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헤이리나 갈래요?"
"헤이리요?"
"첫 눈 오고 그러면 거기가 제일 예쁘지 않나? 가본지도 오래됐는데…."
"어, 그럽시다. 뭐."
인기가 지붕을 뚫고도 남을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첫 눈 오는 날, 약속이 깨진 '황정음'과 '이지훈'은 '약속 까인 기념'으로 헤이리에 간다.
2009년 12월 25일. 눈 오는 크리스마스다.
취재를 핑계 삼아 '윤쌤'과 눈 오는 날 가장 예쁘다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예술마을 헤이리'를 찾았다. 문화콘텐츠팀 기자로 전주 한옥마을을 출입처 삼아 들락날락거렸지만, 한옥마을이 전통 한방차 이미지라면 헤이리는 세련된 커피 같은 느낌. 서울 사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라니 더욱 끌린다.
전주에서 출발할 때 내리던 비는 파주에 도착할 때쯤 눈으로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파주에 가까워질 수록 전주와는 다른 정서를 느끼게 된다. '변화와 경쟁의 파주' '파주는 경제다!' 등 슬로건 부터가 '5000만 마음의 고향 전라북도'와는 다르다.
어쨌든, 눈 내리는 헤이리.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네비게이션이 안내한 주차장 입구는 한산하다 못해 썰렁했다. 궂은 날씨때문인가….
헤이리에서의 첫 발견은 생각하지도 못한 보도블럭이었다. 평범한 보도블럭 중간 중간 '인연' '숲' '한순간'이라는 글씨가 찍혀있는 보도블럭이 박혀있었다. 똑같은 일상 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하던 행복을 만나는 듯 하다. 안규철 시인이 시집에서 발췌한 60개의 단어를 마을 곳곳 보도블록에 섞어놓았다고 한다.
두번째 발견을 찾아 마을을 걷다 세라믹카페 '규원'을 만났다. 한 쪽 벽면에는 역기를 들고 있는 사람 형상을 한 도자인형들이 빼곡히 붙어있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장미란이 역기를 들고 있다. 벽에 붙어있는 '역기 든 사람'을 떼었다 붙이는 데 재미 붙인 사람들은 간혹 장미란 포즈를 흉내내기도 한다. 지나가는 바람에 입구에 걸려있던 도자 풍경이 흔들리며 소리를 낸다.
해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거리. 첫번째, 두번째… 헤이리는 하나하나가 발견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우리가 종합안내매표소에서 꽤 먼 곳에 주차해 놨음을 깨닫게 됐다. 마을 깊숙이 들어갈 수록 사람들은 많았으며, 길 양쪽은 차를 끌고 들어온 사람들로 인해 이미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쉽게 차를 버릴 수 없는 현대인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차를 피해다니며 헤이리를 걷는다. (우리가 주차한 곳은 8번 입구. 종합안내매표소는 3번 또는 4번 게이트로 들어오는 것이 가장 가깝다.)
헤이리에는 이미 유명해진 공간들이 많았다.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의 주거 및 집필공간이 있고 문학에 대한 담소도 나눌 수 있는 사랑방이 있는 '역사사랑방', 영화감독 강우석씨가 영화발전을 위해 서울액션스쿨에 기증해 스턴트맨을 육성하고 있는 '마샬아트센터', 가수 윤도현이 살고 있는 '타잔&제인', 소설가 고 정한숙 선생을 기리기 위한 '정한숙 기념관', 들어가는 입구에서 고은 선생의 글귀를 만날 수 있는 책 중심 복합문화공간 '한길 북하우스', 한국 근·현대 100년의 생활사를 조명한 '한국근대사박물관' 등이다.
집주인이 소장한 4000여 권의 책들로 온통 둘러싸인 헌책방 겸 카페 '북카페 반디', 500여점의 옹기가 전시돼 있으며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헤이리를 전망할 수 있는 '한향림갤러리', 아나운서 출신 황인용씨가 운영하는 음악홀 '카메라타 음악감상실' 등은 사색하면 좋을 조용한 분위기다.
사물을 360도 돌려볼 수 있는 3D VR 사진제작을 체험할 수 있는 '더미스튜디오', 34년 전통을 가진 어린이완구업체 한립토이즈가 장난감을 테마로 만든 '한립토이뮤지엄', 가족과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된 체험교육장 '더스텝', 테디베어를 테마로 한 아트갤러리 '랜드마크하우스', 영화 관련 자료들이 전시된 박물관 '씨네팰리스', 쌈지가 탄생시킨 캐릭터 딸기를 테마로 한 '딸기가 좋아', 장난감(Toy)과 영화(Kino)라는 말이 합쳐진 데서 알 수 있는 '토이키노' 등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 공간도 많다.
갤러리 카페도 많지만, 크리스마스에 빈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겨울동안 잠깐 문을 닫은 곳도 있었다.
헤이리에 동행한 '윤쌤'의 친구 '땡칠이'는 "데이트 코스에 넣어야 겠다"며 흡족해 했다. 군산이 고향이지만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서울 사람들은 헤이리에 오면 공기부터가 다르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 온 연인들이 꽤 많아보였다. 숨가쁜 도시인들에게 헤이리는 숨고르기가 가능한 공간. 물론, 도시 곳곳에 느림과 여유가 배어있는 전주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공간이기는 하다.
하지만 꽤 넓은 헤이리를 제대로 즐기려면 계획부터 세워야 한다. 홈페이지(www.heyri.net, 문의전화 1588-7387)가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는 만큼, 홈페이지를 통해 가보고 싶은 공간들을 중심으로 먼저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공간이 유료라는 것. 형식적으로 1000원을 받는 곳도 있지만, 전시·박물관의 경우 어른의 경우 3000∼5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은 1만5000원∼2만원 정도를 따로 내야 한다. 볼거리가 많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입장권과 식사권 등을 묶어서 할인판매하는 '헤이리패키지'도 유용하다. 전기자동차를 타고 헤이리를 돌며 설명까지 들을 수 있는 '헤이리투어'를 비롯해 자전거와 유아용 트레일러도 유료로 대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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