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 옥도면 고군산군도(16개 유인도·47개 무인도) 가운데 가장 중심이면서 또한 가장 아름다운 섬인 선유도(仙遊島). 오죽했으면 신선들이 머물며 놀다간 섬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 한폭의 수묵화로 다가온 도가풍의 은은한 이름 선·유·도. 이 곳은 이제 '자전거 천국'으로 불리운다. 신선들의 섬에 두고온 두바퀴의 달콤한 여유, 그 섬이 자꾸만 발길을 붙잡는다.
지난 5일 이른 아침, 무거운 눈꺼풀을 가까스로 올리고 전주에서 군산 연안여객선터미널로 향했습니다. 그 풍경이 부드럽기 그지없는 선유도에서 하이킹을 즐기려는 욕심이 발동했나 봅니다.
든든한 동반자도 생겼습니다. 자전거에 입문한지 10일째된 회사 선배. 차량에 자전거를 싣는 폼이 꽤 능숙해졌습니다. 여객선 왕복 티켓은 연안여객선터미널(063-472-2727)에 문의해 예약했고, 오전 10시 군산을 출발한 그 배는 1시간30분 가량 잔잔한 서해바다를 헤쳐나갔습니다. 대체로 섬을 왕래하는 배들이 사람과 차량을 함께 실어나르는데, 선유도 여객선은 사람만 골라 태웁니다. 대신 자전거는 가능한데, 운임 비용은 3000원, 말만 잘하면 무료랍니다. 다른 자전거 여행가들도 이 비용은 지불하지 않았다고 귀뜸합니다.
선유도 선착장에 들어서자, 자전거 하이킹의 낭만이 잔뜩 묻어납니다.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이 없고 기껏해야 골프장에서나 쓰이는 전동카, 오토바이, 민박집에서 운행하는 몇대의 차량들이 전부이니까요. 섬 구석구석을 둘러보기에는 역시 자전거가 제격이겠죠. 자전거 대여점이 선착장 입구 등지에 자리한 것도 이 때문. 오르막이 거의없는 평지에 가까워 힘들이지 않고 소중한 하이킹 추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전거 천국은 이래서만 붙여진 게 아닌 듯 싶습니다. 해안을 따라 10분쯤 달리자 명사십리로 유명한 선유도 해수욕장이 반기더군요.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낙조로 유명한 이 곳은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곱고 아름다운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요. 그 옆에 귀양온 선비가 임금을 그리워하다가 그만 굳어져 바위산이 됐다는 '망주봉(152m)'이 오랜 세월 자연과 무언의 정담을 나누고 있습니다.
여름철 큰 비가 내리면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7∼8개의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장관을 이룬다는데, 이날 날씨가 너무 화창해 그 기회는 놓쳤습니다. 일직선에 가까운 1.2㎞의 해수욕장 도로에서 마음껏 페달을 밟으면 선유도의 멋진 풍광이 계속해 스쳐 지나갑니다.
선유도는 이웃한 장자도, 무녀도, 대장도와 함께 다리로 연결돼 있습니다. 차량통행이 불가능한 작은 다리는 자전거를 최고의 교통수단으로 만드는데 한몫했죠.
자전거코스는 선착장을 중심으로 크게 3개로 나뉩니다.
A코스(약 3.7㎞)는 선착장∼평사낙안∼명사십리∼초분공원∼장자대교∼낙조대∼장자도포구∼대장교∼대장도(장자할매바위). 장자대교를 달리는 두바퀴는 하늘과 바다의 중간에 떠있는 듯한 아찔한 모습입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온몸을 떠밀어 어느새 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장자할매바위에 이르게 됩니다. 과거보러 간 남편을 기다리다 등에 업은 아들과 함께 돌이 되어버렸다는 슬픈 전설의 장자할매바위, 그래서인지 자전거는 더이상 길을 묻지도 찾지도 못한 채 방향을 돌려야만 합니다.
B코스(약 4.7㎞)는 선착장∼평사낙안∼명사십리∼망주봉∼신기리(포구, 몽돌밭)∼전월리(갈대밭, 포구)∼남악리(몽돌해수욕장). 망주봉 앞 은빛 모래톱에 뿌리를 내린 수령 미상의 팽나무 한그루가 내려앉은 기러기 형상과 같다하여 불려진 평사낙안, 갈대밭길, 미로에 숨겨놓은 것 같은 아담한 몽돌해수욕장은 꼭 가야만 할 길처럼 여겨집니다. 인적은 드물지만, 청아한 파도 소리와 함께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C코스(약 4.3㎞)는 선착장∼장승∼통계마을(옥돌해수욕장, 기암괴석)∼선유대교∼무녀도(모감주나무 군락지)∼무녀1구(포구, 갈대밭, 염전)∼무녀2구(포구, 대나무 숲, 우물). 여객선을 타고 들어올 때 보았던 선유대교를 지나면, 무당이 상을 차려놓고 춤을 추는 모양이라해서 붙여진 무녀도에 닿습니다. 물 빠진 갯벌 탓인지, 조용한 어촌마을의 풍경이 을씨년스럽고 밋밋해서인지, 무녀도에서 자전거의 무게가 더욱 느껴집니다.
자전거는 다시 여행의 출발점이자 마지막 지점인 선착장에 멈췄습니다. 1만원선의 갑오징어 회에 소주 한잔을 기울인 뒤 군산으로 향하는데, 멀어져가는 선유도는 또 육감적인 몸매와 함께 달콤한 여유로 유혹합니다.
어쩌나, 어쩌나! 안타까운 한숨이 짙게 베어져 나오지만, 나중을 또 기약해봅니다. 선유도야, 기다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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