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백제군 중앙군의 맨 선두는 십인장 사이또, 허리 갑옷만 걸치고 상반신은 붉은 천으로 감았는데 장검을 치켜들고 있다. 24세, 이마에도 붉은 띠를 매어서 불덩이가 날아가는 것 같다. 뒤를 따르는 9명의 기마군도 모두 왜군. 말발굽 진동이 땅을 울렸고 말들의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 사이또 조(組)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그 뒤를 바짝 붙어 달리는 모리, 혼다, 나까무라의 조(組)도 마찬가지. 본국(本國) 백제 땅에서 적과 처음으로 부딪치는 ‘싸울아비’의 감동으로 모두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있다. 계백 중앙군 2천기가 이렇게 돌진한다.
“쏴라!”
백제군이 와락 가까워졌기 때문에 선봉군 중군의 대장 김동천이 소리쳤다. 그 순간 달리는 말 위에서 화살을 재고 있던 수백의 궁수가 일제히 활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거리는 3백보. 그러나 쌍방이 마주 보고 달려가는 터라 화살이 닿은 무렵에는 2백보 거리가 된다. 유효사거리다.
“어엇!”
그때 김동천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불덩이가 두 개로 쪼개진 것이다. 달려오던 백제군이 그야말로 도끼로 통나무를 쪼개듯이 2개로 좍 갈라졌다. 그 순간 백제군에서도 화살이 쏘아 올려졌다.
“앗!”
김동천이 놀란 외침을 뱉었고 뒤를 따르던 신라군의 함성이 뚝 그쳤다.
“으음.”
김동천이 눈을 부릅뜨고 안장에 매단 방패를 꺼내 몸통을 가렸다. 이제 백제군은 비스듬히 앞쪽을 지나간다. 거리는 2백보, 그 순간 백제군이 쏜 화살이 날아왔다. 신라군이 쏜 화살은 대부분 백제군이 갈라진 빈 공간으로 쏟아진다.
“아앗!”
뒤쪽에서 신음과 외침이 울렸기 때문에 김동천이 잠깐 해찰을 하다가 어깨에 충격을 받고는 몸을 비틀었다.
“윽!”
저절로 신음이 터지면서 손에 든 방패가 떨어졌고 몸이 기울어졌다. 화살에 맞은 것이다.
“쳐라!”
선봉 바로 뒤쪽에서 달리던 중군(中軍)의 선봉대장 다께다가 버럭 소리쳤다. 그 순간 처음으로 왜군에게서 함성이 터졌다.
“이얏!”
목이 찢어질 것처럼 기성을 지른 왜군의 기세가 벌떡 올라갔다. 지금까지 ‘불덩이 귀신’처럼 숨소리도 내지 않고 달려오던 왜군이다. 왜군의 함성이 진동했다. 다께다는 이제 선봉대가 신라군 선봉 좌측과 부딪치는 것을 보았다. 부딪치면서 밀고 나간다. 다께다는 반으로 쪼개진 우측군을 맡고 있었는데 좌측군은 야마노가 지휘한다.
“죽여라!”
다께다가 다시 소리쳤고 기세가 오른 왜군이 함성으로 응했다.
“오.”
선봉군 중심에 있던 김흠춘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이쪽은 지대가 조금 높아서 백제군이 다 보인다. 보라. 백제군 중심의 기마군 2천여기가 반으로 뚝 갈라지더니 좌우로 비스듬히 달려가 신라군을 친다. 그리고 좌우에서 달려오던 1천여기의 백제군이 방향을 틀어 중앙군의 뒤를 받쳐주고 있다. 빈틈이 없다. 좌우의 백제군을 맞으려고 곧장 달려나가던 양쪽 신라군이 허둥대다가 중앙군 선두와 섞여지고 있다.
“저런.”
김흠춘이 탄식했다. 겹쳐진 신라군은 무용지물이다. 그때 백제군이 다시 방향을 틀어 산성 쪽으로 돌아간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