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아이는 학교의 상징이 되었다. 어떤 교사도 경험하겠지만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수업 시간마다 잠자는 학생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수도 만만치 않다.
각 반마다 한 명에서 여러 명이고 교과에 따라 다르다. 그 수는 학생들이 부정적 기억으로 기피하는 과목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가령 수학 같은 과목에서는 어떤 반은 절반 가까이 자기도 한다. 전주의 A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김수진(가명) 수학교사는 “수포자라는 말이 있듯이 수학 학습을 전혀 하지 않는 학생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과거에도 이런 학생들은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늘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2학년에서 충분하게 학습했어야 할 기본 개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교육해야 하는지 난감합니다.” “높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수학적 기본 개념 정도는 이전 교육과정에서 해결해주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말한다. 학생들이 수업 중에 자는 것은 그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어찌 되었든지 수면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면이 꼭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저녁 내내 게임 등 다른 놀이를 하는 것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수업 할 때만 자고 휴식 시간이나 점심 시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교실과 운동장을 날라 다니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렇게 보면 교육계 일각에서 말하듯이 수업 시간에 잠자는 학생을 절대적인 수면 부족 탓으로 돌릴 수만 없다.
도대체 학생들은 왜 그렇게 잠을 자는 것일까? 아인슈타인형 학생이 아닌데도 10시간 이상을 잔 학생들도 교실에서 수업만 시작하면 잘까? 그렇다고 모든 학생에게 6시간 정도만 잠을 자도 충분한 나폴레옹형 학생이어야 된다는 것이 아니다. 학생 중에는 10시간 이상의 수면을 해야만 하는 아인슈타인형 학생도 있지만 수면 과학은 학생 각자의 수면 주기는 다르고, 성인에 비해 통상 1-2시간 정도 수면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하며, 그것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몇 년 전에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아침 등교 시간을 9시로 하자고 했고 0교시 수업을 없앴다. 전북교육청을 비롯해 다수의 교육청은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아침 등교 시간이 9시에 맞춰지지는 않았지만 0교시 수업을 하는 학교는 없다. 전주 B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직 경력이 30년에 가까운 이국모(가명) 국어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교사 초임 시절에 심화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침 7시 30분부터 수업을 했었는데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0교시 수업을 폐지한 것은 무척 잘한 일이다.” “정규수업에 악영향이 있었고 그 때도 자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회고한다. 잠자는 학생 중에 일부는 절대적 수면시간이 부족하다고 볼 수 없는 경우라면 교사들이 교수학습에서 고민해야 할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교육청이나 교사단체는 잠자는 아이들에 대해 진단과 처방을 ‘과도한 경쟁에 따른 수면 부족’으로만 몰아가는 경향이 있거나 학부모는 ‘교사의 교수학습기법의 부족’으로만 치우쳐 학교를 믿을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잠자는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없다. 내 말은 한국교육에서 잠을 자는 현상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는 것이다.
교육적으로 잠자는 아이의 원인을 고찰하고 학습효과를 고민하려면 수면의 양과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수긍해야 한다. 수면은 뇌의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 뇌의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모든 영역은 잠을 잘 때 가장 잘 발달한다. 특히 초·중·고 시기의 뇌는 매우 빠르게 발달하며 고등사고력의 중추인 전두엽도 급속도로 발달하는 시기이다. 이 때문에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높이려면 적절한 수면은 더욱 중요하다. 뇌는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쓰는데 잠잘 때 가장 활동적이며 소비량이 많다. 그 까닭은 깨어 있을 때에 받아들인 여러 정보를 우선 보관해두었다가 휴식할 때에 본격적으로 처리하여 기억한다. 그러니 잠을 자면 뇌가 활동을 쉬거나 멈춘다는 속설은 거짓이다. 지금 교육에서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역량인 창의력도 잠잘 때 쑥쑥 자란다. 뇌에서 신경망이 밀집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는 휴식할 때에 비로소 적극적으로 활성화된다.
수면은 알다시피 비램 수면과 램 수면이 있는데 두 단계 모두가 중요하다. 수면이 부족하면 외부의 정보는 없어지거나 뒤죽박죽 상태에서 뇌의 한 편에 있다가 묵시적인 기억으로 남게 된다. 다시 말하면 지식에서 명시지가 아닌 암묵지의 영역이 되기 때문에 기억을 인출하여 과제를 해결할 때에 어려움을 겪는다. 더구나 램 수면만이 유의미하지는 않다. 흔히 숙면 단계라고 하는 비램 수면도 중요하다. 국어, 영어, 사회, 수학 등 언어정보는 깊은 잠인 비램 수면 단계에서, 감정이 실린 기억은 램 수면 단계에서, 음성 기억은 수면의 모든 단계에서 대부분 기억된다. 이 때문에 어떤 학생이든 공부를 많이 해도 수면의 양과 질이 좋아야만 그 학습량을 온전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면 뇌는 왜 수면시간에 낮보다도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을 할까? 뇌가 한꺼번에 정보를 처리하기에는 용량이 부족해서이다. 즉 삶에 필요한 에너지의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즉 수면시간에) 버려야 정보와 기억해야 할 정보를 체계적으로 구분하고 기억해야 할 정보만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한다. 이처럼 뇌는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한다.
뇌는 어떤 정보를 수용하려고 할까? 뇌 과학에 따르면 이미 장기기억에 저장된 정보와 그 유형이 비슷한 정보를 수용하려고만 하지 전혀 무관한 정보를 기피한다. 그러니 학습의 누적적 결손이 상위 학교급으로 갈수록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가를 알 수 있다. 또한 교육청이나 교사단체가 기계적으로 말하듯이 수면시간의 부족만이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저하시키지는 않는다. 이미 지식이 부족한 학생들은 충분하게 수면을 자도, 게임이나 기타 휴대폰 등에 익숙한 학생들은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고 수면시간을 줄여서 학습하려고 해도 쉽게 학업성취도를 올리지 못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잠자는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학생의 수면의 양적 부족만 가지고 탓을 돌리는 일은 이치에 맞지않다. 수면의 질, 학생이 이미 장기기억에 저장된 배경지식의 유형 및 정도, 편도체가 관여하는 배경지식과 관련된 학생의 정서 기억, 그와 관련된 교사의 교수법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교육청이나 교사단체가 잠자는 아이들에 대해 “입시와 관련해 수면이 부족하다”고 단순하게 처방하고 일반화하는 일은 형식에 불과하지 진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대책이 아니다. 전주의 C중학교의 영어교사인 정미선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교사들도 잠자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수업의욕이 꺽입니다.” “매일 아이들과 만나는데 수업을 학생들에게 의미있게 하고 싶고 학생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기대하지만 교실의 모습은 많이 다릅니다.” “잠자는 아이들을 깨워보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학생들의 반응이 신경질적인 학생도 있고 깨워도 자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교사들끼리는 “도대체 왜 이렇게 자는 학생이 늘어나는가?”라고 자조적으로 말합니다.”
교사이자 시민기자의 입장에서 교육청이 ‘단 한 명의 아이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교육’을 하겠다면 잠자는 아이들에 대한 실효적인 대책을 기대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 답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는 의문스럽다. 그동안의 교육정책을 보면 오히려 잠자는 아이들을 늘리고 있다. /박제원 전주 완산고 교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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