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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군산 산월리 유적의 의미



 

군산 대야면 산월리 유적은 고분과 출토된 유물 등을 통해 마한과 백제시대의 묘제 변천과정 뿐아니라 당시의 매장풍습, 사회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동안 발굴된 마한시대 고분과 달리 경사면에 축조된 분구(墳丘)묘나 백제고분에서는 처음으로 발굴된 환두대도(둥근 고리가 달린 큰 칼)와 말뼈 등은 당시의 분구의 축조방법과 마한∼백제에 이르는 매장풍습을 연구하는데 획기적인 자료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사단은 과학적인 연대측정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마한관련 고분은 4세기를 전후한 시기, 백제고분은 군산지역에서 횡혈식 석실분이 정형성이 띠기 이전의 과도기적인 단계에 해당하는 6세기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대야 산월리 고분군 조사에서는 장방형 분구묘 1기와 백제 횡혈식 석실분(굴모양 돌방무덤) 4기 등 모두 5기의 고분이 발굴됐으며 토기류 65점, 철기류 38점, 구슬류 1백90점 등 모두 3백여점이 출토됐다.

 

출토된 유물 중 환두대도는 백제와 신라 등 삼국시대 고분에서 종종 발굴된 예가 있지만 석실분에서 발굴되기는 이번이 처음.

 

이번에 발굴된 분구묘는 군산지역에서 처음 조사된 마한 관련 고분인데다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된 상태로 매장주체부가 확인됐다. 특히 분구묘는 지금까지의 마한고분이 대체로 지형이 완만한 구릉지대에 입지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능선의 정상부 내지 경사가 가파른 산기슭에 위치한 것이 특이한 점이다.

 

분구묘는 봉분주위를 따라 직사각형 모양의 도랑을 두른 무덤으로, 특히 고대 일본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으로 역시 도랑을 두른 전방후원분(前方後圓)과의 관련성이 한일 두나라 학계에서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는 중이다.

 

군산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백제 횡혈식 석실분은 천정석(天井石)과 벽석이 유실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상태지만 도굴피해를 입지않아 대량의 유물이 출토됐다. 능선의 정상부에 입지를 둔 석실분은 고분의 위치, 벽석의 축조방법, 석실의 평면형태, 연도의 방향 등 유구의 속성은 지금까지 밝혀졌던 백제고분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편 발굴된 유물은 토기류 65점, 철기류 38점, 방추차 2점, 숫돌 1점, 구슬류 1백90점, 기타 3점 등 모두 3백여점이 출토됐다. 토기류는 기종이 매우 다양하고 출토량이 많은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특히 서울 몽촌토성이나 부안 죽막동제사유적을 제외하면 종래에 다른 유적에서 출토된 예가 없는 매우 이질적인 속성을 보여준다.

 

횡혈식 석실분에서 다량으로 출토된 철기류는 마한의 매장풍습 전통이 백제시대까지 계승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되고 있다. 백제의 횡혈식 석실분에서는 처음 출토된 환두대도(環頭大刀) 3점은 고분에 묻힌 주인공의 신분 및 산월리 유적의 위상을 규명하는 결정적인 자료로 판단된다. 환두대도와 함께 국내최초로 말뼈와 말이빨이 수습돼 당시의 매장풍습과 고분의 축조연대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군산대박물관 발굴조사단(단장 이용휘)은 “산월리 유적은 그 구조를 달리하는 다양한 고분에서 많은 유물이 부장된 상태로 출토돼 마한부터 백제에 이르는 묘제의 변천과정과 함께 백제가 공주로 수도를 옮긴 이후 대내외의 관문지로서 군산이 담당했던 역할과 사회상을 밝히는 값진 자료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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