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도내에서 마지막 합동연설회가 열린 장수공설운동장에서는 보기 드문 진풍경이 연출됐다.
2천여명의 청중이 모여 제법 열기가 달아오른 가운데 시작된 이날 연설회는 민국당에 이어 민주당후보가 연설을 마치자 상당수 청중들이 빠져나갔고 이어 자민련후보가 세번째로 연설을 마치자 남은 청중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연단에 오른 한나라당 후보의 연설때는 쌀쌀한 날씨속에 50여명의 청중만이 떨면서 자리를 지켰다. ‘인력동원’의 위력이 어떤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지난 6일 열린 한 지역의 합동연설회는 흑색선전이 기승을 부렸다. 먼저 나선 한 후보는 경쟁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으로 연설을 끝냈다. 정견과 공약제시는 뒷전이었다. 비난의 대상이 된 후보도 가만 있을 수 없다는 듯이 상대후보의 결점을 물고 늘어졌다. 다른 후보들도 무차별적으로 지루한 비난공세를 퍼부었다. 공약은 간데없고 욕설만 난무한 굿판이 되고 말았다.
16대 총선 합동연설회가 10일 진안·무주·장수지역을 마지막으로 모두 끝났다. 진무장지역 3차례와 나머지 지역 2차례씩, 모두 21번 열린 이번 합동연설회에서는 인신공격과 인력동원, 흑색선전 등 구태가 판을 쳤다.
합동연설회는 선거의 축제다. 후보들이 한자리에서 모여 청중앞에서 정견을 밝히는 것은 득표전략을 떠나서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선거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축제마당이 돼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합동연설회가 흑색선전과 인력동원 등 후진성을 면치 못한 것은 몇가지 이유들로 요약된다.
첫째는 네가티브선거전의 횡행. 병역문제와 전과공개 등으로 후보들의 치부가 드러나면서 지역마다 상대의 결점을 집중 공략하는 선거전이 판을 쳤다. 유권자들의 이성보다는 감정을 파고드는 선거전이 결국 비난공방을 불러왔다. 총선연대의 낙선운동도 후보들을 변별하는 순기능도 있었던 반면 인신공격이 판을 치는 역기능도 불러왔다는 지적이 있다.
두번째는 쟁점이 없는 정국. 과거에는 독재와 민주화의 열띤 공방이 있었고, 지역차별에 따른 소외감이 이슈가 됐던 반면 이번 총선에서는 전북을 관통하는 쟁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같은 무쟁점(無爭點)의 정국에서 후보들의 강박감은 결국 구태의 재연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세번째는 변하지 않는 유권자와 정치권.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 선거에서 유권자의 역할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386세대라는 상징처럼 정치개혁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관심은 선거에서 나타나야 하지만 이들은 정작 합동연설회장을 찾지 않았다. 젊은 유권자들의 대다수는 자기 지역의 후보들조차 모르는 현실이다.
흔히 ‘정치는 생물’이라고 표현되지만 변하지 않는 전북정치권의 모습도 구태정치를 못벗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고인 물처럼 변화가 없는 정치권은 스스로의 정체뿐만 아니라 정치발전마저 정체시키고 있다는 것.
이번 합동연설회에서 가장 극성을 부렸던 것은 후보들의 세대결 양상이다. 유권자와 후보들이 한데 만나는 축제가 아니라, 그들만의 잔치가 돼버렸다.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자리가 되지 못하는 합동연설회의 무용론이 심각히 제기되고 있다.
/총선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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