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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81)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7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계백이 구례항에 도착했을 때는 7월 6일이다. 오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예정보다 사흘이 늦었다. 다행히 병선 3척이 실종되었을 뿐 군사와 말 대부분은 무사했다. 그러나 20일 가까운 항해에 군사와 말은 지쳤다. 이틀은 쉬어야 한다. 구례성에 들어간 계백에게 성주 목천기가 말했다.

“달솔, 좌평 흥수, 성충이 김춘추의 뇌물을 받고 밀서를 교환하다가 발각이 되었소.”

“무엇이?”

놀란 계백이 목천기를 쏘아보았다. 구례성의 청안이다. 함께 들어온 화청과 윤진도 놀란 듯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목천기가 길게 숨을 뱉었다.

"내신좌평 연임자가 그 증거물을 들고 대왕께 보고한 터라 두 좌평은 어쩔 수 없이 유배되었소."

"유배되었다고? 이 전쟁 중에?"

계백의 목소리는 외침 같았다. 청안에 무거운 정적이 덮여졌다가 목천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예, 전쟁 중이어서 죽이지 않았다고 하오.”

“연임자 이놈이 마침내…”

어깨를 부풀린 계백이 목천기에게 물었다.

“나솔, 두 분은 어디에 계신가?”

“흥수좌평께서는 여기서 50리 떨어진 고마미지성에 유배되셨고 성충좌평께선 북방의 안산성에 계시오.”

그때 계백이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달솔, 유배자를 만나실겁니까?”

윤진이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대왕께서 간신에게 속으셨다.”

자르듯 말한 계백이 화청과 윤진을 보았다.

“그대들은 이곳에서 말과 군사를 쉬도록 하라. 난 좌평을 뵙고 오겠다.”

“그러지요.”

화청이 긴 숨을 뱉으면서 말했다.

“소장은 달솔만 따르겠소.”

계백이 하도리와 기마군 5백여기를 거느리고 고마미지성(城)에 들어닥쳤을 때는 유시(오후 6시) 무렵이다. 놀란 성주 진범이 계백을 맞았는데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마미지성은 남방 소속으로 상안의 군사가 1천여명, 성주 진범은 5품 한솔관등이다. 곧장 청으로 안내된 계백이 기다리고 선 진범에게 바로 말했다.

“성주, 내가 이곳에 유배된 흥수좌평을 뵙겠다. 지금 어디 계신가?”

“성안 객사에 유배되어 계시나 대왕의 명이 없으면 만나지 못하십니다.”

30대 중반의 진범이 예상하고 있었던 듯 바로 말했다. 계백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범 앞으로 다가갔다.

“너, 이곳에서 머리가 잘리겠느냐?”

“달솔, 무슨 말씀이시오?”

진범의 얼굴이 누렇게 굳어졌고 입이 반쯤 벌려졌다. 진범은 대성8족 중 하나인 진(眞) 씨다. 그리고 연임자의 친척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임자가 흥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이다. 그 순간이다. 청 주위에서 갑자기 비명과 외침 소리가 들리더니 곧 칼을 쥔 하도리가 올라왔다. 손에 쥔 장검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다. 하도리가 소리쳐 말했다.

“성주놈이 청 주위에 숨겨놓은 위사 10여명은 다 죽었습니다.”

그때 계백이 진범에게 말했다.

“네가 앞장을 서서 좌평께 안내해라.”

겁에 질린 진범이 입만 달삭였을 때 하도리가 칼등으로 진범의 머리통을 두드렸다.

“앞장서. 개 같은 놈아.”

객사에서 계백을 본 흥수의 눈에 금방 눈물이 고여졌다.

“달솔이 왔는가?”

“좌평, 이게 왠일이시오?”

계백이 소리치듯 묻자 흥수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달솔, 큰일 났어. 당군(唐軍)을 백강 입구에서 막아야 하는데 연임자와 상영이 대왕의 정신을 흐리게 하고 있다. 시기가 늦었는지 모르겠구나.”

“어쩌다 이렇게 되셨소?”

계백이 다시 소리쳤을 때 흥수가 이를 악물었다.

“자만했다. 우리도, 그리고 대왕도.”

그때 계백이 허리에 찬 칼을 빼면서 진범의 목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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