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 사백여 년 된 고택에는 문익점 선생의 후손이자 뼈대 깊은 양반 가문 출신인 문제봉(66)씨와 그의 아내, 김수자(54)씨가 산다. 반평생 길러온 흰 수염에 유건을 반듯하게 쓰고, 새벽부터 먹을 갈아 글을 쓰는 모습은 영락없는 조선의 선비지만 사실 제봉씨는 붓 대신 망치를 들거나 도끼질하는 시간이 더 많은 막노동의 대가! 벌써 10년째 집만 짓는 머슴 같은 선비다.
7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며 자란 제봉씨는 젊어서부터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직접 모은 것과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것까지 포함해 2만 여권의 고서를 소장하고 있다. 목숨 같은 고서를 보관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일찍이 그 뜻을 세웠고, 53세에 박물관을 짓기 시작해서 어느새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도편수도 없이 홀로 집을 짓기 시작한 제봉씨. 가난한 선비가 혼자서 건물 한 채를 지으려니 돌기둥을 세우는 데는 꼬박 두 계절이 지나고 마루 까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우공이산’이라는 말 그대로 ‘문공’이 산을 옮기는 시간이었다. 임시로 만든 기중기로 큰 바위만 한 돌을 옮기다가 다쳐서 어깨가 으스러지고,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몸 여기저기에는 철심이 박혀있다. 돈벌이를 못 하니 살림은 궁핍하기 짝이 없지만, 손톱에 때 빠질 날 없이 오로지 꿈만 보고 달려온 일꾼 선비, 제봉씨. 그리고 그의 곁에는 우렁각시 같은 아내, 수자씨가 있다.
제봉씨가 붓을 들면 조수처럼 옆에서 먹을 갈고, 망치를 들 때면 주방에 들어가 새참을 포함해 하루에 5끼를 차려내는 수자씨. 남편이 고된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날이면 손수 발까지 씻겨주니 그야말로 우렁각시가 따로 없다. 30여 년 전, 서예 학원에서 사제 간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 조선의 여인을 닮았다며 아내에게 청혼했던 제봉씨의 눈은 틀림이 없었다. 반평생 외골수 남편을 대신해 빠듯한 살림을 돌보고 자식 셋을 키워낸 수자씨. 한겨울에도 언 땅에 냉이를 캐서 반찬을 만들고, 애주가 남편의 술값을 아끼려 직접 술을 빚어 주안상을 차려냈다. 집을 짓는 데 재룟값이 떨어지면 수자씨는 남편 대신 아르바이트를 다니며 생계까지 책임졌다. 제봉씨가 집 한 채를 지었다면, 사실상 그 집의 절반은 아내가 지은 것과 매한가지. 말 못할 고생을 겪으며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기둥을 세우고 벽을 쌓아올리는 남편을 보며, 이제는 존경의 마음마저 든다는 우렁각시 수자씨다.
그리고 내년 봄, 부부의 10년 세월이 드디어 결실을 본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집, ‘서문재’라고 이름 붙인 박물관 개관을 눈앞에 둔 부부. 이제는 남편이 연장 대신 붓을 드는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바람을 이루어질까? 일꾼 선비와 우렁각시의 부부별곡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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