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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허미숙 부위원장 "미디어 소통방식 대변혁기…시청자 주권시대 시작돼"

지난 정권 10년 우리 공영방송 공정·공공성 참혹하게 무너져
4기 심의위, 객관·독립성 바탕 합의제 정신 중요한 가치 인식
불편부당·사회적 약자 주목 방송 공정성 지키기에 노력
전통·윤리 수호 최후 문지기 정파성으로부터 자유로워야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자료실에서 허미숙 부위원장이 자료를 찾고 있다. 박형민 기자

지난 1월 30일 제 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회의 공식적인 심의활동이 중단된 지 8개월만이다. 심의위원회는 방송과 인터넷의 내용 규제 전반을 담당하는 공정성 규제 기구다. 방송 내용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고 보장하는 활동이 목적이니 실질적으로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럼에도 이 위원회는 짧지 않은 기간 활동을 멈춰야했다. 대통령이 추천한 3명, 국회의장이 국회 각 교섭단체 대표위원과 협의해 추천한 3명,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가 추천한 3명 등 9명으로 구성되는 심의위원회 구성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방송심의 활동이 중단되면서 심의 안건은 눈덩이 불어나듯이 누적되었다.

4기 위원회가 위촉식 직후 곧바로 누적된 방송 심의 업무 처리에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4기 위원회는 이전 구성과 달리 나이와 성별 폭이 넓어졌다. 아홉 명 모두 50대 이상의 남성위원으로 구성되었던 3기에 비하면 큰 변화다. 눈길을 끄는 변화가 또 있다. 부위원장으로 선임된 허미숙 위원(65)이다. 김제가 고향인 허부위원장은 80년대 CBS 언론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지켜온 주역이다. PD로 시작해 기자, 편성국장, TV본부장을 두루 거치면서 시대를 읽고 호흡하는 방송의 역할을 지켜온 그의 삶은 굴곡진 CBS방송의 역사와 온전히 함께 있다. 상임직 부위원장인 그의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를 만났다. 새로운 일을 만나 변화된 일상도 궁금했거니와 대한민국 방송 현실을 통해 저널리즘이 지켜야할 가치를 듣고 싶어서였다.

서울시 양천구 목동 방송타운 빌딩에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그의 사무실 책상위에는 심의를 기다리는 문서들이 쌓여있었다. 그 분량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위원회 활동이 너무 오랫동안 멈춰있었던 것 같습니다. 방송과 광고소위에 상정된 것만도 461건이나 된다고 들었습니다.

“작년 6월 12일에 3기위원회가 이임식을 했어요. 공백이 없으려면 6월 13일에 취임식이 있었어야죠. 그런데 해를 넘겨 1월 30일 취임을 했으니 8개월이나 중단되었던 셈이예요. 심의가 시급한 안건이 너무 많아 위촉식 마치고 한 시간 후에 첫 번째 심의를 시작했어요. 원래는 일주일에 한번 심의를 하게 되는데 지금은 두 번으로 늘려 심의하고 있습니다. 심의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은데, 듣기로는 직원들이 4기 취임 이후 저녁약속을 다 취소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누적 안건을 조금이라도 앞당겨 처리하는 것이 당장 해결해야할 과제입니다.”

-심의할 안건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공공·공정성이 제기되는 방송 광고물이 많다는 것일 텐데요.

“방송이 지나치게 상업화되면서 지금은 우려되는 수준 그 이상이 아닌가 싶어요. 심의위의 역할은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지켜내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일인데, 그 기준을 벗어나는 대상이 늘고 있다는 것은 방송환경이 그만큼 위기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아니겠어요.”

-이러한 위기를 심의위의 규제만으로 극복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물론이지요. 저는 그 힘을 시청자들이 갖고 있다고 봅니다. 이탈리아의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라디오송출을 처음으로 성공한 것이 1895년, 서울 경성방송이 개국한 것이 1927년입니다. 90년이나 지났죠. 그때는 라디오로 새로운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겠지만 지금은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방송을 송출하는 사람과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가 더 이상 일방적이지 않지요. 언제든 비판받고 반론을 들어야 합니다. 정보를 독점한 사람도 없고요. 누구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손쉽게 영상을 만들고 소비하고 비판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상호 이해에 바탕을 둔 관계가 중요해진 것이죠. 저는 이미 시청자주권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산업으로서의 방송 환경 변화는 어떻게 보십니까.

“TV에 인터넷이 연결되면서 시청자들은 더 이상 방송 채널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됐고, 아무 때나 원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콘텐트 업체가 각광 받고 있습니다. 음악이 더 이상 LP레코드나 CD를 거치지 않고 온라인으로 소비되듯이, TV 콘텐츠도 방송국 없이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시대예요. 미디어 종사자들의 품격과 수준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시점이지요.”

-공영방송의 역할과 기능도 그만큼 더 절박해진 셈인데요.

“물서구의 공영방송은 공정성 문제에서 벗어나 무한미디어 경쟁 상황에서의 공영방송 역할을 고민 중입니다. 그런데 우리 공영방송들은 지난 10년 동안 공정성과 공공성이 참혹하게 무너지는 역주행을 겪었어요. 촛불혁명을 기점으로 높아진 방송환경의 변화 욕구가 그 상황을 반증합니다. 공영방송들의 리더십 교체가 숨 가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망가진 방송환경의 복원이 이미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 맞게 보다 발전된 형태로 이뤄질 것인지는 지켜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아까 시청자의 힘을 주목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방송환경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시청자들이니까요. 이번 KBS의 사장 선출에 40%의 선택권을 행사하는 시민자문단도 사실은 시청자의 다른 이름이지요. 이런 저런 변화를 보면 지금 우리는 미디어 소통방식의 대 변혁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물론이죠. 방송통신심의위는 정기적으로 허가 또는 승인을 받는 전국의 340개 방송사의 프로그램과 광고가 적법하게 송출되었는지를 사후심의 합니다. 방송법 준수 여부와 사회질서 유지, 개인의 기본권 보호가 심의기준이지요. 특히 이번 4기 위원회의 경우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에 시선을 맞추고 언론의 인권감수성을 높이도록 촉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통신에서는 마약판매와 사행성 오락, 불법정보, 국가전복을 목적으로 한 통신회합 그런 내용을 담은 사이트를 찾아서 차단합니다. 청소년에게 해로운 선정적이고 잔혹한 영상을 삭제하고, 청소년유해정보를 목록화하는 작업도 담당하고요. 최근에는 이용자 권익보호와 관련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건에 대한 분쟁조정업무도 시작했습니다. 심의위 조직도 시청자중심·이용자중심 조직으로 대규모 개편을 준비 중이예요.”

-오랫동안 방송제작 현장을 지켜오셨는데,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방송 심의에 걸려 불려온 적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정치가 언론을 폭압하던 80년대에는 저도 의견진술자 자리에 여러 번 앉았습니다. 30년이 지나 진술을 듣는 방송심의소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앉으니 여러 가지 마음이 교차하더군요.(웃음) 입장은 서로 바뀌었지만 방송의 공정성 심의에 있어서의 불편부당과 사회적 약자에 주목하는 시선은 맥락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심의위원이 갖춰야 할 방송의 가치관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파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방통심의위 위원 9인은 대통령이 위촉하는 자리로 법적 지위와 역할이 정해져 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 문제는 여당 몫, 야당 몫의 위원자리가 6대 3의 구조로 대통령과 국회의장, 국회 과학기술방송위원회에서 각 3인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위촉하는 제도로부터 오는 정파성이예요. 이런 구성은 정부로부터의 직접적인 간섭을 최소화 하라는 사회적 합의가 법제화된 결과지만, 지난 10년 동안 청와대를 필두로 여당과 야당이 첨예하게 대치한 채 갈등을 빚어온 게 사실입니다.”

-4기 위원회가 8개월 동안 표류한 것도 실제로는 정치권의 갈등 때문이었죠. 태생적 한계가 있으니 쉽지는 않겠으나 정파성을 벗어나는 일이 무엇보다도 절실하겠습니다.

“그래서 4기 심의위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공정성, 객관성, 독립성을 바탕으로 한 ‘합의제 정신’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위원회 출범 이후 방송소위에 상정된 모든 안건이 프로그램에 대한 법정제재까지도 매 회 ‘전원합의’로 의결되는 기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방심위의 궁극적인 목표가 궁금해집니다.

“명실상부한 표현의 자유 보호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입니다. 방송의 공정성 훼손에는 제재를 가하지만, 제작과 취재의 자율성은 훼손되지 않도록 보장돼야 하고요, 더불어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시청자 권익보호를 위해서도 노력해야죠.”

-그 목표를 위해 심의위원들이 지켜야할 가치는 무엇일까요.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합의제 정신입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헌법재판소와 유사한 합의제 기구입니다. 심의위원은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독립적으로 모든 사안을 판단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심의위원이 정파적이거나 특정한 이익에 좌우되면 그때부터 우리사회는 정의로울 수 없게 되죠.”

-화제를 잠깐 돌려보겠습니다. 부위원장님은 현업에서 일할 때 방송 민주화를 가장 큰 과제로 삼았었는데요. 인생의 변곡점이 그만큼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고난과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를 지켰던 가치가 궁금합니다.

“시간의 질량에 대한 인식과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관계에서 형성되는 에너지와 기쁨은 평생 놓치고 싶지 않은 선물 같은 것이니까요.”

-방송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겠지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하자는 것입니다. 가치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니까요. 변화하는 가치에 맞는 새 규칙과 삶의 스타일을 만들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잊지 말아야할 것은 방향입니다. 가령 낡은 전통을 단절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속도를 낸다고 해서 그 시대가 빨리 다가오지는 않죠. 오히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와 그 방향을 향하기 위해서 필요한 가장 적절한 속도를 찾자는 것입니다.”

두 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오랫동안 고민해온 심의위원회의 역할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심의위원은 미디어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전통과 윤리를 지키는 마지막 문지기 같은 존재들입니다. 심의위원을 하수종말처리를 담당하는 청소부에 비유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심의위원들은 하수라도 청정해역에 내보낼 수 있도록 수질을 향상시키는 일을 담당해야한다는 그가 여러 번 강조한 대목이 있다. 정파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 그것은 곧 부위원장으로서 그가 경계하고 지켜내야 할 의무 같은 것이다.

인터뷰 말미 그가 말했다.

“만일 마지막 문지기가 정파적이고 편향적이며 특정 정치세력의 대리인 노릇만 한다면 우리의 방송 환경은 어떤 지경에 처할까요. 아마 쓰레기와 오폐수가 넘쳐나는 최악의 방송 상황을 맞겠지요.”

● 허미숙 부위원장은

- 독재정권 하 검열의 시절, CBS 민주화 지켜온 산증인

허미숙 부위원장은 1952년 김제시 금산면 용산리에서 태어났다. 종가의 장손으로 중국문학에 심취했던 아버지(허 환)는 한학자였다. 평생 직업을 갖지 않았지만 물려받은 재산으로 1남 4녀를 키웠던 아버지는 늦둥이로 낳은 딸을 엄하게 가르쳤다. 덕분에 ‘종아리 맞으며 한문을 배웠던 시절’이 아직도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삶의 변곡점마다 중요한 깨달음과 지혜의 길을 찾게 해주었던 통로가 어린 시절 배웠던 한학 덕분이었으니, 인생의 가장 귀한 선물을 남겨준 아버지의 엄한 가르침을 그는 감사해한다.

언니들과 오빠는 그가 성장하는 동안 실질적인 보호자가 되어 주었지만 일찍부터 독립적인 삶을 받아들여야했다.

원평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주로 나와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환경은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수시로 바뀌었다. 특별한 의지 없이 중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입학 자격을 얻고, 기전여고에 문예장학생으로 들어가 전주대 국문과를 입학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한 상실감을 이겨내고 싶었다. 대학 3학년 때 시내버스 안에서 우연히 보게 된 CBS(이리방송)의 PD 채용 공고가 그의 삶을 바꾸었다. 중고등학교시절부터 문학적 재질을 인정받았던 그의 답안지는 당시 채점위원이었던 소설가 홍석영씨(원광대 교수)가 그의 글 실력을 두고두고 칭찬할 정도로 빼어났다.

1975년 방송 PD가 됐다. 가벼운 음악방송으로 시작한 그의 프로그램은 점차 저널리즘의 특성을 담아내는 시사성 프로그램으로 확장되었다. 78년부터 80년까지 직접 제작하고 진행까지 도맡아 했던 <안녕하세요 허미숙입니다> 가 그 시작이었다. 독재정권의 탄압이 엄혹했던 검열의 시대, 80년 언론통폐합으로 CBS는 뉴스 보도 기능을 빼앗겼다. 시대를 읽지 못하고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현실은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83년, ‘CBS는 뉴스를 뺏겼다’는 1분짜리 스파트를 시작으로 <방송사설> 등 뉴스의 기능을 대신 할 수 있는 논평프로그램 등을 만들어냈다. 익산(당시 이리방송)에서 뉴스 회복 운동이 시작되자 서울 본사도 나섰다. 방송위원회에 불려 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였다. 뉴스 기능을 회복시키는 일은 방송 PD로서 그가 해내야하는 가장 절실한 의무였다. 본사 편성국 차장으로 자리를 옮긴 87년,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다섯 시간짜리 생방송 ‘우리는 CBS 뉴스를 듣고 싶습니다’를 만들었다. 그 직후 CBS는 뉴스 기능을 회복했다. 그러나 후유증이 컸다. 당시 CBS 뉴스 기능 정상화 운동에 나섰던 주동자(?)들을 해고하라는 압력을 받은 경영진이 중심에 섰던 사람들을 지방으로 뿔뿔이 헤쳐 놓으면서 그는 다시 이리방송으로 돌아왔다. 이후 광주방송 보도국장과 뉴욕특파원을 거쳐 92년 대선을 앞두고 본사로 복귀한 그는 제작 1부장으로 있으면서 시사토론의 절정을 달리는(?) 프로그램들을 제작해냈다. <월요특집> <시사자키> <통일로 가는 길> 등이 그가 만들어낸 CBS의 대표적인 시사프로그램이다.

CBS의 민주화를 이끌어내고 지켜온 방송인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그는 그 덕분에 험지로 내몰리는 상황에 번번이 처했지만 경남방송(마산)과 전남방송(순천)을 설립해내는 강단(?)을 발휘했다. 본사 편성국장과 TV본부장을 거쳐 2009년, CBS전북방송 본부장을 끝으로 CBS를 퇴직했으며 2012년 C채널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IP TV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내고 싶었으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구조적 한계를 절감하고 자유인이 됐다.

3년 동안 스스로에게 준 안식년을 마치고 2018년 1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부위원장에 위촉되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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