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도시화 된 생활에 대한 몸부림 마냥 전국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마을길을 소개하며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그야말로 걷는 일이 '제일 잘 나가는' 트렌드다. 걷기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 직립보행 동물인 사람이 본연의 생태를 원활히 할 수 있기도 하지만,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생활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불러온다.
△ 독립을 향한 마음과 설움을 품은 구슬픈 길, 김제 원평길
도시인들의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달래주기에 전라북도의 길만한 곳이 또 있을까. 전북도 블로그 단이 운영하는 블로그 '전북의 재발견(blog.jb.go.kr)이 소개하는 곳은 '아름다운 순례길'로 잘 알려진 김제 원평~수류성당(이하 김제 원평길)까지 왕복 15km가 되는 길이다. 이 길은 전라북도의 유교, 불교, 원불교, 개신교, 천주교, 민족종교가 함께 손을 잡고 분열과 갈등을 뛰어넘어 하나 되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느리고 바르고 기쁘게'라는 의미를 담은 달팽이 '느바기'로도 불린다.
김제 원평은 증산도,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가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는 특색을 지닌 곳이다. 마치 아름다운 순례길이 담고 있는 대화와 소통의 해방구처럼. '예향천리 마실길'로도 불리는 이 길의 코스는, 원평장터-구미마을-이종희 장군 생가-학수재 위령각-화율초등학교-수류성당으로 이어진다.
△ 김제 최초 3·1 만세 운동이 울려 퍼진 원평장터
많은 사람들이 원평장터를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전북에서 세 번째로 큰 장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원평장터는 지도자들의 실질적인 활동 근거지로 물자 조달이 이뤄졌던 곳이고, 김제 최초로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던 3·1 만세 운동 역사의 현장이기도하다. 장터 옆에는 항일독립군 이종희 장군의 생가가 복원돼 있다. 이종희 장군은 원평 청년지하운동과 조선의열단에 가담해 항일운동을 했고, 광복군에서도 지대장으로 크게 활약한 인물이다.
△ 동학농민군들의 원혼이 깃든 구미마을
원평장터를 지나면 구미마을이다. 동학의 정기가 서려있는 이곳은 전봉준 장군이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한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삼례로 갔다가 다시 후퇴할 당시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에서 농민군들은 일본군의 기습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구미마을 뒷산에는 동학농민군들의 묘역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이름이 남겨지지 않은 희생자들이다. 당시 학살당한 사람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지금도 땅을 파면 유골이 발견될 정도다.
△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져 더욱 값진 학수재 위령각
구미마을을 지나 만난 학수재는 동학농민혁명의 주역이었던 금산면 출신의 김덕명과 항일독립군 이종희, 기미독립만세운동 애국지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위령각을 세운 곳이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이들을 위해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위령제를 지내는 일은 전국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 '보리울의 여름' 촬영지 화율초교
버스를 타고 화율초등학교 앞에서 내린다. 1908년에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온 신도들이 설립해 초창기에는 수녀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이곳은 영화 '보리울의 여름'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이 날 김제 원평길 안내를 맡은 김제 동초교 송승용 교사는 영화에서처럼 이곳에서 젊은 시절의 열정을 쏟아낸 주인공이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폐교 직전이었던 분교가 본교로 환원될 수 있었다.
△ 세속의 짐 내려놓고 가는 수류성당
1889년에 설립되었으니 올해 123년을 맞는 수류성당. 천주교 박해를 피해 화율리에 숨어든 신자들이 모여 미사를 드리던 곳이 수류성당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시원하게 도로가 나있지만 예전에는 면소재지까지 10km이상을 걸어 나와야 하는 오지였다고 한다.
'무거운 짐 진 자여, 다 내게로 오라'는 성구를 읊조리는 듯 예수가 팔을 벌리며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성당내부로 들어서니, 그 옛날 숨죽이며 미사를 드렸을 신자들의 가냘픈 기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여행의 마지막 지점이기도 하지만, 성당의 고요함을 더 즐기려는 듯 회원들이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지나간 역사를 알고 나니 되돌아오는 길이 새롭게 느껴졌다. 길 위에 아지랑이가 분노와 설움 품은 구슬픈 가락마냥 피어오르고 있었다. 봄은 또 다시 오고 이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슬픈 가락을 흥얼거리며 여전히 농사준비로 분주한 봄을 보낼 것이다. 그 땅위에서 행복과 평안을 누리고 있는 지금, 과거 선열들의 숭고한 뜻과 희생을 마음과 정신에 새기며 사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세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김제 원평길을 걸으며 오래토록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뜨거운 마음을 담아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 김병희 씨는 2001년부터 4년동안 아이군산 취재로 활동했으며 현재 한기장복지재단 부안종합사회복지관에서 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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