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지역을 스미는 섬진강 중에서 가장 하류지역에 있는 마을이다. 산 중턱 비탈진 곳에 오목하게 올려놓았다. 그다지 넓지 않은 터를 깎고 다듬어서 집들을 세워 마을 자체가 경사졌다. 저 아래 강변에 이르기까지 정갈하게 축대를 쌓아 이룬 다랑이 논과 밭들을 보면 이 마을 사람들 삶의 의지를 짐작케 한다. 한참을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너가면 순창인데 11시 방향으로 하얀 바위를 내밀며 기세당당하게 우뚝 솟은 산이 버티고 있다. 이름으로만 보아도 범상치 않은 용골산이다. 그 산자락 싸리재에 대 여섯 집이 강물을 바라보며 모여 있다.
구담(九潭)이란 마을의 본래 이름은 안담울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이가 있다. 앞강에 자라가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구담(龜潭)이라하기도 했고, 또한 강줄기에 아홉 개의 소(沼)가 있다고 해서 구담(九潭)이라고 불렀다한다.
1680년경 숙종 때 해주 오씨(吳氏)가 정착하여 마을을 가꾸어 왔다고 한다.
내가 이곳을 처음 찾은 때가 1992년으로 기억된다. 정월 보름 다음날이다. 어수선한 심경으로 무작정 섬진강변 길에 발을 내디뎠다. 아침 일찍부터 강물에 눈을 맞추며 얼마를 걸었는지 구담마을에 이르니 점심때가 지났다. 산과 산 사이 강변길에 불어 닥치는 칼바람이 뼈 속까지 파고드는 듯하고 시장하기 조차하니 더욱 오들오들 거린다. 어느 집인가 불쑥 들어갔다. 낯가림이 있는 나로서는 의외의 행동이다. 그 집 사람들은 이미 끼니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노부부는 장작불을 지펴 데워진 구들장 아랫목에 앉기를 권하며 귀한 손님인 양 극진히 대하였다. 그리고 따끈하게 데운 술을 몇 순배 나누면서 주인장은 조용조용한 음성으로 동네 소개를 자상하게 해 주었다. 더 좀 머물고 싶은 정겹고 훈훈한 자리였다.
그 날, 강물이 검어 질 때까지 걸었다.
구담에 다시 갔을 때 동네 사람들은 그 집을 ‘수남이네’ 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 이름이다. 섬진강을 가슴에 적시고 얼굴을 비추며 붓을 담그게 한 마을이다.
그러니까 나의 발길을 붙잡고 시선을 잡아준 그 곳은 구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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