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1 15:10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송만규 화백의 섬진팔경 이야기] (13) 평사리(하) 박경리 소설 ‘토지’ 배경이 된 곳

송만규 평사리 겨울2014
송만규 평사리 겨울2014

작가 박경리는 악양 평사리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데도 이곳을 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삼은 곳이다. 지리산에 닿아있는 너른 들판을 감싸고 흐르는 섬진강과 평사리 사람들의 삶 이 당시 한민족이 겪고 있는 마을공동체를 형상화하기에 적절한 곳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현대소설사에서 최장편인 ‘토지’는 1969년에 연재소설로 시작하여 여기저기 지면을 옮겨가면서 1994년까지 26년에 걸쳐 집필을 마치고 탈고하여 총 5부 21권으로 완간 되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격정의 근현대사를 최 참판 댁을 중심으로 삶의 인연을 이렇게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지금, 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진정성 있는 삶의 현장에서 실용적인 아름다움과 건강한 생명력을 구현해내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이 곳 지리산 끝자락, 섬진강 하류에 그러한 예술인들과 농사를 짓거나 내공을 지닌 많은 이들이 진정한 문화예술의 마당을 일구고 있다. 중앙의 문화권력과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상품화 된 문화예술에서 자아를 지켜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섬진강에 젖어 살아가는 평사리의 들녘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자동차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데를 찾아갔다. 채 녹지 않은 눈길을 따라 1,115미터의 고지까지 올라 형제봉 활공장의 널따란 평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느낌도 괜찮다. 마주보고 있는 구제봉 활공장에도 올라가 지리산 자락이 둘러싼 평사리 무딤이 들판과, 왕시루봉과 백운산 사이로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을 물들이는 노을을 보는 것도 좋다. 좀 더 천천히 눈길을 줄 수 있는 곳으로 새벽, 아니 어둠의 산을 오른다.

하동 평사리 뒷산이자 지리산 남부능선이 섬진강으로 뻗어있고 그 중에 형제봉이 있다. 형제(兄弟)의 사투리인 성제봉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정상 표지석에는 ‘어질고 덕이 뛰어난 임금’을 뜻하는 성제봉(聖帝峯)으로 표기되어 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길을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디며 내려가고 있다. 한적하고 높은 산등성이의 철쭉꽃은 나를 위해 피어있기라도 하듯 군락을 이루며 숨가쁜 나의 호흡을 조절해준다. 깊숙한 협곡 건너편 바위에 길게 늘어진 철 계단이 정면으로 보인다. 뒤에서 발목이라도 잡아당기는 듯한 두려움으로 올라서니 이제는 구름다리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예전에 이 보다 더 높고 긴 코스를 지나간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홀로 새벽에 건너기엔 등골이 오싹하기도 하다. 어쨌든 재미있다! 신선대, 통천문 등이 주는 이름과 그야말로 몽환적인 주변의 색감과 공기가 새로운 세계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내려갈수록 어둠은 걷히고 고소성(姑蘇城)에 이르렀다. 험한 산줄기를 등지고 서남쪽으로는 섬진강과 동정호를 눈 아래 둔 천연의 요충지로, 해발 300미터 정도의 능선을 따라 신라 때 돌로 쌓은 산복식(山腹式) 산성이다. 주차장에서는 900미터 지점에 20분가량 형제봉 방향으로 오른다. 자주 들르는 곳으로 성벽 위의 낙락장송 아래에 앉아있기만 해도 평안함을 안아가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섬진강과 평사리가 한층 친근하게 가까이 다가와 보이고 넓고 기다란 곡선의 물줄기를 볼 수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