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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전경의 음악이야기] 아돌프 브로즈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1881년 12월 4일 밤 비엔나에서는 한 바이올린 협주곡이 초연 되고 있었다.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과 바이올리니스트 아돌프 브로즈키에 의한 연주.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단 하나뿐인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단 한번뿐인 리허설 후에 초연 된 이 곡은 곧이어 심한 혹평 속에 엄청난 시련을 겪게된다.

 

“무자비한 야만성이 노출된 곡으로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마구 긁히고 찢기고 두들겨 맞았다. 작곡자의 타락하고 거친 얼굴이 보이며 질 낮은 악취가 난다.”

 

이것은 당대 독설로 유명했던 음악 평론가 한슬릭의 신랄한 비판의 한 대목. 오늘날 베토벤과 브람스, 그리고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이 최고 4대 바이올린 협주곡 반열에 오른 것으로 볼 때 결국 한슬릭은 음악평론가로서의 화려한 경력에 최대의 실수를 남긴 것이다.

 

1877년 차이코프스키는 마지못해 했던 밀류코바와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그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유럽 여러 나라를 떠돌며 방황하게 된다.

 

운 좋게도 강력한 후원자였던 미망인 폰 메크 부인의 격려와 특별히 아끼던 제자, 바이올리니스트 코텍의 도움으로 새로이 작곡에 몰두하게 되면서 25일만에 대작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했다. 절정에 도달한 영감과 기쁨에 넘친 희열 속에 협주곡이 완성되자 당시 러시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헌정하기를 희망하지만 뜻밖에도 ‘연주 불가능’이란 회답과 함께 거절을 당한다.

 

그리고는 3년이 지나서야 작품에 애정을 갖게되는 브로즈키에 의해서 초연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심한 비평과 매질을 맞게 됐던 것.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은 브로즈키는 전 유럽을 돌면서 연주를 강행했고 마침내 초연이 있은 후 10년이 지나서야 이 작품은 청중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되었다.

 

브로즈키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어디에선가 깊은 잠을 자고있을 작품, 지난 10월 24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는 올해로 스물이 된 장영주의 연주가 있었다. 일찍이 천재의 대열에 올라 모두의 관심과 불안의 흥분을 갖게 했던 그녀, 그러나 더욱 성숙되고 지나치리만큼 농익은 연주를 보면서 120년 전 초연 됐다는 빈의 연주회, 그날 밤이 문득 궁금해졌다.

 

/ 윤전경 (음악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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