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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소통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코로나19 이후, 학교 풍경은 절망과 퇴보가 아니다

박제원 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2020년 초 중국 우한에 나타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전 지구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키면 전염병은 주기적으로 출현했고 폭풍을 동반한 장마처럼 급작스럽게 몰려 왔다가 신의 장난이나 거짓말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개처럼 사라진 경우가 많다. 14세기 유럽에서 최대 2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 바이러스는 최악의 전염병이었다. ‘스페인 독감’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H1N1)도 20세기 초인 제 1차 세계대전 말 미국에서 처음 발병했고 최소 2500만 명에서 최대 1억 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낳았다.

코로나19는 그 이후에 출현한 역대 급 바이러스인데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과 비슷한 흐름으로 진행되다가 사라질지, 더 치명적으로 인류를 위협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스페인 독감의 정체를 밝힌 병리학자 제프리 토벤버그(Jeffery Taubenberger)의 말처럼 “인간은 문명으로 자연을 지배했다고 믿지만 그 힘을 숨기고 있는 무서운 테러리스트인 자연에 대해 무척 미약하고 무력하다.”는 점을 확인했을 뿐이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21C 생명과학기술이 “신의 영역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자랑했는데 아직도 그 원인을 찾아내거나 백신조차도 만들지 못하며 수세적으로 대응하기에 급급하다.

 

지난달 20일 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손소독제를 바르고 있다. 전북일보 자료사진
지난달 20일 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손소독제를 바르고 있다. 전북일보 자료사진

△코로나 이전의 학교풍경 기억에 담을 수 있을까

지난 5월 13일 전북의 학생들도 고3이 처음 오프라인으로 등교하고 6월 1일 중1, 초5∼6학년이 등교하면서 겉으로는 코로나19 이전의 오프라인 학교로 돌아왔다. 그러나 등교 후 학교의 풍경은 이전과 분명 다르다. 어떤 측면으로는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관찰하면 제한된 공간에서 일정한 규칙을 지키고 생활하는 죄수마냥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검열과 통제를 반복하는 듯하다.

코로나19가 오기 전인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학생들은 학교에 오면 교사와 친구와의 만남이 먼저였지만 이제는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줄을 서서 중앙 현관마다 설치된 적외선 열화상카메라 앞에 발을 딛고 사뭇 긴장된 자세로 발열체크에 주의한다. 학교 복도나 화장실, 교실 뒤편의 게시판이나 화이트보드 한 쪽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홍보하는 포스터가 붙어있고 학생이 주도하는 수업으로 모둠활동을 위한 ‘디귿자’ 모양의 자리배치는 기억도 나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일정하게 거리를 둔 책상이 일렬로 나란히 줄을 세워 놓여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안경을 낀 학생은 복도든 운동장이든 근접거리가 아니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어렵다. 수업에서 학생들의 얼굴에 비춰지던 다양한 표정들과 눈빛으로 이어지던 암묵적인 소통은 오래 된 고목처럼 말라 비틀어져버렸다. 지난 수년 동안 ‘공감교육으로’ 추구했던 협업적 학생 활동에 대한 기억들도 점차 흐릿흐릿해진다.

가장 크게 바뀐 것은 급식문화이다. 학생들은 투명한 칸막이를 세워놓고 대각선으로 앉거나 혹은 마주보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시간에 재잘거림도 사라졌다. 식판에 밥과 반찬을 담고 투명한 칸막이를 경계로 자리에 앉아 투명한 칸막이를 식사하고 자리를 뜨는데 익숙하다.

전주시내 A고교에 재학 중인 고3인 김정현 학생(가명)의 지적은, 코로나19로 인한 우울한 학교풍경을 그대로 드러낸다. “수업이 달라졌어요.” “그 동안에는 선생님이 수업을 주도하든 우리끼리 활동하든 서로 간에 눈을 마주치고 말을 나누며 간간히 웃음을 나누었는데 모두 마스크를 끼고, 선생님의 강의 이외에는 거의 말하는 학생이 없으니 어색해요.” “겉으로는 평온한 교실처럼 보이지만 선생님이든 친구든 소외된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이처럼 마스크가 지배하는 교실은 수업마저 잠식했다.

교육청이나 교육을 혁신하겠다는 교사들이 약방의 감초처럼 외치던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학생들이 꼭 길러야 할 역량으로 4C인 ‘협력’, ‘소통’, ‘비판적 사고’, ‘창의력’ 등을 역설하던 모습도 추억이 된 것처럼 보인다. 동아리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근접한 거리에서 프로젝트를 해결하기 위해 토론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기에는 교사도 학생도 부담스럽다. 학생들의 왁자지껄하던 소리로 가득 차던 학교는 사뭇 작아졌다.

교사들도 비슷한 느낌을 털어놓는다. 익산의 B중학교에 근무하는 박소영(가명) 수학교사에 따르면 “교실이 어두워졌다고 해야 하나요...” “특히 수학과목에는 더딘 아이들이 많은데 사춘기인데 활동하지 못해 안달하던 아이들이 많았는데 기운이 다 빠진 것처럼 처져 있거나 멍해진 표정으로 앉아있는 아이들이 늘었어요.” “수업을 하면서도 아이들이 칠판을 바라보지만 표정이 읽히지 않아, 실제로 학습이 이루어지는지를 판단하기도 매우 어려워요.”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작년까지 몇 해 동안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에 가까운 아이들의 흥미를 깨우려고 수학 도구를 활용한 활동수업을 의욕적으로 해왔는데 꿈도 꾸지 못하니 익숙한 길에서 벗어난 듯 혼란스러워요” “언제 코로나19가 끝날지는 모르지만 이전처럼 수업에서 아이들의 활동수업을 보고 참견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무서운 표정을 짓거나, 웃기도 하며 지내고 싶은데 그런 날이 올까 걱정되기도 해요.”

 

△포스트 코로나, 학생들이 더 행복한 학교로 나아갈 수 있어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학교에서의 교사와 학생의 혼란과 어색함은 결코 절망과 퇴보의 지름길은 아니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키워 더 역량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기회일 수 있다.

흑사병은 유럽인을 1/3이나 몰살했지만 아시아보다 가난했던 유럽을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와 혁신의 공간으로 이끌었다. 흑사병은 잠복기를 거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특히 지배의 한 축이었던 가톨릭 신부들을 무수하게 죽게 했지만 역사는 이방인처럼 그리고 가끔은 헤겔이 ‘절대정신’이 그 스스로를 감춰서 우연인 것처럼 인간의 삶에 간섭한다고 말하듯이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즉 흑사병은 인류를 파멸시키기 보다는 인류의 역사를 전진시켰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코로나 19가 가져온 교육적 위기도 그에 머물지 않았다. 2012년에 시작했지만 지지부진했던 ‘스마트 교육(Smart Education)’과 그 업그레이드 버전인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인공지능’, ‘빅 데이터’, ‘클라우드’ 등의 디지털 기술을 교육에 결합한 에듀테크(Edu-Tech)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크게 높였고,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과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을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교육부나 교육청, 교육학자들은 지금도 코로나19 이후의 교육에 대한 담론을 백화제방(百花齊放)마냥 쏟아내며 교육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모색하는 중이다. 물론 우리는 지금과 다른 그 어떤 새로운 형태의 교육과 학교가 아이들의 미래를 행복하게 해줄지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새로운 교육의 흐름이 학생들에게 실제의 학습이 더욱 일어나게 하고 그들에게 행복한 학교로 성장한다면 코로나19로 인한 학교의 풍경을 꼭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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