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도 이젠 하순을 향해 달린다. 이맘때 봄기운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여정으로는 단연 금강변을 빼놓을 수 없다. 금강 상류에 위치한 익산시 성당면 성당리 성당포구. 황룡산 자락을 굽이치며 산골의 봄 향기를 강물에 실어나른다.
강가에 기대어 사는 이곳 사람들은 요즘 금강이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는 시기라며 자랑이다. 금강에 실린 매화 향훈은 황룡산의 겨울잠을 깨우는 화신에 다름없다. 훈풍은 들녘을 넘어 마을 골골에 봄소식을 알린다. 들녘에 뻗은 봄기지개가 무르익어든다. 겨우내 품어온 달달한 자양분을 한꺼번에 토해내며 대자연의 봄 잔치가 시작되고 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사로잡는 벽화가 조상들의 얼을 느끼게 한다. 조선시대 곡식을 실어나르던 조운선과 철썩거리는 파도가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여기저기 흩어진 쪽배도 만선을 표시하며 여심을 기다리게 한다.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웅장한 은행나무가 일상에 지친 마음을 쉬게한다. 인파로 북적대는 해수욕장의 길게 늘어선 줄도 시끄러움도 없다.
느긋하게 한숨 쉬었다 가면 그만이다. 조선시대 대동청이 자리했던 이 성당포구는 역사가 살아숨쉬는 유서깊은 마을이다. 조선시대 당시 이곳은 행정과 상업, 문화의 중심지였기에 옛 풍류를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다. 케케묵은 나무로 엮어간 조운선 쪽배는 교통수단이 전무했던 당시 곡식을 실어나르던 배다.
경상도와 전라도 남부 지방의 세곡을 이 조운선에 담아 한강 하류 서강으로 운반한 후 경창에 납곡을 했다고 전해진다. 마을 어귀를 돌아 눈에 띄는 웅장한 나무가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지난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숱한 세월을 묻어나게 한다.
높이 20m, 나무둘레 또한 5.5m인 이 느티나무는 웅장하기 그지없다. 백제시대 황산벌 싸움에서 도승 한분이 부상을 입고 이곳에 머물면서 요양시설로 식재된 귀목이다. 이조 17대왕 효종임금이 천하를 거느리던 당시 호가 '은성당'인 안세승씨가 서당골로 칭해 지금도 당산제가 이어지고 있다.
마을 동산을 돌아 발길을 가로막는 은행나무. 한평생 마을을 지켜온 이 은행나무는 전북도 기념물 제109호로 지정돼있다. 조선시대 현종3년(1662년) 성당창이 설립되면서 조운선의 무사한 항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나무다.
성당포구의 또하나의 자랑거리는 고란초 군락지다. 금강변 500m의 주변 6600㎡ 곳곳에 즐비한 수만여 포기의 고란초는 여행의 운치를 더해준다. 3m 높이의 절벽을 삼킨 고란초의 풍광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함라산 줄기의 임해사터 차밭 또한 찾는 이들의 마음을 송두리채 빼앗는다. 이 차밭은 3300㎡의 부지에 총 1만그루의 차나무가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1년생에서 길게는 30년생들이다.
한번 다녀온 사람들이 주저없이 추천하는 이곳은 익산 시내에서 30분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익산역에서 함열읍을 가로지르는 국도 23호선을 따라가다 황등 소재지를 거쳐 군산 서수 방향으로 달리면 된다.
함라 방향을 달리다 좌측으로 보이는 함라산을 지나 웅포 베어리버 골프장을 거쳐 용안면을 향해가면 금강변에 다다른다.
지리에 밝지 못한 외지인들은 익산시내에서 황등을 거쳐 함열읍 소재지에 다다라 용안면으로 줄곧 달리면 성당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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