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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여행] 여수 오동도·향일암·만성리 해수욕장

생기 재충전! 추억 담아오기

수없이 죽었다. 데드라인(deadline). 선을 넘으면 죽는…. 죽어야 사는 남자. 그게 나다.

 

떠나기 전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휴가 기간만이라도 '육하원칙'의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목적지는 여수. 두 번인가, 세 번인가 갔던 곳. 오동도 동백꽃 말고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곳. 그래서 더 편했는지도 모른다. 아주 낯설지 않으면서,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 남아 있는 곳.

 

지난 7월 어느날 새벽, 친구 Y와 전주역에서 여수행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머리는 못 감고, 고양이 세수만 겨우 했다. 매일 걸치던 양복은 옷장에 처박아 두고, '낭인' 시절 즐겨 입던 반바지와 남방셔츠, 운동화 차림으로 나섰다.

 

(위)항일암 일출, 오동도 유람선 선착장 ([email protected])

 

친구 Y와 기차 안에서 두서없이 수다를 피우다가, 창 밖 풍경을 감상하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사이다와 김밥을 모두 먹으니 어느새 여수역에 도착했다.

 

새로 지은 역사는 깨끗했다. 전라선의 종착역인 여수역은 '전라선 복선 전철화 사업'에 맞춰 지난해 12월 23일 기존 위치에서 북쪽으로 역사를 옮겼다.

 

우리는 역사에서 나오자마자 '파블로프의 개'처럼 여수의 상징 오동도로 향했다. 오동도까지 가는 길 내내 양쪽에 길게 늘어선 '2012 여수세계박람회' 홍보 패널(panel)과 넓고, 잘 닦인 도로를 보면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떠올랐다. 뽕나무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된…. 군대 제대 후 친구 Y와 함께 걸었던 낡고, 좁았던 길이 10년 만에 이른바 '성형 미인'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오동도는 변함없었다. 트레이드마크인 동백 3000여 그루를 비롯해 시누대(green bamboo·장죽을 만드는 대), 후박나무, 해송 등으로 둘러싸인 '숲 터널식 산책로'를 걸으며, 우리도 실컷 '광합성'을 했다.

 

오동도는 오동나무가 많아 오동도라 불렸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오동도엔 오동나무가 없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이치일까.

 

고려 공민왕 때 요승 신돈이 봉황이 오동나무 열매를 먹으려고 오동도에 드나드는 것은 왕조에 불길한 징조라고 주장, 섬의 오동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렸다는 설이 더 그럴 듯해 보인다.

 

오동도 입구 관광안내소에서 얻은 '여수 관광 지도'를 보고, 즉흥적으로 다음 장소를 골랐다. 만성리해수욕장. 가끔은 '감'(感)이 우리를 배신하기도 한다.

 

'해변에 깔린 검은 모래는 원적외선 방사율이 높아 모세혈관을 확장시켜 혈액 순환을 돕고, 땀과 몸 속 노폐물의 배출을 촉진시켜 준다. 매년 음력 4월 20일이면 검은 모래가 눈을 뜬다 하여, 이날 이후로 찜질의 효과를 얻으려는 사람들로 해변이 마치 여름 해수욕장을 방불케 한다. 만성리해수욕장에서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절경을 바라보며 한가로운 모래 찜질을 즐겨 보는 것도 색다른 여행의 즐거움이 될 듯 하다'는 여수시 관광 정보 누리집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기엔 '거품'이 있는 듯하다. 당시 해변엔 우리 둘뿐이었다.

 

'구세주'는 있었다. 해수욕장에 갈 때 탔던 택시 기사는 우리에게 향일암을 추천했다. '더는 악수를 두지 말자'는 나와 '이왕 온 김에 속는 셈 치고 한번 가보자'는 친구 Y의 승강이의 최종 승자는 Y였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여수 시내에서 향일암 가는 버스를 한참을 기다린 뒤 잡아 탔다. 반신반의하면서 간 향일암은 이날의 하이라이트, 아니 34년 살면서 손에 꼽을 만한 벅찬 감동을 줬다.

 

향일암에서 바라본 탁 트인 수평선은 그동안 단편적인 팩트(fact)에 얽매여 큰 숲(진실)은 보지 못했던 나를 잠시나마 되돌아보게 해줬다.

 

향일암 누리집을 보면, 향일암(向日庵)은 '해를 바라본다'고 해서 붙여진 사찰 이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해를 머금은 사찰이다. 해를 바라보는 것은 중생들의 마음일 뿐, 부처님이 상주하는 도량은 해를 품안으로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된 향일암은 지난해 12월 20일 화재로 대웅전과 종무실, 종각 등 건물 3동이 모두 불탔다.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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