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희 作 ‘빌딩 위 시민들’ | ||
건물을 연상케 하는 거친 통나무 위에 얼굴 없는 사람이 우뚝 서 있다. 다원화되고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무미건조하게 사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서류가방, 상자, 쇼핑백, 우산, 악기, 넥타이 등 각 인물마다 공통적으로 빨간색을 띤 사물을 지니고 있다. 이 사물들은 그 인물의 삶에서 무게 중심이자 그들이 쫓기며 사는 이유다.
지난 18일 찾은 전주초등학교 인근 배병희 작가(33)의 작업실 한쪽에는 지난 1월 전시했던 작품 일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인간이 문명을 만들었지만 점점 문명이 인간을 지배합니다. 이 둘의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산책을 하다 나무의 군집된 모습을 보고 현대사회의 소산인 빌딩의 위에 고독하게 서 있는 시민을 착안했습니다.”
작업실의 다른 쪽에는 이동하는 모습의 ‘얼굴 없는 조각상’이 있었다. 1탄 작업에서 인물이 정적으로 건물에 서 있었다면 2탄은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을 조각했다. 인물들은 투박하고 다소 과장된 몸짓이다. 움직임을 가미해 형상에 생동감을 입혔다. 복잡한 사회에서 획일화된 인간을 담았다.
배 작가는 “독일 유학시절 만났던 사람들을 모델로 형상화했다”며 “고전적 재료인 나무가 역설적으로 점점 상막해지는 사회를 표현하는데 효과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어릴 적 빨래집게나 나뭇가지로 장난감을 만들어 놀곤 했다는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웠다.
그는 “별도의 교육 없이 중학교 2학년 때 전국소묘대회에서 은상을 탄 뒤 예고 진학을 권유 받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인문계에 진학했다”며 “고교시절 건축학과에 가기 위해 드로잉을 배운다는 핑계로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들려주었다.
▲ 배병희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그는 지난 2006년 전북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무작정 독일로 향했다. 자연주의와 인지학적 교육 방침으로 알려진 알리누스대학의 예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지난해 1월 귀국했다.
그는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독일어를 익혔는데 귀국할 즈음 잘 들리게 됐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그는 “현지에서 철학적 사고나 작가 내면의 이야기를 먼저 정립하고 작품을 시작하는 방식을 체득했다”며 “발상의 시작이나 결과물까지 가는 과정이 느리더라도 자기만의 이야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진정성이 떨어지거나 작품을 억지로 포장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도 이야기를 시각화하며, 관객과의 소통을 지향하는 작품이 목표다.
그는 “현재 작업하는 각각의 조각상에 단편 소설처럼 개인사를 넣어 줄거리를 확장하고 있다”며 “나무 조각으로 작업을 한정하지 않으며 하나의 주제에 중점을 두고 설치나 영상 등을 이용한 다양한 결과물로 관객과 교류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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