 역사, 문화, 취락, 종교, 사람의 삶이 결합된 산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본보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지리산이 가진 생태·역사·인문적 자산들을 재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리산의 세계복합유산 등재 가능성과 등재를 위해 어떤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지 2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지리산에 얽힌 역사 문화 생태에 대한 이야기는 관련 논문만 수백 개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하다.
또 총면적 483㎢이 말해주듯 웅장한 지리산의 모든 것을 단시간에 알기는 어렵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우선 둘레길 800리에 펼쳐진 역사 문화 생태의 현장을 다니며 지리산에 첫 인사를 보냈다.
기자가 지난 30일부터 이틀간 둘레길에서 만난 지리산은 여러 가지 모습이 혼재돼 있었다. 오염돼가고 있는 자연과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연. 수많은 전설과 전쟁의 비극. 그리고 개발을 둘러싼 미묘한 갈등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남원시 주천면에서 출발하는 주천 1코스에 있는 구룡계곡. 판소리 동편제의 거장 권삼득 명창이 목소리를 가다듬은 용소에 이르자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완주 출생인 그는 집안에서 쫓겨나 콩 서 말을 짊어지고 처가가 있는 이곳으로 들어와 한바탕 소리공부를 했다고 한다.
좀 더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노치마을에 이르렀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자리에 유일하게 촌락을 이루고 있는 노치마을에서는 현재까지도 당산재를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70~80대 고령인 탓에 언제까지 당산재를 이어갈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이영희씨(77)는 "당산재를 할 때 마을이 아주 떠들썩했지. 내륙이라 생선이 귀했는데 당산재를 모시고 생선을 먹으라는 데 그것을 참기가 어렵더라고. 헌데 지금은 다들 나이가 먹어서 당산재를 크게 치르는 게 힘이 든다"고 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왜구를 섬멸한 것을 기리기 위해 만든 황산대첩비. 1577년 전라도 관찰사였던 박계현의 건의로 남원시 운봉면에 세워진 비석은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자신들의 뼈아픈 역사를 지우기 위해 황산대첩비를 파괴했다. 현재 기념비는 지난 1977년 새로 복원된 것으로 깨어진 비석 조각들은 기념비 옆 파비각(破碑閣)에 보관되고 있다.
국보 제10호로 지정된 백장암 삼층석탑,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37호) 등 10점이 넘는 보물급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실상사. 단일 사찰로는 최대 규모의 문화재이다. 약사전에 봉안된 신라 말기의 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은 길이가 3미터에 이르러 한국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철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보물들이 자칫 훼손될 위기에 처해있다. 함양군 마천면 일대에 댐 건설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06년 남원시 장수군 구례군 곡성군 순천시 하동군 함양군 산청군 등 8개 문화원이 중심이 돼 지리산의 자연경관과 문화재의 보호를 통해 세계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자치단체 간 이해가 엇갈리면서 댐건설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실상사 도법 스님은 "전라북도가 새만금 개발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무엇이 발전하고 달라졌는가"라며 자연과 생명을 무시하는 개발에 대해 쓴소리를 날렸다. 김정엽기자 colorgog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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