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숫자로 본 전북 문단은 우울했다. 영상에 밀려 '스크린 셀러(영화로 만들어진 소설)'의 약진이 도드라진 가운데 눈에 띄는 베스트셀러가 없었다. 비단 전북 문단의 현실만은 아니다. 출판계는 독자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푸념하고 있다. 책이 통 안 팔리니, TV 프로그램을 통한 마케팅에도 기웃댄다. 매년 배출되는 작가들은 넘쳐나는데 작품들은 왜 외면받는 것일까. 누구나 작가가 되는 시대라지만, 등단 시스템이 허술한 탓도 있지 않을까. '문화, 경제로 읽다'에서는 문예지 구입을 등단 조건으로 내거는 문단의 잘못된 관행을 짚어본다.
정치판에만 '공천 헌금'이 있는 게 아니다. 문단에서도 '등단 헌금'이 존재한다. 혀를 끌끌 차면서도 눈을 질끈 감아주는 문인들이나 형편상 어쩔 수 없다고 두둔하는 문인들은 문단에선 들추고 싶지 않은 치부.
전북문인협회가 밝힌 도내 문예지는 대략 64곳(2011년 기준)이다. 여기엔 전북 문단의 양대 산맥인 전북문인협회의 '전북문단', 전북작가회의의 '작가의 눈'은 물론 전북시인협회의 '시의땅', 온글문학회의 '온글' 등이 포함 돼 있다. 수치로만 따지면 '문예지 부흥기'처럼 보이나 실제로 내실있게 꾸리지는 곳은 적다.
전북에서 문인들을 배출해오는 곳은 신아출판사가 운영하는 문예지가 유일하다. 20년 안팎의 역사를 자랑하는 '문예연구','수필과 비평' 등은 공신력을 갖춘 심사로 매년 2~3명 씩 문인들을 배출해 전국적 인지도를 자랑한다.
작가들이 대거 몰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도권도 상황은 비슷하다. 국내 문예지 313종(2011년 기준) 중 50% 이상이 공모를 통해 당선된 작가들에게 문예지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유지 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매년 40여 곳의 우수문예지를 선정해 지원금을 주고 있으나, 그간 혜택을 받았던 곳은 신아출판사의 '문예연구'가 유일했다.
문제는 중앙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정체불명의 문예지들이 각 지방으로 흘러들어 문예지 구입을 내건 등단을 조장하고 있어 문단의 물을 흐려놓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D문학','H문학' 등은 등단을 하려면 문예지 최소 100권 이상 구입을 해야 당선이 확정된다고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공모 요강에 문예지 구입을 대놓고 광고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책도 안 팔리는 문예지들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 걸까. 운영진들은 매년 5~6명 신인상을 선정하면서 문예지를 1000부 찍는다. 평균 1000부를 발행하는 계간 문예지의 경우 발행 비용이 서울에선 800만원, 지역에선 이보다 20% 싼 가격이 들어간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이들에게 각각 문예지 100권 씩만 사도록 강권해도 '남는 장사'가 된다"고 귀띔했다. 일각에서 "문예지들이 '작가 장사'를 하고 있다"면서 문예지가 등단 작가에게 주는 것은 '상금'이지 '등단비'를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비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문예지를 운영하는 쪽은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만큼 형편이 어려운 곳을 위해 후원금을 내놓는 형식"이라는 입장이다. 중소 문예지의 열악한 재정 여건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일부 옹호론이 그것이다. 이렇게라도 비용을 충당하지 않으면 각 문예지들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
심지어 정종명 한국문인협회 이사장도 "지역에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이어질 수 있다면 이러한 관행도 긍정적으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는 실언까지 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한 지역 문인은 "그 밥에 그 나물"이라면서 "다른 데는 몰라도 협회가 그런 방식으로 손쉽게 사람들을 등단시킨 뒤 선거를 앞두고 선거인단으로 활용해왔던 꼼수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며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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