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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모나리자의 스캔들 2

모나리자를 훔친 빈센조 페루치아
모나리자를 훔친 빈센조 페루치아

위험 부담이 많은 진짜 모나리자를 간직할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다.

1911년 8월 21일, 루브르박물관에 그림을 그리러 들어갔던 젊은 화가 루이베르에 의하여 모나리자의 실종이 처음 이뤄진 후 프랑스 경찰에 의하여 국경과 항만이 봉쇄되었고 전 세계의 신문은 이 사건을 연일 대서특필하였다.

도저히 분실될 수 없는 장소에서 없어진 이 그림은 프랑스 사람들에 의해 정치적 농간이라는 추측이 높아만 갔다. 그 당시 다른 미술품 도난 사건으로 구속되어져 있던 세기의 시인 아폴리네르를 진범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는 어느 기자가 특종을 터뜨리기 위하여 그림을 훔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르 마탱’이라는 신문은 ‘초능력을 써서라도 모나리자를 찾는데 도움을 주는 심리학자에게 5000프랑(당시 시가)을 지불하겠다’고 밝혀, 모나리자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무당이나 점쟁이 혹은 점성술가들 까지도 수사에 동원되는 촌극을 빚었다.

온갖 조롱과 빈정거림 속에서 루브르박물관의 학예실장이 해임되고 일부 직원들도 징계를 당했다. 그로부터 2년 4개월 후인 1913년 12월, 전에 루브르박물관에서 액자 수리공으로 일한 적이 있는 이탈리아인 빈센조 페루치아를 피렌체에서 체포함으로서 사건은 일단락 지어졌다.

철저하게 에두와르도의 하수인이었던 빈센조는 체포된 후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허영심이나 공명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끝내 에드와르도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이탈리아 사람의 명작이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껴 나폴레옹이 약탈한 모나리자를 되돌아오게 한 것뿐이다” 또는 “모나리자와 사랑에 빠져 그녀의 미소로부터 떨어지면 미칠 것 같았다”고 말하여 이를 주제로 많은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졌는가 하면 모나리자가 하룻밤 묵었던 여관의 이름이 ‘라 조콘다’라고 고쳐졌으며 빈센조가 모나리자를 가져 온 것이 아니라 모나리자가 조국의 산하를 보고 싶어 빈센조를 데리고 왔다라는 등의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몰랐고 에드와르도는 그럴만한 사람을 제대로 골랐던 것이다. 원래 모나리자의 작가인 다 빈치에 의하여 프랑수아 1세에게 팔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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