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쓰다듬어 길들이듯, 신뢰를 쌓아 성폭력을 저지르는 ‘그루밍 성범죄’.
범행 대상은 주로 10대 아동 청소년들이다. 한 성폭력상담소가 지난 3년 동안의 상담사례를 분석한 결과,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의 10건 중 4건을 차지할 정도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 한 교회에서 발생한 성폭력 의혹을 비롯해 사회 곳곳에서 아동청소년을 위협하는 ‘그루밍 성범죄’의 추악한 이면을 <추적60분> 이 취재했다. 추적60분>
■ ‘그루밍 성범죄’ vs ‘치정사건’ - 인천 A교회 성폭력 사건의 전말
지난 달 6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네 명의 여자들.
모두 같은 교회를 다니던 여성 신도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3명은 성폭력 피해를 입을 당시 미성년자였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 16세 때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 여성도 있었다. 이들에 대한 성폭력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다고 한다.
네 명의 여성들이 가해자로 지목한 사람은 단 한 사람, 교회 담임목사의 아들인 한 젊은 목사였다.
이들은 해당 목사와 그의 아버지가 자신들의 죄를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협박하고 회유하며 사건을 은폐하려고만 한다며 억울함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목사의 가족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더 억울하다는 태도다. 평소 교회 내에서 인기가 많던 젊은 목사를 두고 어린 신도들끼리 벌인 치정사건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젊은 목사의 성폭력 의혹, 그 전말을 추적했다.
“스킨십을 거부할 때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넘어갔지만, 그 뒤로도 너무 자연스럽게 스킨십의 정도가 높아졌어요”
- 성폭력 의혹 피해자
“성폭력 아니에요. 그냥 젊은 애들 치정사건이에요.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한 남자를 놓고 패싸움하고 있었던 거라고요”
- 인천 A 교회 신도
■ 미성년자 성폭행이 ‘무죄’가 되는 현실
6년 전, 당시 15세의 한 여중생이 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출산 후 자신의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자신이 ‘그루밍 성폭력’을 당했단 것이다.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피해 여중생보다 무려 27살이나 많은 한 연예기획사 대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심에서 12년, 2심에서는 9년이란 중형을 선고받았던 그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무죄’.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등이 근거가 됐다. ‘사랑하는 사이였다’ 주장하는 남성 측에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그 후 해당 남성은 피해 여중생을 무고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당시 사건을 수사, 담당했던 검사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해당 검사는 당시 재판부가 ‘그루밍 성범죄’에 대해 무지했다고 고백한다. ‘그루밍 성범죄’는 가해자에게 길들어 신뢰를 가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므로, 막상 성폭력에 이르게 돼도 피해자가 자신이 보는 피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관계를 끊기도 어렵고, 대부분 강하게 저항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당시 재판부가 이러한 ‘그루밍 성범죄’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 판결을 내려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그루밍 아동청소년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피해자가 ‘동의’하기까지 가해자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파악해 수사, 재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여중생이 임신해도, ‘사랑했다’고 하면 ‘무죄가’가 되는 기가 막힌 현실을 <추적60분> 이 되짚어봤다. 추적60분>
“그루밍 당한 사람은 가해자에게 매달리게 된다는 거예요. 정말 그래요. 이 사람 아니면 이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그런 생각 때문에 그 사람을 떠날 수가 없어요”
-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 -
■ 운동화가 성매매 대가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루밍 성범죄!
현재 형법 제305조에 의하면 합의에 의한 성행위의 경우 13세 미만. OECD 회원국 중에서도 법적 보호 연령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즉, 13살만 되도 아이가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정황만 있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 우리 재판부와 수사부가 피해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동의했는지’를 묻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선거권도 없는 아이들에게 성적 자기 결정권만을 주며 책임을 묻는 것은 명백한 이중 잣대라고 강조한다.
재판부에서 ‘그루밍 성범죄’를 ‘성매매’로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이들이 성인 가해자에 의해 길드는 그루밍 과정 중 받은 선물과 용돈을 성매매 대가로 보기 때문이다. 성매매로 기소되면 가해자 처벌은 가능하다. 하지만, 피해 청소년 역시 범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보호처분을 받게 되거나 피해자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2차 피해를 당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성관계에 대해 전혀 몰랐던 청소년을 꼬여서 성관계를 하고 입막음으로 돈을 줬다면 더 죄질이 나쁜 것 아닌가?”라며 우리 법이 청소년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루밍 피해 아동 청소년들. 이들을 지키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선거권을 가질 수 없는 나이까지는 무조건 성 착취당한 걸로 법이 보호할 수 있도록 개정돼야 한다고 봐요. 법으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 조진경 대표 / 십대여성인권센터
이번 주 <추적60분> 에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므로 평생 피해자가 더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그루밍 아동·청소년 성범죄’의 위험성을 심층 취재, 피해 아동·청소년을 보호할 방안은 없는지, 모색해본다. 추적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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