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을 위해 싸우며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자, 그 방법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 이광재 장편소설 《나라 없는 나라》를 추천한다. ‘수확을 얻으려는 자 논을 갈 듯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고자 저들은 묵은 세계에 날을 박아 숨을 끊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1894년 5월 11일 황토현 전승일로부터 125년이 지난 2019년에 이르러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지정되었다. 2020년은 동학농민혁명 126년이 되는 해이고,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이 된다. 고부민란으로부터 1년여에 걸쳐 전개되었던 동학농민혁명의 동학농민군은 뒤에 항일의병항쟁의 중심세력이 되었고, 그 맥락은 3·1독립운동으로 계승되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역사적 사료가 되는 개인의 시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다시 겸허해지는 시간의 경계를 건넌다.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나라 없는 나라》는 현란할 만큼 매력적이다. 제목뿐만 아니라 인물의 힘과 문체가 그것이다.
첫째로, 시대의 상징을 관통하는 힘을 이해하는 것이 소설의 출발이다, 또한 가장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다가서는 것이 제목이다. 이광재 작가는 전봉준의 목소리를 빌어 “우리의 세상은 이 세상 너머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이란 저 너머에 있을 어떤 것이고 유토피아 또는 꿈같은 것을 향해가는 것이라고.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탈하는 장면에서, 싸움을 멈추라는 어명을 두고 병사 하나가 일어나 들고 있던 소총을 바닥에 내리쳐 두 쪽을 냈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나라는 없다!” ’(《나라 없는 나라》195쪽)
둘째로, 이광재 작가는 인물의 중심에 전봉준을 두고, 동학농민과 함께 현실적으로 연대했던 대원군이 어떻게 됐나를 세웠다. 변화하는 백성 상으로는 을개로서 대변하게 하고, 당시 조선 젊은 지식인이 어떤 생각을 하며 정치사에서 어떤 역할을 차지했는지를 다뤘다.
‘세상의 중심을 향해 육박하는 큰 힘’이 백성임을 깨닫고 두려움을 느끼는 대원군을 향해 전봉준은 “반도 없고 상도 없이 두루 공평한 세상은 모두가 주인인 까닭에 망하지 않을 것이며, 모두에게 소중하여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할 것이니 이것이 강병한 나라 아니옵니까?”라며 거리낌이 없다.
전봉준과 대원군, 대접주와 두령들, 을개와 갑례, 이철래와 호정, 장팔이와 손네. 단지 이름만 나오는 것까지 포함해서 육십여 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한다. 세대가 다른 사랑법도 애절하다. 인물의 형상화를 통해 소설 역시 우리 삶의 터이며 작가의 부단한 노력으로 직립이 가능해지는 세계라는 가능성을 배운다. 글쓰기의 실제가 시대와 삶의 모법 답안은 아니라 해도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담기 때문에 《나라 없는 나라》가 주는 열망은 뫼비우스 띠가 되어 독자에게 돌아온다. 독서의 시작과 끝이 독자인 것처럼.
셋째로, 작가의 문체다. 일상적이지 않은 의고체의 낯섦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잠시 책을 덮게 했지만, 바로 책장을 열고 각각의 문장을 더듬게 했다. 이광재 작가는 서술어조차 긴장을 놓지 않는, 작가적 책임감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단편에서 느낄 수 있는 문장의 맛을 장편에 표현해냈다. 또 그는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나라 없는 나라》 이후 전혀 다른 문체인 《수요일에 하자》로 승부를 걸었다. 이광재 작가의 다른 글도 추천한다.
우리는 어둠을 원하지 않는다. 평화롭고 따뜻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서울로 압송되어 함거에 실렸던 전봉준의 사진 한 장, 그 눈빛의 날카로움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주권이 우리에게 있음을 꿈꾸기 때문이다. ‘농묵 같던 어둠이 묽어지자 창호지도 날카로운 빛을 잃었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을 기억한다.
* 201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등단한 정숙인 소설가는 역사를 마주보는 소설 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백팩’과 ‘빛의 증거’와 채록집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라는, 개복동에서> 가 있다.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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