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여성은 많지 않다. 신분제도가 존재했던 사회에서 여성은 자신의 이름을 남길 생각도, 기회도 갖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대의 여성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까? 비록 그것이 작고 하찮은 것일지라도 온 힘을 다 바쳐 해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만권당 소녀》는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것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자 주인공들의 이야기이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노비 국이, 사건을 해결하는 다모 이설, 전기수가 되고 싶은 상희, 그리고 4.3을 겪고 여자 해병대에 지원한 성옥이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사는 시대는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 1950년대로 각기 다르지만 당차게 앞날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은 한결같다.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 연경에 세운 독서당에서 찻잔을 나르고 부엌일을 하는 국이는 더 많은 걸 듣고, 보고, 그리고 싶다. 만권당에 온 손님들이 궁금해 귀퉁이가 깨진 벼루와 쓰다 버린 종이에 그들을 그린다. 국이는 인물의 특징을 잡아내는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법으로 생생한 표정을 담아낸다.
이런 그림은 처음이라는 늙은 학자에게 국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누구의 간섭도 없이 그리고 싶었습니다. 화첩에 있는 그림을 흉내 낸 그림은 더더욱 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눅 들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국이. 두려움 없이 새로운 길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당당하다.
성원나리는 심부름이나 하는 계집아이가 자신들의 얼굴을 함부로 그리고 있다는 것에 화를 낸다. 하지만 대감마님은 오히려 성원나리를 야단친다.
“저 아이의 그림이 호기심일 수도 있어. 그저 놀이라고 해도 저 아이에게 그림은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일세. 자네가 저 아이를 편협한 눈으로 본다면 제대로 된 인재를 그 눈으로 어찌 찾을 수 있겠는가?”
인재를 키워 원나라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으로 세운 만권당, 열려 있어야 인재가 모인다는 깊은 속내를 그림에 대한 앎을 갈구하는 국이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통해 드러낸 점도 인상 깊었다.
여성이라는, 천민이라는 굴레와 한계 속에서 그들이 넘어야 했던 산은 높고 깊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림 그린 게 대수여요?” “세상에 천한 목숨은 없어요.” “왜 여자는 안 된다는 거야?”라고 소리치며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꿈을 향한 의지를 불태웠다.
오늘, 여기에서 힘겨운 현실을 만났다면 벽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들을 만나보자.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열 살 사기열전을 만나다』 등이 있다.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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