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젊은 작가들의 전시 오픈에 가면 비판적인 발언을 많이 했다. 가능성이 많은 작가일수록 비판의 강도는 더 세졌다. 작가를 따로 만나 작품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드물고, 가장 조명을 받고 있는 그 순간에 가장 비판적인 문제를 짚는 것이 또 하나의 계기를 만든다는 생각이었다. 적당히 칭찬하고 적당히 포장하는 것은 결국 그 작가를 둔하게, 나락에 빠지게 한다. 작가는 예리하게 문제의식을 갖고 작품성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에 따라서는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또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방향성이 전혀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막연히 좋아서 하는 예술은 없다. 그저 사람들 보기에 좋은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어느 전시장에서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불교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라는 말이 있다. 진리의 길을 가려면 그런 것처럼, 젊은 작가들이 작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스승도 죽이고 선배를 죽일 수 있어야 한다.’ 좀 무시무시하게 들릴지 몰라도 철저하게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죽일 수 있어야 하다. 그리고 죽인다는 것이 스승을 무시하고 선배를 배반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진정으로 죽일 수 있는 자가 스승과 선배를 계승하는 자이고 인정을 받는 자가 된다. 자신의 문제의식 자체를 모르면서 무조건 스승과 선배를 무시하는 것은 자살이 된다. 예술계의 창의력은 권력 투쟁과 같은 진흙탕 싸움이 아니라 예술적 기개를 번쩍이며 진검승부가 되어야 한다.
스승에게 진리를 물었다가 한번에 20대씩 3번에 걸쳐 60대를 얻어맞은 임제 선사는 후일 크게 깨닫고 스승 황벽의 뒤를 이어 크게 종풍을 떨쳤다. 한국의 조계종 역시 임제의 선풍을 숭상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황벽과 같은 방망이도 없고 주먹의 힘도 약하다. 전시장에 나가 쓴소리를 할 작가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좀처럼 화단에 나가지 않게 된다.
요즘처럼 무엇이건 상품화되는 시대에는 예술도 고급 상품의 일종이 되는 모양이다. 뜻이 있는 작가들은 예술의 상업적 도구화를 거부한다. 마치 팔리기 위해 치장하고 나가는 상품처럼 껍데기만 그럴듯해 보이는 가짜들…. 나는 구식인지 몰라도 진짜가 좋다. 거칠고 서툴러도 좋다. 진정으로 예술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맘에 들지 않으면 부수고 다시 만들고…, 하다보면 새로운 길이 나타나고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작가들, 그들을 축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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