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행복을 얻기위해 하루종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고한 만큼 행복을 얻지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현실이다. 행복이란 본래 그 정체를 정의하기가 힘든 정신적인 만족감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부귀와 영화, 권력과 명예에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정신세계에 두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볼때 행복의 절대적인 기준을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행복은 누구나 바라고 원하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칼 붓세의 산너머 저쪽이라는 시를 보자.‘산너머 저쪽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 하기에 남따라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네. 강건너 저쪽 멀고먼데 행복이 있다고들 말하건만 그곳에도 행복은 멀고멀더라.’
행복을 먼 곳에서 찾으려할때 그 행복은 비오는 날 무지개를 잡아보려는 마음과 같다. 분명히 눈앞에 있고 보이기는 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것이 행복이다. 사막에서 신기루를 끝내 찾지 못하고 길을 잃고 죽어가는 나그네와 같다. 그래서 토마스모어는 행복의 이상향을 유토피아라고 했다. 본뜻은 NO WHERE 즉 아무데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있다는 말인가 없다는 말인가?
성인들의 말을 들어보자. 예수님은 행복의 첫단계를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있다 하셨다. 마음의 가난이란 욕심을 버리는 겸손한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부처님도 말씀하시기를 부처가 되는 길은 욕심을 버리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볼때 행복은 다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선하고 착한 마음안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 행복은 나의 가장 가까운 마음속에 그리고 욕심을 버리는 마음안에 있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면 모든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마음의 소유자에게는 행복이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행복이 없었다고 불평을 했던 사람들은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비워보자. 그리고 욕심도 버려보자. 행복할 수만 있다면 못할 일이 없지 않겠는가. 먼 곳에서 어렵게 찾기보다 손안에 있는 것부터 찾아보자.
행복하고 싶거든 먼저 그일부터 시작하자. 나는 지금부터 마음을 다스리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행복할 수만 있다면.
/서석구신부(전주우전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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