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음악(Arab Music)은 그 뿌리가 길고 깊다. 아랍지역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이며, 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현대 주류 종교를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아랍문화는 이처럼 풍요로운 대지 위에서 잉태됐다. 그래서 아랍음악의 뿌리는 길고 깊을 수밖에 없다.
아랍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끊임없이 굴절되면서 이어지는 선율과, 빠르고 느린 박자의 리듬에 묘하게 깊이 빠져들어간다. 그 이유는 24음계를 기본으로 하고 아랍특유의 선법인 마캄(maqam)을 사용하는 독특한 선율과 리듬의 진행 때문인 듯 하다.
예전에 터키 내륙에 있는 도시 콘야(Konya)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이 도시에서 격조 있는 아랍전통음악을 라이브(Live)로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도 가끔 아랍음악을 들을 때면 그 당시 빠져들었던 황홀경의 연주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이 곳이 그 유명한 수피댄스(sufi dance)로 잘 알려진 도시이다. 수피댄스는 ‘세마(sema)’라는 의식을 거행할 때 추는 춤이어서 세마댄스(sema dance)라고도 한다. 콘야는 한때 셀주크 터키의 수도였고 철학자이자 시인인 ‘메블라나 루우미’가 이슬람 수피교단의 한 교파인 메블라나 교단을 만든 본거지다. 메블라나 교단에서는 신과의 영적인 교감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이 수피댄스를 만들게 된 것이라 한다.
이 수피댄스 공연을 수소문해 오후 9시께 공연을 보기 위해 어느 이슬람 사원에 갔다. 유럽 사람인 듯한 중년의 백인 남녀 20여명이 와 있었고, 그리 크지 않은 오래된 사원은 조금 낡아보였지만 정갈한 느낌을 주었다. 공연은 엄숙하게 시작됐다. 아랍 전통악기인 네이(ney, 갈대피리), 우드(oud, 기타와 같은 소리를 내는 발현 악기), 다프(daff, 방울이 달린 탬버린의 일종), 다라부카(darabuka, 항아리 모양의 북) 등의 연주자들이 차례대로 연주를 시작했다. 한참 후에 남자 무용수가 특유의 수피댄스 의상을 입고 한 사람씩 나와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었다. 시간이 갈수록 연주가 빠르고 격렬해지면서 무용수도 늘어났다. 나중에는 열 두세 명의 무용수가 집단으로 춤을 추었는데, 3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깊게 몰입한 공연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신비로운 선율과 느리고 격렬한 빠름의 타악기 연주에 맞추어 계속 돌고 도는 단순한 춤사위였을 뿐인데 그 어떤 강렬한 마력에 빠져든 황홀경의 시간들이었다.
지난 2005년 전주세계소리축제 때 참여했던 쿠르드족 월드뮤직 그룹 ‘리빙 화이어 앙상블(Living fire Ensemble)의 연주도 필자에게는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는 공연으로 남아있다. 현존하는 지구상 최대의 유랑민족인 쿠르드족은 그 인구가 2200만 명에서 3800만 명까지 추산되고 있다. 터키와 이라크, 이란, 시리아, 아르메니아 등의 국경지대에 흩어져 차별과 박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주로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쿠르드족 음악을 보존하고 확산하는 작업에 전념하는 ‘리빙 화이어 앙상블’의 연주는 아랍 전통의 선율과 리듬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새로운 음악의 시도가 돋보였다.
그리고 이 그룹을 이끌고 있는 ‘지하오니’의 다프(daff) 솔로 연주는 엄청난 에너지의 분출을 느끼게 하는 전율의 연주였다. 여기서 차이고 저기서 당하는 쿠르드족의 울분을 토해내는 듯한 격렬한 다프 연주였다. 언뜻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탬버린의 일종인 다프를 손에 들고 힘과 스피드의 강약을 조절해가면서 관중을 강렬한 엑스터시(ecstasy)로 몰아가는 연주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공연이었다.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에도 어김없이 중동의 연주팀 두 팀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아랍음악과는 조금 다른 페르시안(이란)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그룹 시알크 앙상블(sialk Ensamble)과 아랍문화와 신비주의 종파였던 수피주의(sufism)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연주그룹 듀오 사빌(Duo Sabil)이 그들이다. 듀오 사빌은 세계 유수의 월드뮤직 페스티발에 자주 초청받는 실력 있는 그룹이다. 특히 듀오 사빌에서 우드(oud)를 맡고 있는 아마드 알 하티브(Ahmad Al Khatib)의 품격 있는 우드 연주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수피주의에 심취되어 있는 아마드 알 하티브의 라이브 연주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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