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찬섭 조각가가 ‘달빛에 젖은 정(情)’이라는 다소 서정적인 제목의 개인전을 연거푸 열었다.
전시는 서울 인사 아트에서 지난 4일까지 열렸으며 전주 우진문화공간에서는 오는 20일까지 진행된다.
먼저 받은 작품 사진들을 보며 재료가 되는 돌의 재질이 심상치 않았다.
이 근처에서 채석되는 돌의 질감이 아니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나 피에타상 등의 조각상에서나 봤음 직한 재질로 보였다.
이탈리아의 ‘까라라석(石)’이다. 직접 다뤄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알고 있던 소문에 의하면 면도칼로도 깎일 만큼 부드러우나 풍상에서 오래 견딜수록 단단해진다는 돌이다.
그것을 수입하기도 하나 보다. 제곱미터당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상상됐다. 결국 작가의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여유롭지 않을 소 작가의 단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조각가들끼리의 농담 하나가 생각났다.
조각품으로 환원되는 여체는 아주 뚱뚱하거나, 쟈코메티처럼 해골만 남았거나, 헨리 무어의 것처럼 변형(deformation)돼야 한다.
컬렉터의 아내보다 날씬하거나 예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애환(?)을 가지고 제작을 감수하는 조각가 중에서 굳이 찾자면 소찬섭 작가의 작품은 세 번 째라고나 할까? 적당히, 어느 작품은 크게 변형된 작품들이었다.
그들의 농담을 받아들이자는 말이 아니다. 소찬섭 작가의 여체 왜곡(변형)을 말하고자 함이다.
작가의 심상으로 제작되는 어떤 변형은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다. 작가의 소양에 따라 다르다. 소양이 깊은 작가일수록 실패하는 비율도 낮아진다.
그의 조상들은 경상도 진주에서 금마 미륵산자락으로 왔을 것이다.
본(本)이 하나뿐인 소 씨는 이곳 금마 도천마을로 이주해 불세출의 문장가이며 송설체의 대가인 소세양을 배출하고 오늘에 이른다.
대과에 급제한 뒤로 호조, 형조,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우찬성까지 지낸 소세양은 송도 3절인 황진이를 애끓게한 사랑으로 더 유명한 풍류객이기도 했었다. (황진이가 소세양을 얼마나 그리워했는가는 황진이가 작시하고 대중가수 이선희가 부른 ‘알고싶어요’를 들으면 그 애달픈 황진이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남의 족보까지 꺼낸 이유는 그런 분의 후손이어서인지 전시 제목 ‘달빛에 젖은 정’도 서정시의 한 구절이어서 그런 선조들의 피가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문에서이다.
더구나 서문을 쓴 문리마저 정으로 ‘정(情)을 나눈다’는 표현으로 우선 제목만으로도 조선의 명문장가 소세양을 생각게 하는 고도의 문학 지대를 지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유독 소 씨 집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조국의 역사다.
아무튼 소찬섭 작가의 작품들은 변형에서나 분위기 등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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