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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세계복합유산으로 - 17. 문정댐·케이블카

댐건설, 홍수 조절용으로 의견수렴 거쳐 추진 / 삭도사업, 지자체 단일화 신청땐 재심사 논란

▲ 지리산 용유담 전경. 댐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지리산이 위기에 처한 것은 사람의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부터다. 전북과 전남도가 관광객 유치를 명분 삼아 1988년 남원시 산내면에서 달궁, 성삼재를 거쳐 구례군 광의면까지 지리산 25㎞를 관통하는 861번 지방도로를 개설한 후 뱀과 오소리, 노루 등 동물들이 차량에 치여 죽는(로드킬) 사고가 빈발했다. 쓰레기 오염, 등산로 훼손도 많아졌다. 최근에는 댐과 케이블카 설치 움직임으로 지리산 일대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문정댐

 

정부는 경남 함양군 문정댐(일명 지리산댐)을 비롯해 전국 한강·낙동강·금강·섬진강 수계에 6개 대형댐과 8개 소형댐 등 14개의 댐을 2021년까지 건설할 계획이다. 이 중 지리산에는 문정댐과 전남 구례 피아골 내서댐 등 2개가 포함됐다.

 

문정댐은 정부가 1987년 수자원개발계획을 세우면서 댐 예정지로 지정한 후 찬반 논란이 계속되는 곳이다. 정부가 2001년 재측량을 실시하면서 댐건설 반대가 거세게 일었다. 급기야 지리산 실상사 입구 해탈교까지 댐 물꼬리가 닿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실상사 도법스님을 중심으로 한 댐 반대운동이 극에 달했다. 이후 정부는 함양 황석산 쪽으로 댐 계획을 수정하려고 했지만 안의면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쳤고, 결국 문정댐 물꼬리를 실상사 해탈교에서 마천면소재지 방향으로 3㎞ 가량 하향 조정한 뒤 문정댐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6월 국토교통부는 댐 건설시 환경단체 등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사전검토협의회를 거치고, 지역주민 의견수렴을 의무화하도록 한 '댐 사업절차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최근 홍수 조절 전용댐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문정댐과 관련해서는 "지역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전국 댐건설 반대의 중심에 놓인 문정댐 문제 해결을 위해 한탄강댐처럼 평상시에는 물을 담지 않는 홍수조절전용댐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는 댐 건설로 인한 실상사 문화재 훼손 시비와 환경단체 등이 명승지로 지정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용유담 수몰 시비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문정댐은 높이 141m, 길이 896m, 저수용량 1억 7000만t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14개 댐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이와 관련 함양군청 지역발전T/F팀 김성진 팀장은 "문정댐은 예정지일 뿐 기본계획도 안된 상태다. 또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했듯이 만약 정부가 댐 건설을 하려면 사전검토협의회를 거치고 주민 의견을 수렴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도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리산생명연대 등 반대 측은 "이제 주민의 찬반 여부를 떠나 댐 상류와 하류 등 지리산 전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케이블카(삭도)

 

2000년대 들어 10여년 간 국립공원 훼손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케이블카 건설사업은 정부가 2012년 6월26일 경남 사천시가 신청한 한려해상 케이블카 1곳만 통과시킴으로써 일단락됐다.

 

지리산과 설악산, 월출산 지역 지자체들이 신청한 6곳의 케이블카 계획에 대해서는 모두 부적절 결정이 내려졌다.

▲ 용유담 주변의 기암괴석.

남원시 산내면 반선~반야봉 중봉 하단부 간 케이블카(6.6km, 421억 원)를 계획한 남원시는 기존 뱀사골 탐방로를 통제하고 케이블카로 탐방객을 분산시킴으로써 탐방로 훼손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립공원위원회는 중봉 아래로 예정된 상부정류장 일대가 우리나라에서 몇 군데밖에 없는 구상나무 숲이고, 또 절대보전지역인 국립공원특별보호구역(멸종위기, 야생동물서식지)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부결했다.

 

또 구례군은 산동면 온천지구~성삼재~노고단 KBS 중계소 하단에 이르는 4.3km의 케이블카( 320억 원) 설치 시 지리산 성삼재도로와 정령치도로를 폐쇄하겠다며 차별화 전략을 폈지만 공원위원회로부터 "남원시가 동의하지 않는 비현실적 방안"이란 지적을 받았다.

 

공원위원회는 또 산청군이 내놓은 중산관광지~장터목 5.2km 케이블카 계획(450억 원)에 대해서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등을 이유로 역시 불허했고, 함양군의 백무동~망바위인근 3.4km( 240억 원) 계획도 비슷한 이유로 불허했다.

 

이후 환경부 관계자가 "지리산권 4개 시·군 어느 한 곳이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사업을 재신청하면, 다시 경쟁적으로 나설 것이 우려된다"며 "서로 자율조정해서 신청지를 단일화 한다면 재심사 하겠다"고 밝혀 또 다른 갈등을 부추겼다.

● 최화연 지리산생명연대 사무처장 "고마운 지리산 그대로 놔두자"

 

지리산은 3개도(경남, 전남,전북)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국내 최대 면적(483㎢)의 국립공원이며 고산, 계곡, 습지 등이 분포해 멸종위기에 처한 종을 포함, 약 5,000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다. 지리산은 1967년 국내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의 카테고리Ⅱ지역으로 인증되어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국립공원으로 인정받았다.

 

다양한 동식물들과 더불어 지리산의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사람들도 골짜기에 깃들어 지리산과 한 몸이 된 삶을 꾸려왔다. '지리산문화권'이 형성될 정도로 지리산은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산이다.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배경에는 지리산 주민들의 자발적 지정운동이 있었는데, 지리산에 케이블카와 댐을 만든다는 계획을 지리산 4개 시군 지자체와 국토해양부, 수자원공사가 버젓이 추진하고 있는 것은 모순된 일이다. 세상이 강팍해지고 돈 중심으로 흘러가다보니 내 몸과 같은, 내 어머니 같은 지리산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기 시작한데서 문제가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지리산은 우리 산이야!'라고 자부심을 갖는 경남권, 전남권, 전북권 사람들이 있다. 자부심이 혹여 자만심과 독점욕으로 변질된다면 케이블카, 댐을 짓겠다는 발상은 언제나 가능할 수 있다.

 

지리산에 댐을 지으면 멸종위기종 반달가슴곰의 생태이동통로 단절과 국가명승으로 지정예고까지 된 비경 '용유담'의 수몰, 인근 칠선계곡, 한신계곡, 백무동 계곡과 연결된 생태계 단절, 안개 일수 증가로 인한 생태계 변화, 농사 및 건강피해, 교통비용 증가, 인근 실상사 등 문화유산과 대대로 이어온 주민공동체가 파괴된다. 용수확보, 홍수조절이 필요해 댐을 짓겠다고 하지만 4대강 사업하면 두 가지 다 해결된다고 했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가. 4대강 사업이 국민 사기극인 게 드러난 마당에 같은 거짓말에 두 번 속을 순 없다. 국민혈세를 허투루 쓸 순 없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놓으면 지역경제가 살아난다고 하지만, 일부 업자와 권력자들의 주머니만 채우는 꼴이다. 무엇보다도 생태보전이 절실히 필요한 국립공원 구역 안에 케이블카를 계획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 '자연공원법' 개악부터 바로잡아야한다. 환경보호, 노약자, 장애인 배려는 핑계일 뿐이다. 최근에 설악산 케이블카 계획서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다행히 부결되었지만 지리산권에서도 재추진 한다는 말이 들린다. 그래서 지리산을 사랑한다는 말이 무서운 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핑계로 독점하고 사유화, 소유하려 들지 말고 그냥, 지리산을 고마워하자. 지금 이 자리에 있어주는 지리산을 공공의 가치와 선으로 놔두자. 지리산의 존재 자체를 경이로워하자. 지금 지리산에게 필요한 것은 그냥 그대로, 옆에 있어주고 내버려두는 것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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