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관창이 죽었다고?”김유신이 묻자 김품일이 고개를 떨구었다.
“부끄럽습니다.”
“무슨 말인가?”
김품일이 입을 벌렸을 때 재빠르게 김흠춘이 대답했다.
“공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아닙니다.”
말을 막듯이 김품일이 똑바로 김유신을 보았다.
“말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백제군 외침에 놀라 말에서 떨어진 후에 발굽에 짓밟혀 죽었다고 합니다.”
진막 안에는 김유신과 대장군 둘까지 셋뿐이다. 김유신이 김흠춘, 김품일을 번갈아 보았다. 이제 신라군은 백제군과 세 번 싸워서 세 번 패퇴했다. 벌써 1만여 명의 전상자가 생겼는데 4만도 못 되는 병력이 뒤쪽에 머물고 있다. 사기는 땅에 떨어져서 장수들의 외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김흠춘과 김품일은 차례로 아들 반굴과 관창을 잃었다. 그때 김유신이 말했다.
“너희들의 아들 반굴과 관창은 장렬하게 전사했다고 기록될 것이다.”
김유신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렇지. 반굴은 앞장서서 백제군 장수 셋을 베어 죽이고 전사를 했다고 하자.”
김유신의 시선이 김품일에게 옳겨졌다.
“네 아들 관창은 어리니 백제군에게 네 번 잡혔다가 풀려났는데도 계속해서 단신으로 돌진했다가 나중에 잡혀 목이 베어졌다고 하지.”
“……”
“그것을 본 신라군이 분을 일으켜 백제군을 전멸시켰다고 하는 것이다.”
“……”
“백제군도 이제 3천 남짓이다. 우리가 밀고 가면 또 패퇴하게 되더라도 몇 명 안 남는다.”
“……”
“역사는 이긴 자가 기록하는 거야. 백제는 이제 망한다. 백제 기록은 다 불태워질 것이고 우리 손으로 역사를 쓸 테니까.”
그때 진막 밖이 웅성거리더니 위사장이 뛰어 들어왔다. 눈을 치켜뜨고 있다.
“총사령, 백제군 전령이 왔습니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유신도 숨을 들이켰지만 곧 지시했다.“데려오라.”
백제군 전령은 나솔 윤진이다. 윤진은 피로 얼룩진 붉은 갑옷 차림으로 진막 안에 들어서더니 김유신을 향해 가볍게 목례만 했다.
“백제군 대장군 윤진입니다.”
김유신을 응시한 채 말하더니 어깨를 폈다.
“백제군 총사령 달솔 계백의 전언을 가져왔습니다.”
“거기 앉으라.”
김유신이 눈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윤진은 바닥에 놓인 나무 걸상에 앉았다. 세 걸음쯤 앞쪽 중앙에 김유신, 좌우에 김품일, 김흠춘이 앉았다. 주위는 조용하다. 밖에 모든 신라군이 백제군 전령이 온 것을 아는 것이다. 그때 윤진이 말했다.
“백제군을 가로막지 말아 달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인가?”김유신이 눈썹을 모으고 윤진을 보았다.
“가로막지 말라니?”
“예, 백제군은 남하(南下)하겠습니다.”
“남쪽으로 간단 말인가?”
“예, 백제 주민과 함께 남하해서 왜국으로 건너갈 것입니다. 그러니 막지 말란 말씀이오.”
김유신이 숨만 쉬었고 김품일과 김흠춘은 서로의 얼굴만 보았다. 그때 윤진이 말을 이었다.
“이미 좌평 흥수가 백제 주민을 모아 남하시킬 준비를 하고 있소. 서로 막지 마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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