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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미술과 사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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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그러니 정치 부재, 혹은 없어서 더욱 좋을지도 모르는 정치적 상황 아래서 자연발생적으로 민중, 민족미술이 출현하여 다급하고도 결연한 목소리로 소위 제도권 미술의 문을 두드리고 윽박질러도 속이 좁은 사람인양 반응을 하지 못했다. 

물론 그들의 이론을 전부 수용한다거나 같은 행동을 하자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에도 어느 정도는 반응을 했어야 했다. 그들의 출현은 분명 시대의 아픈 상황이었고 그들이 질타할만한 요소들이 제도권 미술에는 너무나 만연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창조적 상상력을 거세하려는 대학의 미술교육 현장을 질타에도 한 번쯤은 귀를 기울이고 반성을 하는 가운데 모색점을 찾는다거나 공감을 했어야 했고 한국미협의 부조리한 운영에 대한 것들에도 공감을 했어야 했다.

다시 말하자면 민중미술 역시 이 시대가 절실하게 요구한 시대적 상황이다. 그들의 이론에 부분적으로는 절대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너무나 비약된 논리나 극단적인 표현으로 갈 때만은 부정을 했어야 했다. 요약하면 긍정할 부분은 긍정하고 부정할 부분은 부정하여 모색할 점이 있으면 같이 모색을 하는 태도를 보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본인에 대한 반성이다. 과거 민중미술 작가와 필전이 있었을 때의 반성이다.

현대미술을 감상할 때 특히 어려운 부분이 비구상성이나 작가의 논리성이 강할 때이다. 외부 대상이 있어서 비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막연한 이해의 대상이어서 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실존 세계와는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자. 우리가 손 훈련이 서툴러 손으로 그리지는 못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척척 그려지는 대상이 있다. 

벌거벗은 여인이라거나 빨간 사과, 초가지붕 위의 박 넝쿨 등은 구체적인 대상을 봤던 기억으로 하여 떠오르는 형체가 있지만 머릿속에서도 떠오르지 않는 꿈, 슬픔, 권태 좌절 등의 내 마음속에서만 가능한 추상명사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또는 이야기의 전개가 전혀 없는 조형의 기본인 조화, 강조, 율동, 통일, 리듬 만으로만 전개되거나 이도 저도 뭉개버리고 철학적인 사고에 근거한 무조형성의 그림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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