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주민·언론·연구진, 유기적 협력…단계적 추진을"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지리산 세계복합유산 기획취재’ 과정에서 수많은 논의들이 오갔다.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는 어렵다는 의견부터, 지리산의 장점을 살리는 연구를 진행해 차근차근 준비해야한다는 주장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이는 지리산의 세계복합유산 등재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나온 이야기들이었다. 누구도 지리산이 세계복합유산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다만 등재 전략·논리를 더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지난달 15일 열린 ‘지리산 세계복합유산으로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의 주장도 대동소이했다.
△사 회 = 김재호 선임기자
△토론자 = 이병채 남원문화원장, 우두성 구례문화원장, 서정호 순천대 교수, 최원석 경상대 교수, 유인학 전 국회의원, 김인태 전북도 문화예술과장
△세계복합유산로서 가치와 등재 과정
사회= 그동안 기획 취재를 진행하면서 가능하면 다양한 자연경관부터 동식물, 문화·역사·종교 등 많은 부분을 다루고 싶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 참석하신 분들도 그간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생각만큼 많이 지면에 반영되지 않은 점을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먼저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과 지리산이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에 대해 의견을 말해달라.
서정호= 우리나라 세계유산 가운데 자연유산은 한 개에 불과하다. 자연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데는 최소 5년이 걸리는데 제주도가 지난 2001년에 신청해 2007년에 됐다. 제주도는 먼저 시·군에서 도에 의견을 올렸고 도는 이를 모아 문화재청에 세계유산으로 등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문화재청은 심사를 거친 뒤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올려 최종 등재됐다. 하지만 지리산은 여러 가지 요인에서 뒤쳐져있다. 언제 세계복합유산으로 추진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복합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서는 사전 조치들을 미리 해놔야 한다.
유인학= 지리산을 세계복합유산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지리산이 솔직히 말해서 중국의 황산처럼 웅장한 경관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연을 보는 시각에서 보자면 지리산의 위치가 가장 기후변화가 심한 아열대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다양한 동·식물, 수산 자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우리가 제대로 보전하고 알린다면 충분한 가치가 인정될 것이다.
또 문화적 가치는 아주 독특하고 무속 신앙, 유교, 불교 등 종교 유산은 너무 많아 손에 꼽기도 어렵다. 이와 함께 지리산은 고려 말부터 동북아의 큰 정치나 변화기에 어김없이 국제적 전쟁터였다. 고려 말 왜구의 침략부터 임진왜란, 동학농민운동, 한국전쟁까지 수많은 전쟁을 거치면서도 보존된 자연과 문화 유산 자체가 세계유산으로 충분히 가치를 지닌다.
△등재 추진 전략은?
사회= 지리산의 세계복합유산 등재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게 공통된 의견 같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추진 전략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로 귀결된다.
유인학= 몇몇 학자들이 지리산을 종교유산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하려고 하는데 이는 실패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우선 이들의 연구 결과는 지리산의 가치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다. 또 우리나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사례지만 특정 종교로 세계유산을 신청한다면 반대할 단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추진도 해보기 전에 지리산의 가치는 사장될 것이다.
최원석= 종교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할 당시 지리산권문화연구단은 지리산이 가진 세계유산의 가치 가운데 어떤 유산으로서 가치가 가장 뛰어난지 전반적인 검토를 했다. 그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지리산의 다양한 유산이 굉장히 복합적으로 용광로처럼 융합돼 있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어느 하나 탁월한 가치를 끄집어내기 힘들었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연구단에서는 어떤 전략을 수립할 것인가 고민하다 문화경관으로 문화재청에 등재를 신청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우리가 지리산이 복합유산으로서 과연 가치가 있는지 현실적인 판단을 해야 했고, 복합유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생물권보존구역→문화경관→역사경관 등 한 걸음씩 차분히 준비해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다른 세계유산들도 대부분 이 과정을 거쳐 등재된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서정호= ‘지리산이 절대 복합유산 대상이 아니다’라고 결정한 것이 아니다. 명칭문제는 지리산을 세계복합유산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단계적 전략을 짜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언제든지 ‘세계복합유산 추진’으로 바꿀 수 있다. 다만 세계복합유산으로 가기 전까지는 여러 단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고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명칭 문제는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 지리산이 생물권보존구역, 문화경관 등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다. 이 부분부터 하나씩 추진해 나가면 세계복합유산 등재로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자치단체 및 중앙정부 협력 강화해야
사회= 중국 무이산에 다녀온 결과 지리산이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자치단체 및 중앙정부 간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 무이산의 경우 등재 추진 과정에서 지방정부 간 동의를 이끌어 내는 일이 무엇보다 어려웠다. 지리산에도 케이블카, 댐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어 앞으로 추진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우두성= 지리산이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케이블카와 댐 문제다. 두 개의 사안을 바라보는 지역 주민들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 또 해당 자치단체장의 첨예한 시각차도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의 의견을 모으는 게 중요한 과제다. 구례의 예를 들면 지난 2004년 수달보호구역을 지정할 때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그간 각종 반대에 부딪혔지만 지역 시민과 환경단체가 간담·토론회를 통해 의견 조정을 이룬 결과다. 이로 인해 구례는 청정이미지를 얻었다. 또 반달곰 사업을 할 때도 재산권 침해 등의 문제가 제기됐지만 현재는 반달가슴곰 때문에 60명의 일자리가 생겼다. 이와 함께 여러 언론에서 반달곰에 대해 보도해 엄청난 지역 홍보가 이뤄졌다.
이병채= 남원에 있는 국립공원연구원이 내년에 원주로 이전을 한다. 연구원에는 지리산권 뿐만 아니라 전국 국립공원의 동식물 자료 등이 방대하게 있다. 지리산이 세계복합유산으로 가려면 국립공원연구원이 현 위치에 있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동식물을 보존하려는 의지도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또 국립공원연구원이 지리산권에 자생하는 동식물 연구를 통해 자료를 만들기 위해 남원, 구례, 산청 등 관련 자치단체에서 2000만원씩 편성했다. 하지만 이 예산도 다른 곳에 쓰려고 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자치단체간은 물론이고 지리산권에 있는 여러 단체의 의견이 잘 모아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유인학= 자치단체의 소극적인 자세도 문제다. 지리산의 가치를 잘 모르고 다른 것들을 세계유산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사안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것은 자치단체의 몫이지만 지리산의 가치는 현재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김인태= 전북이 절대 소극적인 것이 아니다. 서원과 백제문화 등으로 세계유산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전국 3~5개 자치단체가 협력해 이뤄낸 결과다. 케이블카와 댐 문제 등이 지리산 세계복합유산 추진에 걸림돌이었고, 이에 대한 자치단체들 간의 협의가 전무한 상태였다. 케이블카의 경우 오히려 서로 유치하려고 하는 상황이 아닌가? 또 지정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의 동의 절차 등 많은 부분이 미비했다. 이런 절차들을 거치고 주민들의 동의를 이뤄내는 과정이 같이 가야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과제는
사회= 지리산의 가치는 충분한데 여러 가지 문제들이 세계복합유산으로 가는데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앞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원석= 지리산이 되기 위해서는 네 개의 바퀴가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 주민, 언론 사회단체, 연구진 학자들이다. 지리산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연구, 지방자치단체의 협력, 주민 동의, 언론의 관심 등 어느 하나 따로 굴러가서는 절대 세계복합유산이 될 수 없다.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이 네 바퀴가 잘 굴러가게 해야 하고 이 과정 자체가 세계유산감이다.
이병채= 현재 댐 저지운동은 실상사 도법스님을 중심으로 한 사회단체 생명연대가 주도하고 있다. 우리도 관심을 가지고 이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지리산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보존하려는 노력을 유네스코에서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인태= 이번에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라간 만큼 전북도도 다음에 어떤 것을 세계유산으로 추진하는데 관심이 많다. 자치단체 간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 주도로 등재를 추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반드시 진통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 교수님의 말씀처럼 네 바퀴가 동시에 잘 굴러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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