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대형 금융지주사의 경영진 성과보상체계 개편에 대한 실태점검에 나서기로 한 것은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실적 부진이나 대형 금융사고 이후 경영진의 고임금이 도마 위에 오를 때마다 금융지주사들은 보수체계를 고치는 대신 급여 일부를 기부하거나 반납하며 '위기'를 모면했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당국이 구두 지도로 경영진의 성과급 삭감을 과도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며 보수체계를 바꿔 성과급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급을 얼마나 줄일지 정해놓고 보수체계를 짜맞춰야 하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고임금 논란 중심에 선 금융지주 CEO 지난해 감독당국이 성과보상체계 모범규준을 적용받는 65개 금융회사를 조사한 결과,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의 연평균 보수는 약 15억원이었다.
CEO가 10억원 이상 고액 연봉인 금융회사를 기준으로 살펴보니 금융지주사 CEO의 평균 연봉이 약 21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보험사가 20억원, 은행이 18억원, 금융투자사가 16억원이었다.
모범규준에 어긋나거나 불합리한 '연봉잔치'를 벌인 사례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는 영업실적이 떨어져도 CEO의 성과보수는 올라간 것이다.
금융지주사의 경우 급여 가운데 기본급과 장·단기 성과급의 비율이 4:6으로 성과급 비율이 비교적 높아 금투사나 보험사보다 보수가 실적에 연동되는 경향이 컸다. 하지만 성과평가를 할 때 비계량 평가지표 비율이 34%로 다른 업권보다 높았다.
계량지표 또한 성과목표 자체를 전년도 실적보다 낮게 잡아 실적이 떨어지더라도 70∼80% 수준의 보수가 보장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금융사도 있었다.
특히 하나금융은 김승유 전 회장이 명시적인 근거 없이 주주총회 결의로 35억원의 퇴직금을 받은 점이 지적됐다.
하나은행은 성과연동주식보상 부여액 가운데 일부만 반영해 보상 규모를 축소해공시했고, 우리은행은 매년 3월까지 연차보고서에 넣어야 하는 성과보상 수준을 지연 공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국 "실태 점검하겠다"…업계 "간단한 문제 아냐" 금감원은 원칙적으로 CEO의 성과보수 체계는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면서도 합리적인 평가와 보상 규모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개편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이후 이들 금융사에 작년 연말까지 성과보상체계 개선안을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연말까지 지방은행 1곳만 개선안을 냈을 뿐 대형 금융지주사들의 개선작업이 늦어지자 실태 점검에 나서겠다고 재차 밝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연말까지 임원 성과체계 개선안을 내라고 했으나 지금까지 4대 금융과 대형 은행 중에 제출한 곳은 없었다"면서 "연봉과 관련해 말만 요란하고실천에는 인색한 금융사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개선안 마련이 다소 늦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보수체계를 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무진과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이사회 의결까지 거쳐야 하는 사안인 만큼 속전속결로 처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이사회를 거쳐 결정한 뒤 조만간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라고 설명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도 "전체적으로 보수가 높다는 지적이 있어 이를 낮추는 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금융지주사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본급과 장·단기 성과급의 비중을 비교적 합리적으로 조정했다며 정성평가인 비계량평가 항목을 세부화하고 장기성과급을 다소 낮추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성과보수체계 개편에 금융당국이 과도하게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금융당국이 공식 석상에서는 CEO의 보수에 대해 민간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구두 지도'를 통해 거액의 삭감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권 성과보수 점검 결과를 발표하면서 금감원 측은 "성과보수는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므로 권역별 TF나 모임을 통해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개선 방안을 만들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차라리 공식적으로 얼마씩 깎으라고 하면 오히려 쉬울것"이라며 "금융당국도 만족시키고 이사회도 설득할 수 있게 개선안을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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