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옵니다!”
다케다가 소리쳤지만 계백은 먼저 보았다. 4리(2km) 앞 쪽 들판에 가득히 펼쳐져 있던 신라군 중앙이 좌우로 벌어지면서 먼지구름부터 일어났다. 기마군이다. 기마군으로 짓밟겠다는 의도다. 이쪽도 기마군, 앞쪽을 응시한 채 계백이 입술 끝을 올리며 웃었다. 신라군은 이쪽과 비슷한 기마군을 내놓을 것이다. 신라군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렇다. 적으면 밀리고 많으면 손해다. 그렇다면, 고개를 돌린 계백이 장수들을 보았다.
“우리는 1500기로 돌파한다. 누가 가겠는가?”
“제가 가겠소!”
윤진, 화청, 다케다가 동시에 소리쳤다. 고개를 끄덕인 계백이 입을 열었다.
“덕솔 화청이 1진, 덕솔 윤진이 2진, 다케다는 3진이다. 먼저 화청이 저놈들을 쳐라.”
“달솔, 고맙소.”
화청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무성한 흰 수염이 잠깐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흩날렸다. 화청이 힐끗 푸른 하늘에 시선을 주었다. 구름 한 점 떠있지 않은 하늘은 짙은 바다색이다.
“달솔, 날씨가 참 좋소.”
“그렇구만.”
“태연의 하늘도 맑았지만 이곳이 더 푸른 것 같소.”
함성이 울리면서 말굽소리에 땅이 진동을 했다. 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청의 고향은 대륙의 태연이다. 태연유수 이연의 휘하 장수였다가 이연이 수(隋) 양제에게 반란을 일으키자 도망쳐 백제에 귀순했다. 나이가 66세. 지금 앞쪽의 신라군 총사령 김유신과 동갑이다. 그때 화청이 말고삐를 채면서 계백에게 소리쳤다.
“달솔! 가겠소!”
“가게.”
계백이 화청의 옆 얼굴에 대고 짧게 말했다. 군더더기 말이 필요없는 것이다. 그저 시선 한번 부딪치고 말 한마디 툭 던지는 것 만으로도 서로의 심중(心中)이 전해진다. 말머리를 돌린 화청이 박차를 넣더니 숨 다섯 번도 안 쉬었을 때 백제군의 한쪽이 무를 자른 듯이 떼어지면서 곧 한덩어리가 되어 신라군을 향해 돌진했다. 붉은색 갑옷, 붉은색 천을 두른 백제군 1500기다. 마치 불길이 신라군을 향해 번져가는 것 같다.
“엇! 저쪽!”
옆에서 지르는 소리에 김민생은 고개를 들었다. 앞쪽 백제군 진영 우측이 쩍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더니 기마군이 이쪽으로 달려온다. 거리는 이제 2리(1km) 정도. 붉은 옷자락이 펄럭였고 밝은 햇살에 창검이 번쩍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백제군은 기합소리, 함성도 지르지 않는 것 같다. 이쪽이 어지럽게 함성과 외침을 뱉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못 느끼지만 가깝게 다가가면 섬뜩해진다. 마치 귀신부대 같다. 김민생이 허리에 찬 칼을 뽑아들고 소리쳤다.
“쳐라!”
이런 상황에는 전술이 필요없다. 이리저리 가라고 명을 내리면 오히려 혼란이 일어난다. 눈앞에서 덮쳐오는 적을 두고 나누고 돌고 붙으라고 소리칠 경황도 없다. 필요한 것은 사기다. 반드시 쳐 죽이고 밀고 나가겠다는 기백, 이것이 승부를 가른다. 김민생은 흠춘군(軍)의 선봉장. 용장(勇將)이다. 42세. 수십번 전쟁을 치른 백전노장. 진골 왕족이기도 하다. 김민생이 옆에 바짝 붙어 따르는 화랑 반굴을 보았다. 대장군 김흠춘의 아들. 18세. 이번에 첫 춘전이다. 반굴이 김민생의 선봉대로 자원해서 온 것이다. 이제 백제군과의 거리가 500여 보로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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