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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세계복합유산으로 - 20. 중국 무이산 (2) 유람

무이정사 곳곳 주자학 대가 주희 흔적 남아 / 2100년 역사 민월왕성 고대 중국문화 간직

▲ 무이구곡 가운데 5곡에 있는 무이정사(武夷精舍). 남송 때 주자학의 대가 주희가 세운 서원으로 무이산의 10대 명소 중에 하나다. 중국=추성수기자 chss78@

웅장했다. 대나무 뗏목 ‘주파이’를 타고 바라본 무이산의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두 시간 가량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따라 펼쳐진 뗏목 유람길에는 천혜의 비경과 함께 수많은 인문학 유적들이 산재해 있었다. 황하문명부터 5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에서도 이만한 곳은 찾기 어렵다는 게 현지 관리인들의 설명이다.

 

중국은 수많은 전쟁과 수십 차례 왕조가 바뀌는 등 격동의 역사를 보내왔지만 이곳만은 고요했다. 속세를 피해 문인과 종교인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인문학적 배경은 무이산이 세계복합유산으로 선정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무이정사

 

무이구곡 가운데 5곡에 있는 무이정사(武夷精舍). 남송 때 주자학의 대가 주희(朱熹, 1130-1200)가 1183년 이곳에 서원을 짓고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을 썼다.

 

입구를 지나 전청(前廳)에 걸려 있는 학달성천(學達性天·배움을 통해 천성에 이른다)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이 문구는 서원 중앙에 1000년 된 박달나무가 하늘로 치솟아 있는 것과 묘한 대비를 이뤘다. 현지인들은 주희의 뜻을 이어받아 지혜롭게 살게 해달라는 의미에서 이곳에서 웨딩촬영을 많이 한다. 서원 북쪽 중앙에 위치한 강학당에는 주희의 영정이 있다. 그 바로 아래에는 당시 주희가 제자들에게 학문을 전수하는 장면이 재현돼 있다.

 

주희는 1183년 이후 무이정사에 은거하며 ‘무이구곡가’를 짓고 성리학을 완성했다. ‘무이구곡가’는 첫 수를 제외하고 무이구곡의 산과 물의 아름다운 경치를 묘사하고 있는 가운데 도학(주자학·성리학)을 공부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에 성리학이 들어왔으나 조선 중기에 와서 퇴계 이황선생과 율곡 이이선생에 의해 주희의 사상과 작품들이 완전히 소화·흡수된다. 그 뒤 ‘무이구곡가’는 조선조 성리학자 사이에서 주자학을 실물을 통해서 보다 가깝게 접근하게 하는 기능을 했다.

 

무이정사는 무이산이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인문학적 배경을 제공했다. 지리산이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인근의 수많은 서원, 그 가운데서도 남명학의 본산 덕천서원을 중심으로 등재 추진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이유다.

 

△서한의 도읍지 민월왕성

 

민월왕성은 무이산 동남쪽에 면적 42㎢의 서한 유적지 한 가운데 있다. 이곳은 2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민월왕성은 한나라 유방이 진나라를 멸할 때 도움을 준 민월에게 왕의 호칭을 내리고 무이산 일대를 통치하게 하면서 만들어졌다.

▲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나라 도읍지 박물관 내부 모습. 중국=추성수기자 chss78@

오랜 역사만큼이나 놀라운 사실은 당시 왕궁터에서 발견된 유적들이다. 현재 도읍지 전체에서 불과 2㎢의 면적을 발굴 했을 뿐인데도 4000여점의 유물이 나왔다. 이는 중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왕궁터에서 나온 유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목욕탕과 배수관이다. 당시 중국의 문화가 고대 그리스 로마와 견주어 결코 떨어지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지리산도 삼한시대 왕궁터인 달궁과 철기문화의 중심지라는 점을 내세워 역사적으로 충분히 세계복합유산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천시앙룽 무이정사 관장 "남명학 전승할 체계적 조직 만들어야"

“남명학은 세계적으로 조명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고 지리산이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면서 반드시 포함돼야 할 요소입니다.”

 

천시앙룽 무이정사 관장은 남명 조식 선생의 학풍에 대해 엄지를 세웠다. 그는 매해 경북 안동에서 열리는 ‘한·중 성리학 교류 대회’에 참석하면서 남명의 학풍에 매료됐다고 했다. 동아시아 전체를 봤을 때 주희, 율곡 이이, 남명 조식, 퇴계 이황 등은 주자학에서 손꼽히는 대학자라는 설명이다.

 

“무이정사는 현재 상징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고, 주자학을 학습하고 전승하기 위한 공간들이 무이산 일대에 수십 군데나 됩니다.”

 

천시앙룽 관장은 인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명학을 전승할 수 있는 체계적인 조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무이정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인정을 받은 것은 학문의 독창성도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이를 전승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주희의 신유학은 동아시아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남명학을 한국에 국한하지 말고 동아시아 전체로 봤을 때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를 연구하는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천시앙룽 관장은 남명학을 중심으로 한 국제 포럼을 열 것을 제안했다.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면 분명 남명학의 가치는 더욱 올라갈 것이란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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