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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세계복합유산으로 - 14. 지리산을 지키는 사람들

한반도의 허파 지리산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면서 동시에 한 해 30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 명소이자 국민 체력단련장, 스트레스 해소의 장, 예술인들의 작업장이다. 70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의 보고이고, 소중한 문화자산들이 가득한 곳이다.

 

지리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날도 머지않았다. 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하고, 남원문화원 이병채 원장을 중심으로 한 지리산권 7개 시·군 문화원이 한 단계 높은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 등재를 수년째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지리산의 가치를 알고 보존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가는 지난 1967년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지리산생명연대,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등 시민단체, 주민 등의 감시와 노력 덕분이다.

 

최근 문화재청의 지리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을 위한 용역을 실시한 '지리산권문화연구단'의 서정호 교수(순천대)를 통해 지리산의 가치, 보존 이유, 향후 전략과 과제 등을 들어보았다. 또 지리산 자락에 아예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눌러앉은 강병규 길섶 갤러리 대표도 만났다.

 

● 서정호 지리산권문화연구단 교수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급해"

▲ 전남 구례 지리산권문화연구단에서 만난 서정호 교수.

-지리산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까.

 

"5년 전에 무주 군청에서 태권도공원 관련 일을 할 때 덕유산에 많이 올라갔는데, 그 때 자연스럽게 산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2008년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으로 옮긴 후 지리산 연구에 푹 빠져 있습니다. 여기 와서 빨치산과 관련된 남부군 등 소설책을 비롯해서 지리산 관련 책들을 참 많이 읽었습니다. 또 지난 5년 동안 지리산에는 200번 정도 들어갔다 나왔는데, 천왕봉 20번, 노고단 50번 정도 다녀왔고, 골짜기마다 안 가본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리산은 어떤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까.

 

"지리산은 384㎢에 달하는 굉장히 넓은 산입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생물종 2만2000여종 중에서 3분의 1인 7000여종이 살아요. 그게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돼 있으니, 그게 지리산의 가장 큰 매력이죠. 북한산은 지리산의 6분의 1 크기에 불과한데, 연간 탐방객이 1000만 명에 달합니다. 그러나 지리산은 300만 명이예요. 탐방객 수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생물권보전이 잘 돼 있다는 것이죠.

 

-지리산권문화연구단은 2007년 교육부 HK사업으로 선정됐죠?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하고, 경상대 경남문화연구원이 단일과제로 '지리산권 문화 연구'라는 의제(아젠다)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80억 원을 지원받는 사업입니다."

 

-주로 무슨 일을 합니까.

 

"지리산권의 문화를 연구합니다. 연구원 7명이 그동안 저서 100권, 논문 150편 정도를 내놓은 것 같습니다. 외부 용역도 수행하고 있는데요, 문화재청의 '지리산복합문화유산등재신청' 용역,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주한 '디지털 하동문화대전' 용역, '지리산 사전' 발간작업 등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환경부의 유네스코 '지리산생물권보전지역' 신청 용역에 연구원 동료인 최원석 교수(경상대)와 함께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이 지리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데, 어떻게 보십니까.

 

"문화재청은 우선 세계문화유산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우리의 최종 목표는 유네스코 복합유산등재입니다.

 

문제는 문화재청 내부에서 지리산복합유산등재 건이 후순위에 있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자연유산 부문에서 내용이 생각보다 빈약하다는 겁니다. 화엄사 등 사찰을 중심으로 한 문화 쪽은 내용이 좀 있는데, 자연 쪽에서는 세상에 '이거다' 하고 자신 있게 내놓을 만한 지리산만의 자연경관과 동식물이 빈약하다는 거죠. 인공적으로 방사해 개체수를 늘리고 있는 반달가슴곰이나, 한국 특산종 구상나무 모두 경쟁력 떨어진다는 판단입니다."

 

-왜 그런가요.

 

"예를 들어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호주 블루마운틴에 서식하는 유칼립투스라는 나무는 호주와 뉴질랜드에만 서식하는데, 그 나무가 블루마운틴의 60% 정도 분포돼 있습니다. 유칼립투스 잎에는 알콜 성분이 있고, 바람이 불어 서로 부딪치면 산불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지금까지도 이 산불을 이용해 동물들을 사냥하는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즉, 유칼립투스가 많이 분포돼 있다는 사실 뿐 아니라 유칼립투스가 원주민들의 전통적 생활 풍습, 문화에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증명이 됐기 때문에 유네스코로부터 그 가치가 인정된 것입니다.

 

아쉽게도 구상나무는 인간 전통문화 관련성이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 풀어야 할 연구과제가 많다는 얘깁니다.

 

-어떤 일들을 어떻게 대비해 나가야 할까요.

 

"자연유산은 세계적 추세가 국내법이나 국제적 네트워크 규약에 의해서 보존관리구역으로 지정된 곳을 우선 등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국내법으로 천연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어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유리하다는 겁니다. 지리산은 천연보호구역,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조차 안 돼 있으니까 먼저 이것부터 지정해 나가야 합니다.

 

-의욕이 앞선 측면 있다고 볼 수 있겠군요.

 

"그렇죠. 차근차근 해 가야 합니다. 먼저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을 받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유네스코에 지정 신청하려면 환경부장관, 산림청장, 도지사, 시장·군수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지금으로서는 3개 광역지자체와 4개 기초지자체가 지리산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적극 협조하는 분위기가 시급 합니다.

 

-주민들 사이에 생물보전지역이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 지역발전이 저해될 것이란 우려가 있는데요.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자는 것이 바로 생물권보전지역 및 유네스코 유산 등재라는 사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제주도에서 나오는 생수는 '세계자연유산지역에서 나오는 삼다수'라는 상표가 가능합니다. 그만큼 경쟁력이 커지는 것입니다. 끝으로 주민은 물론 3개도 5개 시군 기관장들이 지리산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합니다.

 

● 강병규 길섶 갤러리 대표 "역사문화자산, 소득화 필요"

▲ 남원 산내면 흙으로 지은 길섶 갤러리에서 만난 강병규 대표.

-어떻게 지리산에 터를 잡게 됐는지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일할 때 주로 산을 취재했습니다. 덕유산과 지리산을 많이 다녔는데 지리산의 인상이 너무 좋았어요. 거의 매주 지리산을 찾았지요. 이곳에 내려온 지는 8년 정도 됐습니다.

 

사진작업을 하면서 지리산만의 차별화된 면모를 보았죠. 뾰족한 기암괴석이 많은 설악산과 달리 지리산은 선이 부드럽고 화려하지 않아요. 포근하고 장중한 느낌이었죠. 은근하고, 끈기 있고, 어머니처럼 포근하거든요. 그러면서 지리산에 끌렸고, 나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거대한 산줄기와 계곡, 일출과 일몰 등 장중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차츰 숲 속의 길과 그 길을 오가며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더욱 흥미를 갖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나도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직장을 그만두면 꼭 지리산에서 살겠다고 생각했었죠. 결국 그렇게 됐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좋아하는 지리산에서, 제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소망했던 삶입니다."

 

-길섶 갤러리는 마을 뒷산이지만 상당히 가파른 곳에 위치했는데, 어떻게 집을 짓게 됐습니까.

 

"지리산에 정착하기로 마음먹고 2005년에 임야를 사서 개간했습니다. 매입한 임야가 1만6000평이고, 2000평의 대지를 만들어 살림집과 갤러리, 사랑방을 지었죠. 집은 지역 문화와 맞아야 하기 때문에 산골이라는 분위기를 살려 황토로 흙집을 지었고, 지붕은 너와를 얹었습니다. 당초 제 꿈이 조용한 숲 속에 알찬 문화 휴식공간을 조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문화 전시 휴식공간을 마련했습니다."

 

-흙집 짓는 것부터 난공사였을 것 같은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흙집 짓기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닙니다. 마침 산내면 지역에 흙집 짓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품앗이 해가면서 공사를 했어요. 제 집이 산내면에서 일곱 번째 완공된 흙집입니다.

 

사실 집짓는 것보다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얻는 것이 더 힘들었죠. 원주민과 외부에서 들어온 귀농인들 사이의 갈등, 또 귀농인들 간의 갈등이 보이지 않게 많아 참 안타까워요.

 

몇 년 전 출판사와 공동으로 지리산 주변 마을 취재를 다닌 적이 있는데, 원주민들은 부와 지식을 두루 갖춘 귀농인들에게서 상대적 박탈감, 시기심을 갖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귀농인들은 은근히 원주민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그런 갈등이 조금씩 삭혀지고 있지만 해결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강 대표는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지리산에는 많은 문화유산, 전통이 있습니다. 남원시 운봉 등에서 발굴되는 야철지는 고대 철기문화의 중심지가 지리산 일대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원시 운봉읍 회덕마을과 팔랑치 등에 남아 있는 샛집(억새집)도 소중한 지리산의 문화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화를 계승 발전시킨다는 차원에서, 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유입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의 경우 이원규·박남준 시인, 이창수 사진작가 등이 정착해 창작 작업이라는 새로운 삶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실상사가 귀농학교를 만들고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지리산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이제 지역의 소중한 역사 문화적 자산을 소득으로 연계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소득은 어떻게 얻고 있습니까.

 

"제가 집을 지은 후 공교롭게도 지리산둘레길이 개설됐는데, 남원 인월-함양 마천 구간이 집 근처를 지납니다. 이래저래 입소문이 나면서 여행객들이 들러 가거나 1박 하며 바비큐 파티를 하는데, 그런 손님들이 많아졌어요. 갤러리에 전시된 지리산 사진도 판매합니다."

 

-구절초 축제는 잘 돼갑니까.

 

"지난 4년간 집 주변 1만 4000평의 소나무 숲에 구절초를 심었습니다. 지난해 10월에 첫 축제를 열었고, 올해에도 10월3일부터 구절초축제를 동네잔치처럼 소박하게 했습니다. 산골에서 혼자 하려니 여러모로 힘든 것이 사실인데, 자연경관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축제를 주민, 여행객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구절초 축제가 지리산 둘레길의 대표적인 상생아이콘이 될 수 있도록 키우려고 합니다."

 

-지리산 문화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리산에 새로운 피가 수혈돼야 하고, 자치단체들이 나서 흙집과 목기 등을 살리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어가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리산문화유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가치가 충분해요. 지리산의 원시적 생태와 역사 전통문화 가치를 통해 주민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앞으로 구절초에 예술, 문화를 얹어 수준 높은 지리산 문화를 만들어 갈 계획입니다.

 

김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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