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군산지역 유흥가에서 지난 2000년에 이어 다시 대형화재가 발생, 12명의 아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빚어졌다.
난방을 위해 화기를 자주 사용하는 겨울철은 아무래도 화마(火魔)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지만 이번 참사는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소홀했다는 점에서 또다른 인재(人災)가 아닐까한다.
화마는 냉정한 살인마처럼 삽시간에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금새 표정을 바꾼다. 이같은 야누스의 모습을 영화제작자들이 외면할리는 만무다.
화재를 비롯한 재난영화가 상업영화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
스크린속의 화마와 재난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두렵고 공포스럽지만 관객들에게는 이같은 위험이 오히려 유혹적이다.
재난영화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 70년대 ‘타워링’과 ‘포세이돈 어드벤처’등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부터다.
그러나 당시만해도 기술력의 한계와 소재의 빈곤을 드러내며 재난을 소재로 삼은 영화들이 반짝인기에 만족해야 했다. 재난영화의 백미라면 아무래도 볼거리의 풍성함이지만 기술력이 이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
그러나 재난영화는 90년대들어 르네상스를 맞게된다. 불과 몇십전만 해도 엄두도 못냈을 장면들이 CG를 위시한 갖가지 SFX(Special Effects)의 괄목상대로 거의 모든 자연재해들을 화면에 담아냈고, 세기말이라는 시대적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
그렇다면 재난영화 가운데 화재를 정면에서 다룬 영화들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분노의 역류’(Backdraft·감독 론 하워드·1991)가 최고의 화재영화로 꼽힌다.
화재현장에 뛰어든 직업소방대원의 사투를 통해 당시만 해도 주목받지 못했던 소방대원의 직업의식을 정면에서 다룬다. 영화에서 선보인 정교한 인공불꽃기술은 지금까지도 유니버설스튜디오에 촬영현장이 보존될 만큼 헐리우드 기술력을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원제인 ‘백드래프트’는 일시적으로 진정한 불길이 갑작스런 산소의 유입으로 삽시간에 폭발하는 현상.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의 화재장면도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백드래프트를 응용해 실제로 불을 냈다는 후문이다.
화재영화는 그러나 헐리우드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최근 충무로영화에도 엄청난 불길로 스크린을 채운 영화들이 잇따르고 있다.
‘싸이렌’(감독 이주엽·2000)과 ‘리베라메’(감독 양윤호·2000)가 그것.
두 영화 모두 화재를 소재로 삼은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특히 ‘싸이렌’은 사실적인 화재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분노의 역류’의 특수효과 전문가를 초대하기도 했다. 건물 전체를 파도처럼 뒤덮은 화염이나 시시각각 긴박하게 밀려드는 불길을 카메라에 담으려 시도한 노력이나 화상방지용 특수약품을 온몸에 바르고 불속에 뛰어드는 배우들의 액션은 긍정적이라는 평가.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드라마적 연출이 서툰 탓에 ‘한국형 소방영화에 도전하겠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졌다.
제작비만 45억원이 투입된 ‘리베라 메’도 방화범에 맞서는 소방관들의 활약을 그렸다. 화제씬과 폭파씬에 투입된 물량만도 LPG 6t, 화약 3t, 특수오일 2천ℓ등이 투입될 만큼 대규모액션장면이 관심을 모았다.
또 미니어처가 아닌 실제 건물을 폭파시켜 생생한 영상을 포착했고 주유소 폭파씬에는 단 10초의 장면을 위해 5억원을 쏟아붓기도 했다.
‘리베라 메’는 ‘나를 구원하소서’(Liberate Me)를 뜻하는 라틴어로, 개봉당시 코스닥폭락의 장본인 가운데 한사람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진승현씨(전 MCI코리아 대표)가 투자한 영화라는 꼬리표를 달기도 했다.
두 영화 모두 한국형 파이어액션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며 ‘싸이렌’은 서울소방대의 전폭적 지원을, ‘리베라 메’는 부산시 차원에서 지원을 받았지만 흥행에선 명암이 엇갈렸다. 싸이렌은 전국관객 15만명에 머문 반면 리베라메는 1백만명으로 비교적 선전했다.
이들 영화외에도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감독 어윈 알렌·1974), ‘어블레이즈’(Ablaze·감독 짐 위노스키·2000), ‘백파이어’(Backfire!·감독 A. 딘벨·1995), ‘코드 레드’(Die Sieben Feuer des Todes·감독 카를로 롤라·1997), ‘화급’(十萬火急·감독 두기봉·1997) 등을 찾을 수 있다.
이 가운데 ‘타워링’은 지난 70년 ‘포세이돈 어드벤처’와 함께 재난영화의 원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최고층빌딩이 하필이면 화려한 오픈파티에 대화재에 휩싸인다. ‘
어블레이즈’는 석유회사에서 불법으로 방류한 휘발유가 도시전체를 불바다로 만든다는 내용으로, 도시를 뒤덮는 거대한 불길과 ‘화재폭풍’이라 일컫는 어마어마한 불기둥이 인상적. ‘백파이어’는 ‘분노의 역류’를 코미디로 재구성한 패러디영화, 독일영화인 ‘코드 레드’는 미스테릭한 연쇄방화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화급’은 ‘분노의 역류’의 홍콩판. 인명구조나 화재 진압을 위해 투신하는 자운산 소방대원들의 활약상을 그린다.
영화속의 화재는 대부분 방화범이나 소방관이 주인공이고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영화속의 화마는 그저 화려한 볼거리로 스크린속에 담아낼 뿐이다.
그러나 현실속의 화재는 귀중한 목숨을 빼앗고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안긴다는 점에서 영화와는 다르다. 이번 화재에서 숨진 희생자들에게 명복을 빈다.
* 그밖의 재난영화는..
지난 70년대의 재난영화가 재난에 맞서는 인간의 의지와 극전개를 중시한 반면 90년대 들어선 화산폭발을 비롯해 토네이도, 혜성충돌, 터널붕괴 등 다양한 소재들과 대규모 볼거리에 치중한다.
특히 ‘포세이돈 어드벤처’(The Poseidon Adventure·감독 로날드 리엄·1972)가 재난영화의 효시로 꼽힌다. 1천4백여 승객을 태우고 뉴욕항을 떠난 포세이돈호의 승객들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생존경쟁을 벌인다.
어빈 알란이 ‘타워링’과 ‘포세이돈 어드벤쳐’의 제작을 함께 맡았다. 찰톤 헤스톤과 에바 가드너가 주연한 ‘대지진’(Earthquake·감독 마크 롭슨·1974)도 빼놓을 수 없다. LA에서 발생한 대지진을 소재로 삼았다.
강력한 회오리 바람을 소재로 한 ‘트위스터’(Twister·감독 장 드봉·1996)는 건물과 젖소까지 날려버리는 토네이도의 위력이 압권. 지난 97년 선보인 ‘타이타닉’(Titanic·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역사상 가장 호화로운 여객선 타이타닉의 침몰을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재현해냈다.
‘볼케이노’(Volcano·감독 믹 잭슨·1996)는 거대한 용암이 LA시가지를 덥친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단테스 피크’(Dante's Peak·감독 로저 도널드슨·1997)는 실제 크기의 산모형과 3차원의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이용해 원자폭탄의 6백만배에 달한다는 화산폭발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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