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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풍경] 원불교 제15대 전산 김주원 종법사 "원망보다는 감사하는 마음 가지면 삶이 달라집니다"

익산의 원불교 중앙총부를 찾아간 날,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중앙총부 정문을 지나 오른쪽에 있는 종법원에 이르는 동안 몇 채의 오래된 한옥과 낮게 엎드린 건물들은 서로 겨루지 않고 서로를 보듬듯이 놓여 있다. 몇몇 교무님들이 지나치며 목례를 했다. 성지 안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난 11월 4일 취임한 전산(田山) 김주원(金主圓) 종법사(70)를 만났다.

물질이 정신을 앞선 지 이미 오래, 생활은 편리해졌으나 삶의 가치는 여전히 부유한다. 생명은 파괴되고 갈등과 반목이 세상의 모든 경계를 가로 지르는 시대에서 좋은 삶, 좋은 사회는 아직 낯설고 아득하다.

50여년 삶의 길에 수행의 시간이 온전히 놓여 있는 전산 종법사로부터 답을 구하고 싶었다.

전산은 종법사로 취임하는 대사식을 앞두고 삭발했다. 종법사는 원불교의 최고 지도자다. 삭발이 결기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궁금했으나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특별한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허투루 쓰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단골 이발소에서 깎았습니다. 혼자서도 짧은 시간에 머리를 다룰 수 있으니 그만큼 간편해졌지요.”

큰 뜻이 없다고는 하나 의미 없이 쓰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삭발이 예삿일은 아니다.

그의 취임 법문이 생각났다. ‘나를 새롭게, 교단을 새롭게, 세상을 새롭게’.

교단을 새롭게 이끌 그의 철학과 소신이 더 궁금해졌다.

인터뷰는 종법사가 거처하고 근무하는 종법원 1층에서 있었다.

-지난 주말에 대사식이 있었지요. 기존과는 달리 간소하게 대사식을 치렀다고 들었습니다. 작은 것에서부터의 변화가 눈에 띕니다.

“식의 형식은 같습니다. 다만 실외에서 실내로 바꾼 것뿐이죠. 대사식은 교단의 큰 잔치지만 규모로 그 의미를 더 잘 세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중이 많이 모였다고 해서 꼭 좋은 것도 아니고요. 지금은 미디어가 발달해 영상으로도 모든 과정을 다 볼 수 있으니 행사의 규모를 줄이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종법사님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교단의 변화가 기대됩니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무아봉공’을 강조하셨더군요. 원불교 창립정신이기도 한 무아봉공 정신이 궁금합니다.

“원불교 정신은 ‘일원상’의 둥근 원 속에 담겨 있습니다. 세상은 다 차별로 나뉘어 있지 않습니까. 내나라 네나라, 동쪽 서쪽, 온갖 차별로 나뉘어 있는데 둥근 하나의 진리로 보면 이 모두가 하나라는 뜻이지요. 결국 모든 것이 하나라는 이치를 깨쳐 차별사회를 넘어서자는 것이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원불교를 세우신 뜻입니다. 무아봉공(無我奉公)은 나와 남, 나와 세상을 나누어 보지 않고 상생의 길을 여는 정신입니다. 원불교에서 바라보는 최고의 인격 표준이 무아봉공인데, 사실 그 이치를 깨쳐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훈련을 해야만 얻어지는 정신입니다.”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겠습니다.

“그렇죠. 대종사님께서는 그것을 사은으로 전해주셨는데, ‘네가 있게 된 것은 천지가 있어서 가능하다는 것’이예요. 천지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지요. 결국 나를 있게 하는 그 모든 것이 은혜인데 우리는 그 은혜를 잊고 살거든요. 그런데 그 은혜를 알게 되면 작은 나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관계성을 넓혀갈 수 있게 됩니다.”

-취임사에 담았던 말씀도 이런 취지였겠습니다.

“대종사께서는 막연하게 진리의 경지를 설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누구나 생활 속에서 진리를 신앙하고 수행하여 성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지요.

일정 기간을 정해 마음공부에 전념하는 ‘정기훈련법’이나 이를 실제 생활에 적용하여 연마하는 ‘상시훈련법’ 등이 그것입니다.

저는 취임사를 통해 우리가 진리와 교단과 법과 스승에 대한 믿음으로 하루하루 꾸준히 공을 들인다면 과거의 내가 새로운 나로, 나아가 새로운 교단, 새로운 세상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대종사님께서도 앞으로 오는 시대는 크게 열리고 밝아지고 활동하는 시대가 된다고 내다보셨지요. 저는 그런 시대를 우리 힘으로 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그 힘은 마음공부, 훈련으로 얻을 수 있겠지요.“

- ‘마음공부’나 ‘훈련’이란 표현이 새롭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교법을 쉽게 풀어 내놓으시면서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셨어요. 무엇을 안다는 것은 진리를 깨쳤다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는데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실천은 더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종사님은 훈련을 반복해야만 완전히 익숙해진다고 강조하셨어요. 사실 수행은 내가 아직 깨치지 못했어도 닦아 가면 이를 수 있는 것이지만 훈련은 원리를 모르면 안 되는 일이죠. 대종사님은 마음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든지 알 수 있게 정리해놓으셨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이어내려면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거예요.”

-원불교가 문을 연지 100년이 지났는데 오늘날 교단의 위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대종사님은 5만년 운수를 말씀하셨습니다. 그에 견주면 100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걸음마를 뗀 수준이지요. 백주년 지나면서 교단 2세기를 맞았다하여 큰 변화가 올 것이란 기대들을 하지만 종교 역사 속에서는 일천합니다. 더 겸손하게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원불교의 오늘을 보자면 그런 짧은 역사로 이루어낸 양적 질적 성장이 놀라운 것 아닌가요.

“물론입니다. 원불교는 한국의 4대종교이자 모든 대륙에 교화 거점을 가지고 있는 세계종교로 성장했습니다. 100년의 짧은 역사로 본다면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물질문명은 급진적으로 발전했지만 현대는 불안과 혼돈의 시대입니다. 기존의 가치들은 부정당하면서도 그것을 대체할 윤리는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요. 원불교가 새 시대 새 종교를 자처하고 있지만 과연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단 2세기를 여는 시점에서 원불교의 새로운 100년이 궁금합니다.

“그 동안은 인적, 물적, 사회적 성장에 주력한 ‘결실’의 시기였다면, 앞으로는 그에 더하여 질적인 성숙과 주세교단으로서 역량을 확충하는 ‘결복(結福)’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원불교에서는 바른 신앙과 수행을 증득한 ‘공부인’, 언제 어디서나 은혜를 깨닫고 감사를 전하는 ‘교화인’, 작은 나에서 벗어나 큰 나를 성취한 ‘봉공인’으로 면모를 일신하고 새 시대의 주인이 되기 위한 자격을 갖추는 변화를 ‘정신개벽’이라고 표현합니다. 정신개벽은 물질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을 다시 주체적 삶으로 돌려놓는 계기가 되고, 원망과 적대의 세상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이끄는 근원적 힘이 될 것입니다.“

-화제를 바꾸겠습니다. 한국사회는 지금 매우 중요한 기점을 맞았습니다.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되돌아보면 한국사회는 늘 어렵지 않은 시절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보세요 얼마나 크게 성장했습니까. 남북관계도 큰 변화를 맞고 있고요.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다른 어떤 사회보다도 큰 것 같습니다. ‘민심이 천심’임을 그대로 증명한 사회지요. 다만 민주주의는 ‘권리’와 함께 ‘책임’을 중시 여기는 제도이자 이념입니다. 유례없는 사회적 진통을 생산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권리의 주장에 걸맞은 공동체에 대한 배려와 헌신이 뒤따라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지요.”

-남북 관계를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진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요. 원불교는 그동안 남북관계를 진보적인 입장에서 지지해오지 않았습니까.

“지난 반세기 우리 민족은 분단의 고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평화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달았지요. 현재 이뤄지고 있는 남북관계를 보면 70% 정도는 통일 됐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더 진전이 되겠지요. 우리 교단에서는 통일을 늘 긍정적으로 기대해왔습니다. 선진들은 남북 간에 서로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야 통일이 된다고 하셨어요. 관계는 항상 상대적인 것입니다. 상대를 적으로 보면 상대도 나를 적으로 봅니다. 저는 지금 통일의 기운이 거의 와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더 노력해야하겠지요.”

-취임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의 ‘적폐청산’에 대해 말씀을 하셨던데요.

“제가 말한 것은 정치적인 관점에서가 아닌 종교적 관점에서의 입장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정의와 불의를 이야기하죠. 우리가 재단한 정의와 불의는 대립적입니다. 여기에 정치적 입장이 더해지면 자칫 권모술수적인 것이 되어버리죠. 이를테면 자기가 필요한 정의를 가져다 쓰고 자기가 필요한 불의로 쳐버리는........ 그런데 종교에서 말하는 정의 불의는 조금 다릅니다. 불의를 그저 쳐버리는 정의는 종교적 정의가 아니에요. 저는 세상이 정말 잘되려면 종교적 정의가 퍼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불의도 건져줘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죠. 불교적 진리로 보면 없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결국은 세상을 좋게 하려면 안 좋은 것일수록 보듬고 다듬어서 스스로 좋아지도록 하는 일이 필요해요.”

-오늘의 한국사회 현실은 종교적 정의만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러한 현실이니 ‘적폐청산’이 부상했겠지요. 물론 우리 사회의 잘못된 점들은 고쳐 나가야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설득력을 지닐 수 있으려면 자신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해선 안 됩니다. 불의를 쳐서 세우는 정의는 오래가지 못하거든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건 쉽지만 자신이 바로 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예요. 정의는 죽기로써 부당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각고의 노력입니다. 불의까지도 안고 펼치는 정의라야 생명력이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참다운 적폐청산은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적폐를 공유하지 않는 것, 과감히 그러한 적폐를 떨쳐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때보다도 화합이 필요한데 다양한 계층에서 갈등과 대립이 깊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도 예외가 아닌데요.

“욕심이 앞서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무아봉공 정신은 한 개인만이 아니라 한 사회 국가에도 필요한 정신입니다. 종교간 갈등은 외적인 것이니 제가 쉽게 이야기할 내용이 아니지만 적어도 원불교는 교단 내 갈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본정신이 너와 나, 나와 전체를 나누지 않는 정신이니 갈등이 있을 리 없습니다.”

-경제가 어렵습니다. 청년실업이 특히 심각한데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마땅한 답을 쉽게 줄 수 없으니 더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어른들로부터 들어온 말이 있습니다. 봄은 큰 추위가 지나고서야 온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그것이 지속되진 않습니다. 그러니 청년들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시대와 마주하면 좋겠어요. 내적으로는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자력을 기르고, 외적으로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관습과 제도에 단호하게 맞설 수 있는 정의심을 발휘해야 합니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청년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는 결국 자신이 풀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를 원망하면서 누군가 문제를 해결해주기 바라는 태도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요. 어떤 경우에도 자기를 버리지 말고 바른 마음으로 노력하면 반드시 길이 열립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 마음이 공심(公心)이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죠. 자기만 생각하거나 한 가지 노력하고 열 가지를 바란다면 길은 더 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에 둘 법문을 주신다면요.

“원불교 교도가 아니라도 실천하면 좋은 말씀이 있습니다.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는 것이에요. 마음에 두고 실천해보면 삶이 달라질 거예요. 어른들이 선신 악신을 말씀하셨어요. 내가 착하게 살면 선신이 돕고 내가 마음을 나쁘게 쓰면 악신이 방해한다고. 저는 그것을 기운으로 표현합니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사느냐에 따라 세상의 기운이 답합니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주위의 기운을 얻게 되죠. 감사하는 기운을 갖고 있으면 묘하게 그런 기운이 나에게 모여 길이 열립니다.”

● 전산 김주원 종법사는

원불교 제15대 전산 김주원 종법사
원불교 제15대 전산 김주원 종법사

전산 김주원 종법사는 1948년 전주 교동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삶이었지만 남에게 베풀기 좋아했던 부모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의 의지를 꺾는 말씀을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자립심이 강했던 전산 종법사는 중고등학교(북중 전주고) 시절 수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입교한 원불교의 정신을 마음의 지주로 삼아 일반대학에 가지 않고 원불교학과가 있는 원광대에 들어갔다. 돌아보면 원불교 입교는 그에게 마치 정해져 있었던 삶의 과정과도 같았다. 그가 어린 시절 살았던 전주 교동 집 옆에는 원불교 교동교당이 있었다. 정갈한 분위기의 교당이나 들고 나는 교도들의 맑은 얼굴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종교를 갖는다면 원불교를 갖겠다고 그때 마음먹었다. 고 2때 친구로부터 입교를 권유받았을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응한 것도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마음 덕분이었다.

이미 고 3때 ‘출가’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된 그는 스스로 부족함이 많은 성정을 고쳐보겠다(?)는 마음으로 1967년 출가했다. 출가 이후에는 줄곧 수학에만 힘을 썼다. 20대부터 시작된 수학의 과정이 평탄치 많은 않았으나 대학 2학년 때 대산종사를 모시면서 접하게 된 수필법문을 시작으로 참다운 믿음은 싹을 틔워 깊어졌다. 가장 큰 신심의 변화는 군대를 제대한 직후 대산종사의 기도생활에 대한 법문을 직접 받들고 난 이후다.

1976년 원불교 중앙총부 기획실에 들어간 이후 10여년 총부에서 재직했으며 동전주교당 교무로 발령이 나면서 현장교화를 시작했다. 이후 종로교당과 중앙중도훈련원 교무, 법무실 법감, 교정원 교화부원장을 거쳐 경기 인천교구장, 중앙중도훈련원장, 교정원장을 지냈으며 최근까지 영산선학대학교 총장으로 일했다.

교직자로서의 활동은 교헌개정을 비롯한 교단의 실질적인 체계를 정비해낸 성과로 더 빛난다. 교정원 총무부장으로 일할 때는 법규를 정비하는 일과 함께 사장되어 있던 법규를 실행하는 일에 전념했으며 경기인천교구장으로 있으면서는 교구의 행정체계를 세우고 교화후원재단을 설립했다. 덕분에 원불교는 교구 내 개척 교당 지원, 청소년교화와 군종교화, 사회복지와 일반 교화 후원을 위한 재정적인 기반을 갖출 수 있게 됐다.

<대산종사법어> 편찬에도 그의 역할이 컸다. 법어 편찬은 대산종사법어 편수위원회 편수위원장을 맡았던 5년 동안 이어낸 결실이었다.

교단의 모든 기관을 통괄하는 수위단회는 전산의 삶과 수행의 공덕을 기려 2006년 종사의 법훈을 서훈했으며, 지난 9월 18일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제 15대 원불교 종법사로 그를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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