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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의 미술이야기] 그림값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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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 '환희'. /사진=이승우 작가 제공

피카소는 이런 말을 했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큰돈을 날마다 가져온다." 화상 칸바일러와 볼라르를 향해서 하는 말이다.

떡을 만지니 떡고물이 안 묻을 수 없는 이들도 많은 돈을 벌었다. 이중 볼라르는 가난한 화가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을 했다고 한다.

될성부른 가난한 화가에게 최저 생활비를 주고 생활비를 지급하는 동안에 가난한 화가가 그린 그림들을 모두 가져가는 계약이다. 이 마수에 조르쥬 루오가 걸려들었다.

내일이면 볼라르에게 그림을 다 줘야 한다. 루오는 망설이다가 자신의 그림을 모두 태워버렸다.

볼라르는 매우 분노하며 계약위반에 대한 사기죄로 루오를 고소했다.

그 유명한 판결은 "인간의 영혼은 사고 팔려지지 않는 것이다."로 루오가 무죄판결을 받았다.

피카소와 칸바일러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림값을 올렸으며, 볼라르는 그 반대로 고리대금을 하다 폭삭 망했다.

우리나라도 장애인 요절화가 손상기작가의 그림은 화랑가에서도 보기 힘들다.

그 모두를 샘터사에서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도립미술관 행사도 손상기 작가 그림은 샘터사에서 빌려와야 한다.

몇 년 전 서울에 사는 후배가 우연히 손상기 작가의 그림을 발견했는데 10호짜리에 1억이 붙어있다는 전언이었다.

서양미술을 받아들인 일본은 서양화를 문과에 두지 않고 공대에 두었다.

과학적 기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요소를 제거한 서양미술은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었으며 그냥 공산품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계산하기 좋게 1호~100호 등의 크기로 나누었다.

포장지로 이용했던 우끼요에는 서구에서 난리가 나고 그들의 그림은 공산품의 일종으로 취급받았던 것이 지금의 인간미 하나 없는 그림의 호당 가격이다.

1호는 22,7×15,8Cm로 일반 우편엽서보다는 약간 크다. 그렇다고 10호가 그 10배인 227×158Cm이지는 않다.

그림이 크다고 좋으리란 법은 없다. 그때 당시는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어 크면 비싸다는 등식이 성립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틀린 이야기인데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10대 작가는 호당 10만 원, 나같은 70대 작가는 호당 70만 원이라는 현실성 없는 믿지 못할 분류도 보았었다.

저 사람이 호당 얼마를 받았으니까 나는 얼마를 받아야지 하는 자존심 값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림의 판매 방식은 경매가 제일 좋다. 그러나 전문 경매사가 절대량 부족이라 현실성이 없다.

이 지역에서 대가이셨던 고(故) 하반영 선생님은 말년에 10호 하나에 2만 원을 받아 젊은 미술인들의 눈총을 받은 일도 있다.

선생님의 의견은 "그림값에 거품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고 일부 젊은 작가들은 너무나 에누리 치면 전업 작가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였다.

그림은 원작 1점 주의라서 판화나 사진에 비해 그림값이 비싸졌다.

그러나 터무니없이 비싸지는 것은 주머니가 가벼운 진정한 컬렉터들에겐 못 할 짓이다. 그렇다고 똑같은 그림을 차등 판매하는 것도 공평하지 않다.

이것은 우리가 안고 가야 하는 영원한 숙제이다.

수요가 많아지고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올라가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지면 내려간다는 자본주의 법칙도 그림 시장에서는 도무지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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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값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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