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그러나 화청이 이끌고 돌아온 백제 기마군은 1천여기, 500기의 전상자를 냈다. 신라군 5천기를 격파한 대승을 이루었지만 화청의 얼굴은 그늘이 졌다.
“달솔, 다시 한번 갔다 오겠소.”
장검의 피를 겉옷에 닦으면서 화청이 말했다. 화청의 수염에도 피가 튀어서 붉게 물들었다.
“아니, 이번에는 제2진이 간다.”
계백이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김유신도 지리를 아는 이상 한꺼번에 5만 대군을 쏟아붓지는 않을 것이야.”
그때 신라군 진영에서 북소리가 다급하게 울리더니 함성이 올랐다.
“좋아. 가거라.”
김흠춘이 다급한 북소리 사이에서 외치듯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신라군의 기세를 올려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사기가 떨어진다.”
“예. 대장군.”
소리쳐 대답한 장수는 화랑 반굴, 김흠춘의 아들이다. 18세, 무용이 뛰어나 아비 김흠춘뿐만 아니라 총사령 김유신한테도 사랑을 받는 영재다. 김흠춘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반굴을 보았다.
“알았느냐? 네 이름을 세상에 떨칠 기회다. 너는 신라의 영웅이다.”
“예. 대장군.”
“장하다. 아들아”
불쑥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반굴이 고개를 들었고 주위의 장수들이 일제히 긴장했다. 김흠춘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주르르 눈물을 쏟은 반굴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더니 몸을 돌렸다. 김흠춘이 반굴의 뒷모습만 보았을 때 함성이 일어났다. 반굴이 말에 올라 칼을 치켜든 것이다. 이번에는 2차 공격이다. 김흠춘 휘하의 기마군 5천이 반굴을 앞장세워 다시 백제군 진영으로 돌입한다.
“옳지.”
달려오는 신라군을 본 윤진이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쳤다. 윤진은 지금 마상에 앉아 있다. 뒤쪽 제2진의 기마군 1500기가 숨을 죽인 채 윤진의 명을 기다리고 있다. 고개를 돌린 윤진이 좌우에 서 있는 부장(副將) 오다와 다까시를 차례로 보았다.
“나는 정면에서 부딪칠 테니 너희들은 좌우로 벌어졌다가 제2대가 먼저, 제3대는 3등분한 마지막 부분을 쳐라.”
“하!”
오다와 다까시가 일제히 대답했다. 지금 김흠춘의 5천 기마군은 제1차 접전 때 백제군이 그랬던 것처럼 3열 종대로 길게 뻗쳐 달려오고 있다. 백제군의 심장부까지 쑤시고 들어오겠다는 기세다. 북소리가 더 다급해졌고 아직 2리(1km) 거리지만 신라군의 기세는 창이 날아오는 것 같다. 북소리와 함성, 말굽 소리가 산천을 진동했고 멈춰선 백제군의 말 떼가 웅성거렸다. 기세에 압도당한 것 같다.
그때 윤진이 장검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진격!”
그 순간 윤진이 말에 박차를 넣었고 1진 5백기가 한 덩어리가 되어 달려나갔다. 한 호흡쯤 후에 오다와 다까시가 제각기 기마군 5백기씩을 이끌고 좌우로 벌어지면서 뛰쳐나갔다. 2,3진이다. 이번에도 백제군은 입을 꾹 다물고 달렸기 때문에 말굽과 장식 소리만 울린다. 함성을 지르지 않는 것은 계백 기마군의 전통이다. 기(氣)를 몸 안에 품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꺼번에 뱉기 때문이다. 앞장선 윤진의 앞에는 호위 기마군 10여기가 뭉쳐서 달리고 있다. 그들 눈에 달려오는 신라군 선두가 보였다. 선두에 선 장수가 있다. 그 장수도 호위 기마군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흰 얼굴, 투구에 긴 꿩 털 두 개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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